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채권자 아닌 채무자 입장에서 대책 세워야”

전문가들 "금융회사 건전성에만 촛점 맞추지 말고 빚 못갚는 가계 주목해야"

후보시절 가계부채 관련 공약을 발표하는 문재인 대통령(사진=유튜브 캡처)
다음 달 나올 새 정부의 가계부채 종합대책에 담길 내용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가계부채문제는 1,400조 원 가량이라는 엄청난 수치 때문에 ‘한국경제 위기의 뇌관(IMF보고서)’이라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과연 폭발성이 있느냐”는 회의론이 정책당국자들 사이에 존재한다.

금융위원장에 내정된 최종구 수출입은행장은 지난 4일 "가계 부채는 국민총생산 규모에 대비해 확실히 과다하고, 이것이 우리 경제의 지속 성장을 저해한다는 의견도 있고, 과연 폭발성이 있느냐하면 그렇게 보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고 말했다.

가계부채에 대해 큰 문제가 없다고 보는 당국자들은 근거로 가계부채에선 주택담보대출(이하 주담대)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대부분 연체 없이 잘 상환되는 우량한 대출이라는 점을 든다.

그러나 이런 시각은 금융회사가 돈을 떼이고 부실화돼서 경제 위기로 번질 수 있느냐는 ‘시스템 위기’의 관점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국회 입법조사처의 원종현 입법조사관은 최근 더불어민주당 김영주 의원이 주최한 가계부채 토론회에서 “과거 정부에서 발표하는 여러 가지 가계대출 관련 대책들을 보면 많은 부문 금융기관에 대한 건전성을 확보하는 것에 주력하고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고 평가했다.

원종현 조사관은 “가계대출의 본질적인 문제는 우리나라의 부채보유가구의 소득 대비 원리금에 대한 부담을 의미 하는 채무상환비율, 즉 소득대비 상환비율인 DSR이 증가되고 있다는 것”이라며 “우리나라 가계대출의 DSR은 2008년 5.4%에서 2010년 11.4%, 2011년 12.9%로, 그리고 2016년 14%를 웃도는 것으로 추산된 바도 있다”고 소개했다.

가계의 가처분 소득, 즉 가계가 쓸 수 있는 돈이 갈수록 줄어들면서 그만큼 빚 부담이 커지고 있는 경향이 문제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빚을 못 갚게 되는 사람이 늘어나면 이들이 경제활동에서 소외되면서 그만큼 성장의 잠재력을 훼손하게 돼 경제 전체의 부담으로 다시 돌아온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홍익대학교 경제학과 전성인 교수는 가계부채에 대해서는 금융회사의 건전성이 아닌 한계 채무자로 문제를 보는 시각을 바꿔야 한다면서 “빚을 갚지 못하는 것은 채무자의 책임이라는 시각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빚을 갚지 못하게 된 상황이 온 데는 그 빚을 내준 금융회사의 책임도 있다. 어차피 빚을 못 갚게 된 사람에 대해선 부채의 원금을 탕감하거나 나아가 상환을 면제해 줄 필요가 있다. 채무 탕감이나 면제를 통해 그 사람이 가진 인적 자본을 생산활동에 다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가계부채에 대해 건전성 측면에서 관리해온 금융위원회는 8월말 발표할 종합대책에 ‘가계부채 관리의 주무 부처’로서 그동안 시행해온 정책들외에 금융위가 딱히 더 추가할 방안은 없다는 입장이다.

현재 시행중인 DTI(총부채상환비율, 소득 대비 대출 상환비율)에 대해 “차주의 상환능력 등을 보다 정확히 반영할 수 있도록 소득 산정방식을 개선”하는 정도가 새로 추가된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은 금융회사들의 준비가 필요해 당초 예정했던 2019년에 도입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이런 부처 입장 때문에 최종구 금융위원장 내정자는 “가계부채 문제는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없어 보인다"며 "무엇보다 빚을 갚을 수 있어야 하고 그러자면 소득이 유지되거나 향상돼야 하는데 이는 범 정부적 정책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본다"고 말하기도 했다.

현재 청와대 정책실과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한국은행 등이 논의중인 가계부채 종합대책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이미 공약한 가계부채 7대 해법이 다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이 공약한 해법은 ▲ 체계적인 가계부채 총량관리 : 총부채상환비율(DTI) 대신 여신관리지표로 총체적 상환능력심사(DSR) 활용 ▲빚 내지 않고 살 수 있는 사회 구축 : 감소일로에 있는 가계소득 증가율 추세 전환, 생계형 대출 축소를 위한 생활비 절감 종합 계획 시행 ▲고금리 이자부담 완화 : 대부업 등 최고이자율을 이자제한법에 따른 이자율로 일원화, 원금을 초과하는 이자부과 금지 ▲소액・장기연체 채무에 대한 과감한 정리 : 행복기금 보유 1000만 원 이하 10년이상 연체 채권 소각으로 사실상 상환이 불가능한 취약계층의 생활권 확보 ▲소멸시효가 완성되거나 임박한 ‘죽은 채권’ 관리 강화: 소멸시효 완성채권에 대한 불법추심방지법 제정으로 시효 경과 사실을 고지하지 않고 상환을 종용하는 행위 금지 ▲금융소비자보호법 제정, 금융소비자호보 전담기구 설치 : 금융기관의 과도하거나 불공정한 ‘약탈적’ 대출 규제, 금융피해에 대한 즉각적인 구제절차 확보 ▲비소구 주택담보대출(유한책임대출, 채무상환 불가능시 주택만 처분하고 그 이상의 원금 상환 책임은 묻지 않는 대출) 확대다.

홍익대 전성인 교수는 “가계부채 문제를 채무자의 고통이나 채무자가 보유한 인적 자본 유지로 정의한다면 이런 해법이 잘 시행될 경우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부채 총량이 문제라고 정의하면 다중 채무자나 장기 연체자에 대한 채무 재조정만으로는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대출금리나 주담대 등에 대한 다른 정책수단을 써야 한다”며 다만 “예를 들어 대출 원리금 상환이 가계부채 총량 억제에 효과적이라고 해서 기존 대출까지 확대 적용하는 것과 같은 위험한 정책은 쓰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계부채가 문제되지 않으려면 결국은 가계의 소득이 늘어나거나 빚이 줄어야하고, 이렇게 하자면 '종합대책'에 새 정부의 일자리 창출 정책이나 한계 가구에 대한 지원 정책이 맞물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기획재정부는 현재 새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 정책기조에 따라 이런 방안들을 검토하면서 수위 조절을 고심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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