이정후는 '2017 타이어뱅크 KBO 리그' 전반기 가장 눈에 띄는 신인이었다. 팀의 86경기 전 경기에 출전해 타율 3할2푼7리(14위)에 65득점(4위), 103안타(10위), 출루율 3할9푼3리(14위)로 '영웅 군단'의 공격 첨병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고졸 신인으로 첫 해부터 주전을 꿰차며 역대 최연소 올스타(18세10개월7일)에 뽑히는 영광도 누렸다.
'바람의 아들' 이종범(47)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의 아들로 휘문고 시절부터 주목을 받았던 이정후다. 지난해 넥센의 1차 지명을 받아 2억 원 계약금을 받고 입단한 이정후는 '역시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사실상 신인왕을 예약한 상황.
하지만 이정후는 자신의 전반기에 대해 썩 만족스럽지 못한 표정이었다. 전 경기에 나서는 자신이 대견스럽기도 했지만 더 잘 하지 못하는 데 대한 아쉬움이 더 많았다는 자평이었다. 그것은 남은 시즌 활약을 예고하는 원동력이기도 할 터. 후반기 더 큰 신인 돌풍을 다짐하는 이정후를 전반기 마지막 경기인 13일 두산과 잠실 원정에서 만났다.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경기는 처음이에요"
프로 첫 시즌, 전반기를 마친 소회는 어떨까. 이정후는 일단 "이렇게 경기를 많이 하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라면서 "초등학교부터 고교까지 했던 경기를 다 합쳐도 올해 프로 경기만큼은 안 될 것 같다"고 혀를 내둘렀다. 최근 학원 스포츠는 공부하는 선수를 목표로 주말 리그가 정착돼 있다.
주말에만 1~2경기를 했던 이정후로서는 거의 매일 경기를 치르는 프로가 신세계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이정후는 "이것도 하나의 경험"이라면서 "다른 친구들은 해보지 못한 것을 하고 있기 때문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갑자기 많은 경기를 소화하는 게 힘들지는 않을까. 이정후는 "힘들긴 하다"면서 "시즌 전 82kg이던 몸무게가 스프링캠프를 다녀오고 시즌을 치르면서 77kg 정도까지 빠졌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이정후는 젊다. 체력 관리에 대해 이정후는 "일단 엄마가 해주는 밥 많이 먹고 많이 잔다"면서 "어려서 그런지 피곤해도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진다"고 웃었다.
올해 입단한 신인 중 주전은 이정후가 유일하다. 4억5000만 원 계약금의 윤성빈(롯데), 장지훈(삼성), 유승철(KIA), 김병현(한화), 김태현(NC), 고우석(LG), 이원준(SK), 조병욱(kt) 등 다른 고졸 신인들은 겨우 1군에 데뷔했거나 2군에 머물러 있다. 부상 재활 중인 선수도 있다.
이정후는 "나를 부러워 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한편으로 고맙다고 하는 친구도 있다"고 말했다. "나도 언젠가 저렇게 돼야지 이렇게 자극을 받아 훈련을 열심히 할 수 있어서"란다. 친구들을 위해서라도 이정후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한다"는 다짐이다.
▲"전반기 점수는 60~70점…모든 부문이 아쉬웠다"
이정후의 활약은 순수 신인왕이 가뭄이던 최근 KBO 리그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2007년 임태훈(당시 두산) 이후 입단 첫 시즌 신인왕에 오른 선수는 없었다. 벤치나 2군에서 실력을 가다듬은 뒤 비로소 빛을 본 이른바 '중고 신인왕'들이 최근의 트렌드였다.
리그 수준이 높아지고 학원 스포츠의 경쟁력이 약해지면서 신인이 첫 시즌 활약하기가 그만큼 어려운 게 현실이었다. 올해도 이런 현상은 마찬가지다.
이런 가운데 이정후는 당당히 첫 시즌부터 리그 정상급 테이블 세터로 자리잡았다. 장정석 넥센 감독도 "솔직히 이정후가 이 정도로 잘 해줄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고 털어놨을 정도다. 장 감독은 "고졸 신인이 전 경기에 나서는 게 쉽지 않은데 몇 경기만 교체 출전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선발이었다"면서 "선배들에게 잘 배우며 크고 있다" 강조했다.
하지만 이정후의 냉정한 평가와 반성이 곧바로 이어졌다. 이정후는 "전반기는 많이 부족했다"면서 "내 점수는 60~70점 정도"라고 잘라 말했다. "조금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공격이든, 수비든 모든 부분이 조금씩 아쉽다"는 이정후다. 이어 "더워지는 요즘에는 수비에서도 그렇고 집중이 잘 안 된다"고 푸념했다.
