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라스부르의 종교개혁가 마르틴 부처

[앵커]
유럽의회와 유럽평의회 등이 자리하며 유럽의 수도로 불리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는 종교개혁의 도십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종교개혁가 마르틴 부처와, 부처의 영향을 받아 장로교 제도를 확립한 칼빈 등이 활동한 도신데요.

스트라스부르가 간직하고 있는 종교개혁의 흔적을 찾아가봅니다. 천수연 기잡니다.

[기자]

프랑스 북동부에 위치한 스트라스부르는 중세시대 부유한 자치도시였습니다.

높게 치솟은 스트라스부르의 대성당. 거대하면서도 정교하고, 화려한 대성당은 무려 350년 동안 지어졌습니다.

경제적 풍요로움 속에서 영성을 갈구하던 스트라스부르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대성당 앞 광장에는 금속활자를 발명한 구텐베르크의 동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가 가져온 인쇄술의 혁신은 80년 이후 면죄부 판매에 반발한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을 빠르게 확산시켰고, 루터의 독일어 번역 성경을 보급하는데도 기여했습니다.

스트라스부르에서는 특히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종교개혁가 마르틴 부처를 만날 수 있습니다.

마르틴 부처는 개혁교회의 예배의식을 처음 창시하고 목사와 교사, 장로와 집사 등 개혁교회의 직제를 처음 도입한 인물입니다.

1523년 이곳 성토마스교회에서 사역한 마르틴 부처는 성경에 근거한 개혁을 강조했습니다.

수 천 페이지에 달하는 복음서와 에베소서, 로마서 주석을 펴내는 등 성경에 정통한 인물이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종교개혁 진영, 더 나아가 신구교의 분열까지 막기 위해 애쓰며 교회연합 정신을 고수하기도 했습니다.

[최윤배 교수 / 장신대]
"성경의 원리에 의해서 어떻든 간에 합해보려고 그러니까 오해를 많이 받았어요. 루터는 부처보고 스파이라고 하고 츠빙글리는 부처보고 루터편이라고 하고..."

부처는 장로교의 체계를 세운 칼빈의 영적 아버지이도 합니다.

종교탄압을 피해 스트라스부르로 이주한 프랑스 개신교도들을 위해 부처는 칼빈을 초청하고, 칼빈은 3년 동안 이 도시에서 사역하며 부처의 사상을 체계화 합니다.

[최윤배 교수 / 장신대]
"마르틴 부처는 내용이 풍부하고 많고 부흥사 기질이 있어 장황하다 보니 독자들이 읽기 어려웠어요. 그걸 칼빈은 핵심을 다 뽑아서 간결하게 이걸 체게적으로 내는 거예요."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부처의 종교개혁 정신과 교회연합 정신은 칼빈을 통해, 교회를 통해 지금도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CBS뉴스 천수연입니다.

[영상 천수연 편집 서원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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