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고·자사고 폐지 놓고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까?' 눈치 싸움

정부-시도 교육청 '상대방이 나서기를…'

문재인 정부와 진보성향의 시도 교육감들이 자율형사립고(자사고)와 외국어고등학교(외고) 폐지를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폐지 방법을 놓고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식의 입장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시도 교육청은 현행 '초중등교육법시행령'상의 자사고, 외고 설립근거를 삭제하는 방식으로 자사고·외고를 일반고로 전환해야 한다며 정부가 전면에 나서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 반면 정부는 시도 교육청의 재평가 심사를 통해 기준에 미달하는 학교를 탈락시켜 일반고로 전환하는 방식을 내비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인수위원회 역할을 하고 있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최근 100대 국정과제 선정작업을 마무리했다. 자사고·외고의 일반고 전환도 국정과제에 포함됐다.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위원장.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노무현 정부에서 교육인적자원부장관을 지냈던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장은 5일 'CBS김현정의뉴스쇼'에 출연해 "외고나 자사고가 당초 설립목적과는 좀 다르게 입시 전문 교육기관화 했다"며 "외고·자사고를 특채 모집해서 좋은 인재들을 먼저 다 뽑아가 버리니까 일반 공교육이 피폐화되는 측면도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자사고·외고의 일반고 전환방식에 대해서는 " 자사고·외고 심사 때마다 제대로 설립목적을 이행하지 않으면 일반고로 전환하게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외고나 자사고가 전환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특별한 혜택을 주어서 특별한 목적으로 운영하려던 외고·자사고가 제 역할을 못한다고 평가가 됐을 때는 일반고로 전환하도록 해야한다"고 거듭 밝혔다.

김 위원장의 이같은 발언은 관련법 개정을 통해 자사고·외고 '전체'를 일반고로 일괄전환해야 한다는 진보성향의 시도 교육감의 입장과는 배치되는 것이다.


최근 재평가를 통해 관내 일부 자사고와 외고를 재지정했던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시도 교육청 차원의) 평가를 통한 전환을 넘어 좀 더 원숙한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며 "법 개정을 통한 일괄 전환의 방법을 정부가 적극 모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자사고·외고 폐지를 시도 교육청에 맡기게 되면 시도별로 불균형이 발생하는데다 평가 지표가 공개된 상황에서 재평가를 치르는 현재의 평가 방식은 '시험문제를 공개한 뒤 시험을 치르게 하는 방식'과 다를게 없어 자사고·외고 전환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조 교육감은 대신 정부가 나서 자사고·외고의 설립근거를 포함하고 있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개정하는 방식으로 전환할 것을 주문했다.

자사고·외고 폐지를 공식선언했던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 역시 당초 시도 교육청 재평가를 통한 전환방식 대신 최근 들어서는 법률 개정을 통한 전환을 촉구하고 있다.

이 교육감은 6일 열린 취임 3주년 기자 간담회에서 "정부가 자사고와 외고 설립근거인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상의 규정을 삭제한다면 일반고로 전환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진보 교육감들이 자사고·외고 폐지 방식으로 '정부의 법령 개정'을 주문하고 나선 속내는 당사자들의 반발이 매우 부담스럽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조 교육감의 경우 교육감 취임 직후인 지난 2014년과 2015년 관내 일부 자사고와 외고를 재평가에서 탈락시켰다가 해당 학교와 학부모들의 거센 집단반발에 시달려야 했다.

올해 재평가 과정에서도 조 교육감은 전국의 자사고·외고연합회와 학부모 연합회까지 잇따라 항의성명을 발표하고 거리시위에 나서는 등의 강한 반발에 직면했다.

내년 선거를 앞둔 시도 교육감으로서는 이같은 반발이 부담스러울수 밖에 없다. 서울시 교육청 관계자는 "평가를 통해 자사고·외고를 전환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거듭 촉구했다.

하지만 정부로서도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김진표 위원장의 '시도 교육청 책임론'과 함께 김상곤 신임 교육부장관도 "구체적인 방법과 절차는 국가교육회의에서 결정할 것"이라며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자사고·외고 폐지 문제가 '사학법인의 자율성 침해'와 '학생, 학부모의 학교 선택권 침해' 문제로 확대될 경우 해당 학교와 학부모의 울타리를 넘어서 전국적인 이슈가 되면서 보수야당과 사학법인, 종교계, 학부모로까지 '전선'이 확대될 수 있는 폭발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같은 면 때문에 '상대방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도록' 요구하고 있는게 정부와 시도 교육청의 현재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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