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15일 노동신문 논평의 형식으로 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에 대한 첫 반응을 내놨다. 문 대통령이 베를린선언을 발표한지 9일만의 반응이었다. 과거 한국 대통령에 대한 북한 반응은 길어야 일주일을 넘기지 않았던 것과 비교된다.
북한은 과거에 비해 긴 시간 고심했던 만큼 내놓은 논평도 길었다. 북한 노동신문은 8574자, A4 용지 6장을 넘는 긴 글에서 문 대통령의 구상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북한 논평은 “'한반도평화구상'의 실체를 파헤쳐보자"며 '잘못된 출발, 엇나간 방향' '적반하장의 평화 타령' '언행상반의 대화협력 타령' '근본문제부터 풀어야한다'는 소제목까지 붙여가며, 평화협정 체결, 이산가족 상봉, 민간 체육교류 등 문 대통령의 다양한 제의를 세세히 비판했다.
그러나 북한 노동신문은 이런 비판을 하기 전에 문 대통령의 구상에 대해 다소 결이 다른 평가를 했다.
“'신베를린 선언'이라고 자칭하는 이 '평화구상'에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에 대한 존중, 이행을 다짐하는 등 선임자들과는 다른 일련의 입장들이 담겨져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에 일부 긍정적인 점이 있다는 점을 먼저 언급한 뒤 비판을 해나가는 형태를 취한 셈이다.
이는 문 대통령의 구상을 비판하면서도 수위 조절을 한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과거처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등 공식기구의 담화나 성명을 통한 비판 대신 노동신문 개인 논평으로 반응 형식의 격을 최대한 낮춘 것도 남측의 대응방식을 보면서 부담을 피하려는 뜻으로 관측된다.
북한이 문 대통령의 구상을 매우 길게 조목조목 비판한 것도 꼭 부정적인 신호는 아니라는 분석이다. 북한이 베를린 구상에 아예 관심이 없다만 일축하고 말았을 것인데, 길게 비판한다는 것 자체가 문 대통령의 구상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런 공식 반응에 앞서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가 베를린 구상에 대해 "친미사대와 동족대결의 낡은 틀에 갇힌 채로 내놓은 제안이라면 북측의 호응을 기대할 수 없다"며 마치 남측의 간을 보는듯한 언급을 한 것도 과거와 다른 양태이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북한의 이번 반응을 보면 문 대통령의 구상에 대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심하게 얘기하거나 지나치게 한 말이 없다”며, “전반적으로 기대했던 것보다 나쁘지 않다. 오래 동안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고 평가했다. “북한도 문 대통령의 5월 취임이후 변화된 상황을 보며 남북 간의 다양한 가능성을 보는 것 같다"는 것이 이 당국자의 얘기이다.
정부는 이런 평가를 토대로 조만간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회담이나 군사분계선(MDL)에서 적대 행위 중단을 위한 군사회담 제의 등 베를린 구상의 후속조치를 발표할 예정이다.
현실적으로 베를린 구상의 계기를 살리지 못하면 올 하반기 남북관계는 경색 국면이 불가피 하고,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은 고조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준비 중인 베를린 구상 후속조치의 내용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