이정후는 올해 실책이 2개다. 외야수 중에는 그래도 적은 편에 속한다. 수비율은 9할8푼9리, 내야수를 보다 프로에 와서 전향한 성적 치고는 나쁘지 않은 편이다. 타격에서도 이정후는 4월까지 타율 3할6리로 성공적으로 리그에 연착륙했고, 5월에는 3할8푼8리의 불방망이를 휘둘렀다. 다만 더위가 시작된 6월 2할9푼8리로 주춤했다. 그러나 7월 3할2푼6리로 다시 회복세를 보였다.
▲"PS 우승을 하면 100점 짜리가 됩니다"
이런 냉정한 자기 반성이 이정후의 전반기를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활약으로 이정후는 꿈에 그리던 '별들의 잔치'에도 나섰다. KIA 열풍에도 팬과 선수단 투표에서 나눔 올스타 외야수 3위에 올라 베스트12에 포함됐다.
올스타전을 앞둔 이정후는 "아버지를 따라 2009년 광주 올스타전에 갔는데 당시 이택근 선배와 이런저런 얘기를 했는데 신기했다"면서 "그런데 내가 이 선배와 같은 팀에 뛰게 되고 올스타전에도 나가게 돼서 영광스럽다"고 감격적인 소감을 밝혔다. 이어 최연소 올스타에 이어 MVP까지 노리는지에 대해 "욕심은 없이 많이 배운다는 생각하고 출전하겠다"고 다짐했다.
다만 이정후는 15일 대구에서 열린 올스타전에 앞선 기자회견에서는 "만약 MVP가 되면 자동차는 내가 타고 다니겠다"는 야망도 살짝 드러냈다. 비록 MVP는 되지 못했지만 이정후는 1회 두산 에이스 더스틴 니퍼트로부터 올스타전 첫 안타를 때려낸 기쁨을 맛봤다. 이날 성적은 2타수 1안타, 꿈에 무대에 선 것만으로 의미가 있던 올스타전이었다.
하지만 팀 성적 얘기가 나오자 표정이 달라진다. 이정후는 "이정후는 "60경기 정도(58경기) 남았는데 더 잘해서 팀 성적도 높이고 싶다"고 운을 뗐다. 이어 "특히 포스트시즌에 진출해서 우승을 하면 (전반기 60~70점에서) 100점이 된다"고 강조했다. 초중고에서 다 우승을 해봤는데 프로에 와서도 경험하고 싶다"며 부푼 야심을 드러냈다.
넥센은 전반기를 45승40패1무, 4위로 마쳤다. 선두권은 아니지만 가을야구는 가능해보인다. 여기에 넥센은 후반기 외인 교체 등을 통해 마운드 보강을 꾀하고 있다. 수준급 외인이 온다면 대권에 도전할 만하다.
이정후는 "아버지가 신인 때 한국시리즈(KS) MVP에 올랐는데 만약 내가 우승하지 못하면 비교가 될 것 같다"면서 "그런 것을 신경쓰지는 않지만 어쨌든 우승을 하고 싶다"고 다부진 표정을 지었다. 과연 이정후가 넥센의 창단 첫 우승을 이끌 신인으로 역사에 남을 수 있을까.
이정후는 "프로에서 다 처음 보는 투수들을 상대로 잘 친다고 하는데 매 타석 집중한 결과"라면서도 "그것보다 전력분석팀 형들이 워낙 좋은 자료를 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력분석 자료가 정말 많은 도움이 되는데 고교 때와 가장 큰 차이"라면서 "또 기회를 주신 감독, 코치님, 조언해주는 선배들에게도 늘 감사하다"고 겸손함을 보였다.
팬들에게도 이정후는 "신인임에도 많은 관심과 격려를 해주고 응원해주셔서 정말 감사한다"면서 "올스타전도 덕분에 나갈 수 있었다"며 고마움을 드러냈다. 이어 "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고교 때는 우리끼리 해야 한다고 얘기했다"면서 "그러나 지금은 팬들이 있으니까 포기하지 않고 더 열심히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팬들이 매일 선물도 주시고 응원을 해주는 게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라고 말하는 이정후. 그러나 여성 팬들의 인기를 묻자 "가끔 몇 번 선물을 받긴 했는데 여성 팬은 잘 모르겠다"며 짐짓 부끄러운 표정을 지으며 얼버무렸다. "팬들을 위해 더 열심히 하는 선수가 되겠다"는 말로 다시 진지한 얼굴로 인터뷰를 마무리한 이정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