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8군 '신촌'을 아시나요?…1906년 사라진 '용산마을' 부활 날개짓

용산 미군기지 조성 이전 모습 담은 일제 문건 111년 만에 첫 공개

용산구가 발굴한 '한국 용산 군용 수용지 명세도'. 지도에는 대촌·단내촌·신촌 등 용산에 있던 옛 둔지미 마을의 정확한 위치와 규모가 상세히 나와 있어 사료적 가치가 크다.
미군기지의 평택 이전으로 용산 미군기지가 우리 국민들의 일상 속으로 다시 돌아오게 됐다. 무려 111년 만이다.

미군기지가 들어서기 전 용산은 일본군의 병참기지로 이용됐다. 서울 용산구가 2014년 발굴한 일본 방위성 방위연구소 자료에는 1906년 일본군이 용산에 군용지를 조성할 당시의 상황이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

일본군이 조사한 가옥, 묘지, 전답 등의 구체적인 숫자가 담겨 있고, 당시 '한국주차군사령부'와 이토 히로부미의 '통감부', 일본 육군성 사이에서 오간 여러 대화도 기록돼 있다.

특히 그 당시 300만평에 이르는 군용지 면적과 경계선을 표시한 ‘한국용산군용수용지명세도(韓國龍山軍用收容地明細圖)’는 더 많고 자세한 내용을 담고 있다.

명세도(지도)에는 그 당시 민간인이 살던 신촌, 대촌, 단내촌, 정자동 등 지금의 후암·이태원·서빙고동 일대인 '둔지미' 지역의 정확한 위치와 마을 규모 등이 상세히 그려져 있다.

다행스런 것은 둔지미 마을 사람들의 집단적인 저항 덕에 당초 수용규모였던 300만평이 최종적으로 118만평으로 줄었다는 사실이다. 이 과정에서 많은 주민들이 일본 헌병에 체포되기도 했다.


명세도 한편에 기록된 '구역별 철거기한'에 따르면 1906년 6월부터 1907년 4월까지 둔지미 마을에 대한 강제철거가 이뤄졌던 것으로 보인다.

용산의 과거 - ①군사령관 관저 전경(1910년대), ②용산 보병 병영 전경(1920년대), ③용산 삼각지전경(1940년대), ④한강철교와 용산 일대의 전경(1930년대) (출처=국토교통부/서울시 제공)
둔지미 신촌(新村)의 경우 비교적 규모가 큰 마을이었으나 1908년경 모두 강제이주를 당했다. 이후 해당 지역에 일본군사령관 관저가 들어섰으며 오늘날 인근에는 미8군 드래곤힐 호텔(DHL)이 자리해 있다.

명세도에는 후암동~서빙고동 사이 옛 길도 그려져 있다. 우리 선조들이 수백 년 동안 이용했던 역사와 흔적이 오롯이 배어 있는 길이다. 도성을 빠져나온 조선통신사가 일본으로 향할 때 통과했던 바로 그 길이다.

이 길 역시 용산기지를 공원으로 조성하면서 원형 대로 복원될 가능성이 크다.

용산구는 용산기지 조성 이전 상태로 옛 '둔지미' 마을을 복원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있다. 이를 위해 용산구는 당시의 문헌 뿐 아니라 증언이나 기억 등 구술 자료들도 수집하고 있다.

성장현 용산구청장은 "국가 주도로 용산공원 조성사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이곳의 역사성과 장소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연구가 부족하다"며 "용산 원주민들의 흔적이 깊이 배어 있는 역사를 감안, 공원 조성 과정에서 시민들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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