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영상 공개 연구팀, "한일합의 후 예산 취소돼"

국회에서 지원받기로 한 3억 예산…돌연 취소 후 화해·치유재단으로

- 버마로드 차단한 일본군 최전방 부대의 위안소
- 박영심 할머니가 증언한 만삭의 위안부 사진, 사진 속 인물들 영상에도 등장
- 정진성 교수팀, 위안부 연구와 외교적 역량을 키우기 위해 자료 조사 ・ 수집
- 밀봉된 수천 개 필름을 뒤져 찾은 18초 영상,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 수준"
- 3, 4년간 미국에서 발굴한 자료 250여 건…발간 작업할 것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30~20:00)
■ 방송일 : 2017년 7월 5일 (수) 오후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강성현 교수(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 정관용> 1944년에 촬영된 위안부 동영상이 최초로 지금 공개가 됐습니다. 이번 자료 발굴을 주도하신 성공회대 동아시아 연구소 강성현 교수 전화로 연결합니다. 강 교수님 안녕하세요.

◆ 강성현> 안녕하세요.

◇ 정관용> 18초짜리 동영상이던데 언제 어디에서 누가 누구를 찍은 겁니까?

◆ 강성현> 피사체는 한국인 위안부고요. 더 정확히 말씀드리면 조선인 위안부죠. 평양이라든지 황해도라든지 평안남도에 주소를 둔 당시 식민지 여성들이 포함되어 있고요. 그런 의미에서 조선인 위안부라고 말하는 게 맞겠고요. 그래서 이 영상은 조선인 위안부를 피사체로 삼은 최초의 영상입니다. 그리고 이 영상은 미군 사진병이 최초로 촬영한 영상이고요.

◇ 정관용> 어디서요?

◆ 강성현> 중국 송산(松山)이라고 하는 곳은 구글 지도로 치면 나오지가 않아요. 지금은 전적지(戰跡地)만 있는데요. 좀 크게 얘기하면 버마와 중국 국경지대에 강이 하나 흐르는데요. 버마에서 '쌀윈 강(Thanlyin River)'이라고 부르는데요. 딸린 강을 지나가는 버마로드가 있어요. 버마도로 상에 송산이 위치해 있습니다.

중국 송산의 한국인 일본군 위안부 사진. (사진=서울시 제공)

◇ 정관용> 거기에 일본군 부대가 있었던 겁니까?

◆ 강성현> 네, 왜냐하면 이 버마로드가 이른바 원장루트라고 장개석의 국민당 지원군을 원조해 주는 연합군의 유일한 루트였어요. 일본군과 싸우는 중국군을 원조해 주려면 이 버마로드를 지나서 원조 물자를 보내야 하는데 이를 차단하고자 여기에 부대를 배치해서 요새를 구축한 다음에 방어를 했던 곳이죠.

◇ 정관용> 그 일본군 부대 안에 위안소가 있고 거기에 배치된 조선인 위안부들이 찍혔다, 이 말이군요.

◆ 강성현> 그렇죠. 일본군이 배치된 곳이라면 어디든지 위안소가 설치돼 있었고 최전방이었고 그리고 송산에는 24명의 조선인 위안부가 주축이 된 위안소가 설치돼 있었고 이번에 나온 영상은 24명 중에 14분이 돌아가시고 10명이 포로로 잡히는데요. 그 10분 중에 최소 5명이 포착된 영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정관용> 조선인 위안부들의 인적 사항까지도 기록이 있어요?

◆ 강성현> 관련한 명부를 저희가 2002년, 2003년에 정진성 교수팀에서 발굴을 했고요. 주소지를 보면 대한민국의 경우는 서울과 진주, 논산 이런 기타 등등에서 끌려오신 분들이고요. 이북에서는 평양, 황해도, 평안남도, 신의주 이렇게 나와 있어요.

◇ 정관용> 알겠습니다. 그렇게 명부는 이미 2002년, 2003년에 발굴이 됐는데 이번에 찍힌 동영상 속에 그분들이 그 명부에 그분이라는 것을 어떻게 확인하죠?

◆ 강성현> 이제 그 명부와 관련 있는 사진이 기존에 발굴되어 있었어요. 송산에서 포로로 잡힌 조선인 위안부 4명이에요. 그중에 한 장의 사진은 굉장히 유명한 사진인데요. 임신해 있던 그 여성인데.

◇ 정관용> 많은 분들이 본 사진입니다.

◆ 강성현> 그렇죠. 박영심 할머니가 2000년 국제소송 전범 법정에서 이 임신한 여성이 바로 나다라고 지적을 하면서 다시 한 번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게 하는 그런 계기가 됐던 사진인 것 같아요.

◇ 정관용> 그 사진 속에 등장했던 분들이 이번 동영상에 등장한다는 말이죠?

