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오전 지역 민심 경청을 위해 충남 천안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추 대표는 작심한 듯 직접 준비한 입장자료를 읽어내려갔다.
최고위 시작 전에 누구도 추 대표가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지를 몰랐다고 한다. 메시지팀의 도움 없이 본인이 회의 직전까지 자필로 쓴 발언이었다.
추 대표는 "국민의당 대선 조작 게이트는 일찍이 북풍 조작에 버금가는 것"이라며 "네거티브 조작의 속성은 관련자가 나서지 않고 방패막이를 세운다는 것"이라고 운을 띄웠다.
판사 출신인 추 대표는 법률용어로 '미필적 고의'(범죄사실이 발생할 가능성을 인식하고 또 이를 인용하는 것)라는 말로 이번 사건을 정리했다. 문준용씨 특혜채용 의혹 제보 조작 사건에 대한 국민의당 윗선의 책임을 거론하기 위해서였다.
추 대표는 "조작된 것이기 때문에 직접 나서지 않고, 설령 조작된 것이라고 해도 공중으로 유포될 경우 상대방측에 치명적인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을 용인하고 국민의당의 시스템이 전격적으로 풀가동돼 유포시킨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죄를 죄로 덮으려했던 것만 봐도 미필적 고의"라며 "박지원 당시 선대위원장은 죄를 죄로 덮기 위해 직접 선대위원장이었던 저를 고발까지 했다"고 지적했다.
5월 5일 문준용씨 파슨스 동료 제보의 기자회견이 있은 뒤 다음날인 6일 더불어민주당이 허위사실 유포로 고발하자 8일 국민의당도 추 대표 등을 맞고소한 것을 상기한 것이다.
추 대표는 "만약 이런 전반적인 과정에서 진실에 대한 확신을 가질려면 적어도 제보자에 대한 신원확인은 했어야 한다"며 "전 과정을 보더라도 미필적 고의에 의한 형사책임은 반드시 수사돼야하고 책임을 져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경 발언으로 국민의당이 추경 본심사 직전에 국회 보이콧을 선언한 상황이지만 추 대표는 본인의 소신을 더욱 뚜렷하게 내세운 것이다.
추 대표의 강경 발언이 이어지자 주변 측근들은 조심스러워하면서도, 발언의 확대 해석을 경계하면서 중재에 나서기도 했다.
박범계 의원은 이날 회의에서 "당의 길은 당의 길이고, 국회의 길은 국회의 길이 있다다"면서 "당은 국회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고 당원과 국민을 대변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당의 길은 원내의 길과 다른 것이다. 일치를 위해 노력하는 것일 뿐이지 당 대표로서 엄중한 사건에 대한 평가를 내리고 당원에게 호소하고 정치적 메시지를 던지는 것은 온당한 태도"라며 추 대표와 원내의 갈등설을 미리 차단했다.
박완주 수석대변인은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머리 자르기'는 은유적 표현이었다. 당사자들을 기분 나쁠 수 있지만 책임자들이 (입장을) 밝혀야 하는 것 아니냐는 표현이었다"면서 "국민들이 판단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또한 추 대표의 발언이 당 대표로서 충분히 할 수 있지만 시기상의 아쉬움이 있었다는 점을 에둘러 설명했다.
박 대변인은 추 대표의 '미필적 고의' 발언이 검찰 수사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요즘 검찰이 압박을 받겠느냐"며 "국민의당 지도부에서 그에 상응하는 행동을 하라는 것"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이처럼 추 대표가 사과 대신 법적 책임론을 제기하며 국민의당을 정면 겨냥하면서 '강대강'으로 치닫고 있어 국회 정상화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날 저녁 추 대표와 우원식 원내대표는 총리 공관에서 이낙연 총리,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전병헌 정무수석 등과 비공개 만찬 회동을 가질 예정이어서 회동에 따라 입장 변화가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