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영동고속도로 봉평터널 버스참사 직후 국토교통부는 법을 개정해 운전기사들의 휴식시간을 보장하도록 했으나 정작 운전시간에 대한 규제는 없어 기사들은 주 60시간이 넘는 살인적인 격무에 시달리고 있다.
◇ '근로시간 제한' 없는 대책…재발 방지 요원
국토교통부는 올 2월, 버스·트럭 등 대형차량 운전자가 4시간 연속운전을 할 경우 최소 30분의 휴식시간을 의무적으로 가지게 하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시행 규칙'을 만들었다.
이는 지난해 7월 강원도 평창군 봉평터널 입구에서 졸음운전을 하던 버스기사가 5중 추돌사고를 내 4명이 숨진 '봉평터널 참사'에 대한 재발방지 차원에서 만들어졌다.
하지만 업계관계자들은 이 대책이 실효성 없는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휴식시간 보장보다 중요한 근로시간 제한에 대해선 정작 규정을 마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현행 근로기준법은 운수업 종사자를 가혹하리만큼 격무에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다.
근로기준법은 일반적으로 하루 8시간, 주(週) 40시간으로 근무시간을 제한하고 있다. 필요시 초과근무가 가능하나 그 역시 주당 12시간을 넘지 못한다.
하지만 버스기사는 법의 테두리 밖에 놓여있다. 바로 '근로기준법 제59조 근로시간 및 휴게시간의 특례' 조항 때문이다. 이 조항에 따르면 버스기사는 노사가 합의하면 12시간을 넘어 얼마든지 초과근무가 가능하다.
추가근무의 상한선도 마련하지 않은 터라 주 60시간이 넘는 격무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난 9일 졸음운전으로 사고를 일으킨 김 씨도 사고 전날 18시간 30분의 근무를 마친 뒤 곧장 다음날 출근했다.
◇ '하루 17시간 운전'… 일주일에 68시간 격무
김 씨의 회사동료들도 살인적인 격무에 시달리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동료기사 A 씨는 "이틀연속 근무를 한 뒤 하루를 쉬는 근무형태"라며 "10일에는 새벽 5시에 운전을 시작해서 밤 8시에 끝났고 11일에도 새벽 5시에 나와 밤 12시쯤에 일이 끝났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법으로 보장한 '4시간 운전, 30분 휴식'에 대해서도 "회사는 지킨다고 하지만 사실상 쉬는 시간이 어디 있느냐"며 "차가 많이 막히면 점심시간도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털어놓았다. 동료기사 B 씨 역시 "하루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도 많이 자면 5~6시간 정도 잔다"고 피로를 호소했다.
'살인적인 격무'는 이번 사고를 일으킨 버스업체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서울 광화문과 경기도 용인을 오가는 광역버스기사 C(57) 씨 역시 하루 중 17시간동안 운전대를 잡고 있다.
중간 중간 휴식시간이 있으나 서울과 경기를 오가는 버스 특성상 차가 막혀 배차시간이 길어지면 자연스레 휴식시간도 줄어들게 된다.
하루 17시간의 운행을 마친 뒤 다음날은 쉰다고는 하지만 평일‧주말 구분 없이 격일제로 근무하고 있어 단순계산으로도 일주일 간 68시간을 일하고 있는 것이다. C 씨는 "노선을 4회 정도 돌고 오면 집중력이 떨어지기 시작한다"며 "고속도로에 올라서면 그때부터 리듬이 깨져버리고 졸음운전도 그렇게 일어난다"고 토로했다.
결국 졸음운전의 근본원인인 '과도한 업무강도'는 해소하지 않은 채 정부가 사고 재발방지 대책이라며 내놓은 '휴식시간 보장'이 허울뿐인 미봉책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찬무 공공운수 노조화물연대 본부 조직국장은 "정부가 '근로기준법 연장근로 특례조항'으로 상한선도 없이 노동자를 격무에 방치했다"며 "시민안전을 위해서라도 규제해야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법으로 그러한 규제를 풀어주고 있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