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진 학생은 학내 애플리케이션(앱)에 피해 사례를 폭로했다가 조롱 섞인 익명 댓글을 수십 건 받은 뒤 괴로워했고 이후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 유서에 담긴 성폭력 피해 사례
13일 경기 시흥경찰서 등에 따르면 성공회대 학생 A(20) 씨는 전날 오후 1시쯤 자신이 살던 시흥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유서에는 A 씨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최근까지 지인들로부터 여러 차례 당했던 성폭행, 성추행 등 성폭력 피해 사례가 구체적으로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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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씨는 또 지난해 10월 학생 휴게실에 함께 있던 같은 학과 동기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사건이 알려진 뒤 가해자는 혐의를 인정하며 사과했고 학교 측으로부터 징계 처분을 받은 것으로 취재 결과 나타났다.
앞서 A 씨는 같은 해 7월 한 선배로부터 성폭행을 시사하는 희롱을 들었다는 증언을 학내 대자보에 써 붙이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해당 선배와 같은 수업을 듣게 되면서 실제 성폭행 피해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떨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A 씨의 죽음이 알려지자 학교 측은 곧바로 긴급조사위원회를 꾸리고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 경위 등을 조사하고 있다.
◇ "피해자 코스프레?" 수십 건의 악플
지난해 성추행 사건 직후 A 씨는 이 학교 학생들이 사용하는 앱 내 익명게시판에 피해 사례를 게시했다.
하지만 익명으로 달린 댓글들은 A 씨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한 학생은 "피해자가 얼마나 꽃뱀같은 지 역겹다. 피해자 '코스프레' 하고 있다. 이상한 애라고 생각한다"고 쏘아붙였다.
또 다른 댓글에는 "팩트는 모르겠고 그냥 드는 생각이 여자가 남자한테 살살 꼬리 쳤는데 잘 안 넘어오니까 자존심이 팍 상해버려 엿먹이려는 거로밖에 안 보인다"고 적혀 있었다.
일부 댓글은 A 씨의 말투가 예의가 없다고 지적하거나 A 씨를 '피해생존자 학우분'이라고 비꼬았다. "피해자란 단어가 아깝다", "공론화좀 그만 시켜라", "너가 씨부리는 것도 폭력이고 가해다. 고상한 척좀 하지마"라는 등의 악성댓글도 달렸다.
일일이 대응하던 A 씨는 참다못해 "왜 포커스가 가해자의 그릇된 행동이 아닌 피해자의 행동에 맞춰져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자신의 페이스북에 토로했다.
◇ "모두 날 싫어한다는 목소리가 귀에…"
A 씨는 유서에서 "어떤 사람은 익명으로 제게 나가 죽으라고 하셨다. 캠퍼스를 걸어 다니면 그 목소리가 계속 귀에 들린다. 모두가 날 싫어한다는 목소리가"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라고 믿고 있다. 그치만 지금 제 상태로는 그렇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많이 지친 상태여서 그런지"라고 호소했다.
주변인들 역시 A 씨가 이 때문에 힘들어하면서 여러 차례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학교에 재학생 B 씨는 "가해자가 잘못했기에 일어난 일인데 가해 책임을 희석시키고 피해자에게 잘못이 있다고 하는 식으로 몰아세운 것은 정말 문제가 있는 행동이었다"고 밝혔다.
또 다른 학교 선배는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은 학교 차원에서 이미 끝났지만 A 씨에 대한 좋지 않은 얘기들이 돌았다"며 "그래서 계속 상처를, 2차 피해를 입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