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심용환은 이날 저녁 CBS노컷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한국의 정치 지도자를 새긴 티셔츠가 (해외에서) 나온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라며 "개인적으로 들어본 적 없는 굉장히 특별한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물론 국제 사회에서 고 김대중(1924~2009) 전 대통령의 위상이 굉장히 높은데, 현지 교포들의 노력과 고위급 인사들을 중심으로 다져진 면이 크다. 반면 '문재인 티셔츠'의 경우 SNS를 중심으로 밑바닥으로부터 전파된 현상으로 다가온다. 하나의 사례를 광범위하게 반영하기에는 조심스러운 면이 있지만, 특이한 사건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심용환은 대만의 현대사를 설명하면서 이곳에서 문 대통령 티셔츠가 나온 것에 주목했다. 그는 "대만은 굉장히 늦게 민주화가 시작됐음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성공시킨 독특한 역사를 지녔다"며 말을 이었다.
"동아시아 국가 가운데 가장 활발하게 민주화의 성과를 이뤄내고 있는 나라가 한국과 대만이다. 그 나라의 부강함과는 상관 없이 중국 일본 홍콩의 경우 한국이나 대만과 같은 정권 교체를 경험하지는 못했다. 이렇듯 비슷한 역사적 배경으로 쌓인 공감대가 문 대통령 티셔츠의 등장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에 따르면, 1949년 중국 본토에서 공산당에 패한 장제스(蔣介石·1887~1975)는 대만으로 넘어와 엄청난 탄압을 가했다. 권력은 그의 아들 장징궈(蔣經國·1910~1988)에게로 이어졌는데, 1949년부터 1987년까지 40년 가까이 계엄령이 이어졌다는 사실은 그 시절 엄혹했던 정치 구조를 단적으로 증명한다.
심용환은 "장징궈 사망 이후 대만은 서서히 해금 과정을 겪었고, 2000년 민진당이 첫 정권교체에 성공하면서 국민당 장기집권시대를 끝냈다"며 "지난해에는 차이잉원(蔡英文) 민진당 주석이 선거에 승리하면서 첫 여성 총통으로서 대만 역사상 세 번째 정권교체를 이뤘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만의 민주화 과정에서 흥미로운 것은 탈핵운동과 같은 사회 이슈가 정권교체와 긴밀하게 이어졌다는 점"이라며 "이는 그간 정권교체 자체가 목표로 작용해 온 우리나라와는 또 다른 모습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대만의 정치 구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 "촛불혁명과 문재인, 국제사회 악조건 드라마틱하게 역전시켜"
"다른 나라에서 한국의 민주화 과정을 볼 때 촛불혁명은 굉장히 인상적이었을 것이다. '박근혜 게이트'가 터진 뒤 일본 산케이신문 같은 경우 굉장히 선정적인 형태로 이를 보도하면서 비웃기도 했다. 한일 '위안부' 협상을 비롯해 동아시아 외교 무대에서 역시 박근혜 정권 때 위축된 것이 많았다. 사드 배치 문제만 봐도 중국이 외교 관례를 깨고 직설적으로 비난하지 않았나. 이 모든 것에 박근혜 정권은 속수무책이었다."
"촛불혁명으로 증명된 우리네 시민의식은 이러한 국제사회에서의 악조건을 굉장히 평화적이고 드라마틱하게 역전시켜 버렸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저 나라가 보통이 아니구나'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하는구나'라고 주목했을 것이다. 여기에 문 대통령이 집권한 뒤 보여주고 있는 품위와 품격 있는 모습, 그러니까 위태위태하더라도 보수를 아우르면서 진보적 의제를 긴 호흡으로 가져가는 모습은 국제사회가 봤을 때도 인상적일 것이다."
결국 "촛불혁명을 통해 '야, 이 나라 대단한 측면이 있네'라고 느꼈는데, 그렇게 뽑힌 지도자가 동아시아 특유의, 어쨌든 유교문화권으로 묶였던 경험이 있으니까, 예의와 겸손을 갖추면서도 굴하거나 사대적이지 않은 호감도로 타국인들에게 어필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의 행보는 동아시아인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된다. 촛불혁명이라는 민주화의 커다란 성과를 밑바탕에 두고, 그 인물의 품위와 품격이 더해지면서 문 대통령은 한국 민주화의 상징성을 갖게 된 셈이다. 문 대통령이 국제사회에서 높은 호감도를 만들어 두면 한중일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와의 소통에서 좋은 통로가 될 것이다."
◇ "'문재인 티셔츠', 동아시아인들이 한국에 주목한다는 작은 증거"
심용환은 "바둑으로 치면 문재인 정부는 포석을 까는 데 성공했다고 본다"며 "보수가 노무현 정부, 진보를 집어삼키던 방식을 활용 못하도록 보수적 어휘와 자세를 취하면서도 진보적 어젠다를 갖고 가겠다는 포석은 완벽하게 성공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이제 실질적인 개혁을 단행하는 과정에서의 승리가 중요할 것이다. 일진일퇴의 본격적인 전투가 벌어질 것이다. 제가 문재인 정부에 드리고 싶은 말씀은 작은 전투나 유리한 전투에서 확실하게 승리해 나갔으면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통신비 인하 정책 같은 경우는 모두가 원하는 부분인데, 현재 나온 인하 정책은 허술한 면이 있다. '이 정도 사건을 이렇게 처리하면 더 큰 일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라는 걱정이 들 정도로 너무 쉽게 물러섰다는 생각이 든다. 국민 대다수가 지지하는 가운데 작은 전투에서 깔끔하게 승리한다면, 그 전투에 승리했을 때 지지도가 올라간다면 그것이 큰 전투를 유리하게 가져갈 동력이 될 것이다."
'촛불혁명을 이뤄낸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물음에 그는 "이제부터 조금씩 동아시아 구성원으로서 지녀야할 책임감을 고민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겨우 정권교체 하나 이뤄낸 것일 뿐인데, 섣부른 발언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잘 사는 나라에 속하지 않나. 냉정하게 따지면 우리는 여전히 식민지 피해의식에 머물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는 너무 쉽게 대만을 '중국의 변방'으로 인식하고, 너무 쉽게 '짱깨' '쪽바리'라는 말을 한다. 이번 대만의 '문재인 티셔츠' 등장은 대만 사람들, 동아시아 사람들이 한국을 주목하고 있다는 작은 증거다. 그렇다면 우리도 이제는 중국 일본 대만 등 동아시아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세계시민주의적인 품위와 품격을 갖출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심용환은 "대만의 '문재인 티셔츠'는 대만 사람들의 사고가 이미 동아시아적이라는 것으로, 어쩌면 우리보다 더욱 열린 사고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며 "이제는 우리도 동아시아적인 관점에서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아시아적인 사고를 한다고 해서 하등의 불리할 것이 없다. 그것이 반미도 아니고, 북한 독재정권을 찬양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도 지금 아베 총리가 위기다. 일본에서 이제는 민주당이 집권해야 할 때라고 본다. 미국보다는 분명 동아시아 공동체의 책임감을 강조했던 정당이기 때문이다. 중국 역시 동아시아 문제에 있어서 신중을 기하고 있는 정세에서, 우리는 동아시아적인 관점에서 정치 경제 사회적인 사안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