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년간 자행돼온 남편의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못해 아들과 함께 주민번호를 바꾸기로 했다.
남편이 기존의 주민등록번호를 통해 이사한 곳을 찾아 언제 또다시 폭력을 휘두를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A씨가 결단을 내린 이유다.
이처럼 가정폭력이나 성폭력, 재산피해 등의 이유로 행정자치부 주민등록변경위원회의 문을 두드린 사람은 13일 현재 381명이다.
신청건수 가운데 70% 가량은 주민번호 유출로 재산피해를 본 경우로 대부분은 보이스피싱 피해자다. 재산피해자 가운데는 인감증명과 자동차면허증을 위조해 근저당을 설정하는 바람에 4억 5천만원을 날렸다는 사람도 있다.
또 주민등록증을 분실해 누군가 이를 도용해 피해를 입을 수 있다거나 위해를 가해온 전 남자친구의 출소가 얼마남지 않아 불안하다며 주민번호 변경신청을 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주민등록증 분실에 따른 막연한 불안감으로만 구제를 받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위원회 관계자는 "한해 160만건이 넘는 주민등록증 분실신고가 접수되고 있는데 분실에 따른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피해가 입증되지 않으면 심사대상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관계법령은 △범죄경력 은폐, 법령상 의무 회피 △수사나 재판 방해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 위반 등의 경우에는 위원회가 변경요청을 기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신청을 받은 뒤 객관적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에 들어가고 위원회에서 심사 결정이 의결되면 범죄경력․체납 등 범죄은폐나 신분세탁 등을 가리는 사실조사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다만 위원회는 주민번호 변경의 인용여부를 가를 피해정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설정하는데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위원회는 이달 25일 2차 회의를 열어 지금까지 접수된 381건 가운데 신청순서대로 주민등록번호 유출로 심각한 2차 피해가 우려되는 사례를 추려낼 계획이다.
행정자치부 주민등록번호변경위원회 구상 심사지원과장은 "위원회에서 사실조사를 의결한 사례에 대해 다음달 8일 열리는 위원회에서 최종 변경 결정이 내려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