◆ 강성현> 네, 일치합니다.


◇ 정관용> 그런가 이게 최초로 공개가 됐어요? 그렇게 동영상이 전혀 없었습니까?

◆ 강성현> 자료라는 게 검색하면 나오는 자료들이 아니에요. 저희가 미국에 한국의 국가기록원 같은 미국의 국립문서기록관리청 같은 곳에 가서 미국 등 연합군이 생산한 일본군 위안부 자료들을 조사 발굴해 왔는데요. 문서와 사진을 발굴해 왔고 이번에 영상 두 개를 발굴했는데 그 발굴 수준은 서울에서 우리가 원하는 김서방 찾기 수준이에요. 그러니까카탈로그나 목록도 다 작성돼 있지 않아요.

◇ 정관용> 그러면 필름 같은 걸 하나하나 다 돌려가면서 봐야만 확인되는 거로군요.

◆ 강성현> 수백, 수천 밀봉해 담겨져 있는 필름들이 굉장히 많고요. 그중에 저희가 타겟팅 조사를 해서 200여 통 정도로 추린 다음에 그걸 일일이 확인을 했어요. 그러니까 이번에 18초짜리를 발굴했지만 릴통은 한 1시간짜리 영상이 여러 영상들이 담겨져 있는 사진이고 릴통이 있고 그중에 18초를 저희가 찾아낸 거죠.

◇ 정관용> 꼼꼼히 보셔야 되는 거군요.

◆ 강성현> 네.

2015년 12월 28일, 윤병세 외교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이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 정관용> 이게 그런데 연구팀이 서울시하고 서울대학교 인권센터가 주축이 돼서 연구팀이 만들어졌다고요? 이거 왜 서울시랑 서울대인권센터가 주축이 됐어요? 정부 차원이 아니고.

◆ 강성현> 원래 서울대학교 인권센터에 정진성 교수님이 계셨어요, 소장으로. 정진성 교수님은 한국의 위안부 연구와 운동에 있어서 선구자시고요. 그분이 많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위안부 연구의 바탕을 키워놓고 외교적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는 자료가 필요한데 그간 25년 동안에 김학순 할머니 증언 이후 위안부 연구와 운동이라는 게 좀 너무 운동에 매몰돼 있었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어요. 그리고 자료도 사실 다 일본 자료고요. 그래서 이런 자료들을 좀 체계적으로 조사, 수집해야겠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서울대인권센터가 연구를 시작했고 이후에 여성가족부의 지원을 받기로 했고, 국회에서 3억 예산이 나왔고요. 사업자 선정이 된 적이 있는데요. 언론 보도가 많이 됐는데 석연치 않은 이유로 한일합의 직후에 저희 사업이 취소가 됐어요. 일방적으로 취소를 당했고요. 그리고 그 이후에 서울시가 이 사실을 알고 사업팀을 이제 재정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었어요.

◇ 정관용> 그러니까 원래는 여성가족부가 3억 지원하기로 확정이 된 게 한일 간 이른바 합의라는 게 있은 이후에 취소되어 버렸다.

◆ 강성현> 네, 그리고 그 3억 원 화해치유재단으로 들어갔다라고 알고 있어요.

◇ 정관용> 화해치유재단으로 그 3억이 들어갔대요?

◆ 강성현> 저희 돈만 들어간 제 아니고 위안부 관련 시민단체나 여러 연구 예산들이 전부 이제 화해치유재단 쪽으로 예산이 들어가서 쓰이다가 2016년 12월쯤에 다시 이제 국회에서 문제 삼고 여러 가지가 부랴부랴 문제가 되면서 그렇게 다시 또 다른 방식으로 예산의 편성들이 있었던 것 같기는 한데요. 2016년 상황입니다.

◇ 정관용> 앞으로 더 연구가 진행되면 더 많은 자료나 동영상도 추가발굴이 가능하겠네요.

◆ 강성현> 저희가 지금 미국 자료만 한 3~4년째 진행해 오고 있고요. 이미 충분히 많이 찾았어요. 그래서 250여 건, 수천여 장을 찾았는데요. 이걸 대중화시키고 사회의 연구자 혹은 외교 관련한 일에 쉽게 접근 가능할 수 있도록 활용될 수 있도록 그런 것들을 편찬하고 발간하는 작업들을 진행하고 있고요. 추가로 미국뿐만 아니라 영국과 기타 연합국 소속 자료 기관들을 자료 조사 수집 계획이 있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 정관용> 이제는 정권도 바뀌었으니까 정부에서 예산 지원하겠죠?

◆ 강성현> 그렇겠죠. 아무래도 너무 힘들었네요, 그동안.

◇ 정관용> 수고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 강성현> 감사합니다.

◇ 정관용> 성공회대학 동아시아연구소 강성현 교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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