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대박'에서 '오직 평화'로…北 안전보장으로 대화 타진

DJ 계승하고 박근혜를 반면교사로…북한 반응이 초미 관심

베를린에서 연설하는 문재인 대통령 (사진=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일 독일 베를린에서 발표한 '한반도 평화 구상'은 17년 전인 2000년 3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을 계승해 '통일'보다 '평화'를 거듭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평화의 제도화"를 위해 "완전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을 제안했다.

"추구하는 것은 오직 평화"라는 문 대통령의 선언은 '통일 대박론'을 주창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과 대비된다. 박 전 대통령의 통일대박론에 대해 '흡수통일론'이라고 맹비난한 북한이 문 대통령의 '평화 선언'에 과연 호응해 나올지 주목된다.

문 대통령은 베를린 연설에서 "한반도의 냉전구조를 해체하고 항구적인 평화정착을 이끌기 위한 정부의 5개 정책방향"으로 가장 먼저 '평화'를 언급했다. 문 대통령의 연설 제목이 바로 '신(新) 한반도 평화비전'이다.


문 대통령은 "나는 이 자리에서 분명히 말한다. 우리는 북한의 붕괴를 바라지 않으며, 어떤 형태의 흡수통일도 추진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인위적인 통일을 추구하지도 않을 것"이라며, "나와 우리 정부가 실현하고자 하는 것은 오직 평화"라고 밝혔다.

반면 문 대통령은 "통일은 쌍방이 공존공영하면서 민족공동체를 회복해 나가는 과정"이라며 "통일은 평화가 정착되면 언젠가 남북 간의 합의에 의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일"이라고 '통일의 위치'를 밝혔다.

이는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정책은 당장 통일을 추구하기보다는 한반도에 아직도 상존하고 있는 상호위협을 해소하고 남북한이 화해 협력하면서 공존·공영을 추구하는 것이다. 통일은 그 다음의 문제"라는 17년 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발언과 상통한다.

김 전 대통령도 그 때 "우리는 북한을 해치거나 흡수통일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핵·미사일의 포기와 남북 대화 재개를 촉구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김 대중 전 대통령보다 한 발 더 나갔다. 바로 평화의 제도화, 즉 평화협정 체결을 주창한 것이다.

(사진=청와대 제공)
문 대통령은 베를린 연설에서 두 차례 평화협정에 대해 얘기했다. 문 대통령은 먼저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구조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종전과 함께 관련국이 참여하는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면서 "북핵문제와 평화체제에 대한 포괄적인 접근으로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평화협정 체결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어 "한반도의 긴장과 대치국면을 전환시킬 계기가 된다면 나는 언제 어디서든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과 만날 용의가 있다"며, "핵 문제와 평화협정을 포함해 남북한의 모든 관심사를 대화 테이블에 올려놓고 한반도 평화와 남북협력을 위한 논의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흡수통일을 추구하지 않고 "관련국이 참여하는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로 체제의 안전을 보장할 것이니 안심하고 핵 무력을 포기하라는 메시지로 풀이된다.

현직 대통령이 "관련국이 참여하는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을 논의하기 위해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한 것은 문 대통령이 처음이다.

"비핵화를 위한 결단만이 북한의 안전을 보장하는 길"이라는 문 대통령의 발언도 결국 평화협정의 체결과 연결되는 맥락이다.

물론 노태우 전 대통령이 과거에 평화협정 체결을 언급한 적이 있기는 하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90년 8.15 경축사에서 "남북간의 무력사용 포기선언과 불가침협정의 체결, 현재의 휴전 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문제 등 모든 문제에 관해 남북의 책임있는 당국자들이 논의할 때가 왔다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은 1991년 9월 유엔총회 연설에서도 "남북한은 불안한 휴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며, "남북한은 평화협정을 체결하여, 서로에 대한 무력의 사용을 포기하고 모든 분야에서 관계를 정상화하는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의 '남북 평화협정' 촉구는 1991년 11월 남북기본합의서 체결의 성과로 이어지기는 했지만, 이후 북한이 남북기본합의서를 사문화했고, 오히려 정전협정을 대체할 북미 평화협정 또는 북중미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하면서 역사적 동력을 잃었다.

결국 문 대통령이 '종전과 함께 관련국이 참여하는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논의를 제의한 것은 북한의 핵무력 포기, 북한 체제의 안전보장,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는 관측이다.

문 대통령의 연설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북한을 자극할 수 있는 용어를 극도로 자제했다는 점이다. 흡수통일 추구하지 않고 '오직 평화'라는 선언 자체가 북한을 배려했다는 평가이다.

이는 "추위 속에 배고픔을 견디는 북한 아이들의 고통", "국경을 넘는 탈북자" 등 북한의 치부를 지적하며, 공세적 통일론을 제기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과는 비교가 된다.

박 전 대통령은 드레스덴 연설에서 통일대박론를 주창하며 통일의 경제적 효과를 강조했지만, 이는 흡수통일이라는 북한의 거센 비판 속에 현실화되지 못했다.

물론 문재인 대통령도 통일의 경제적 효과를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연설에서 “한반도에 새로운 경제 지도를 그리겠다”며 남북 철도 연결 남북러 가스관 연결 등 협력사업을 통해 “남과 북은 대륙과 해양을 잇는 교량국가로 공동번영할 것”임을 밝혔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남과 북이 10.4 정상선언을 함께 실천하기만 하면 된다"며, "그때 세계는 평화의 경제, 공동번영의 새로운 경제모델을 보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17년 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 이후 3개월 뒤에는 북한의 호응으로 역사적인 첫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이번에 북한에 대해 할 말을 다한 문 대통령의 제의에 대해 북한이 과연 어떻게 반응할지는 미지수이다.

북한대학원대학교 양무진 교수는 "북한은 ICBM 개발 등 핵 무력의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는 만큼, 대화를 한다고 해도 그 이후 될 것이고, 문대통령의 제안에 호응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며, "다만 북한은 대북 확성기 방송 등에 워낙 민감한 반응을 보였던 만큼 문 대통령이 제의한 군사분계선에서의 적대행위 금지 등에 대해서는 선별적으로 관심을 보일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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