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협회 기술위, ‘반쪽짜리’를 자처한 이유

내년 중 정관 바꿔 감독선발위원회 신설 계획

김호곤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은 자신이 구성한 8인의 기술위원회가 한국 축구 전반의 성장이 아닌 축구대표팀 감독 선임을 위한 모임이었다고 설명했다.(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동족방뇨(凍足放尿)’. 우리 말로 바꾸면 ‘언 발에 오줌 누기’다.

대한축구협회는 지난달 26일 김호곤 부회장을 새로운 기술위원장으로 선임했다. 지도자로, 또 축구행정가로 오랜 경험을 가진 김 부회장이라는 점에서 지난달 15일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경질과 함께 물러난 이용수 기술위원장의 빈자리를 대신하는데 크게 무리가 없는 인물이다.

다만 기술위원회의 구성은 분명 아쉽다. 기술위원회 개편 의지를 밝힌 김 기술위원장은 최영준 유소년 전임지도자, 조긍연 한국프로축구연맹 경기위원장, 하석주 아주대 감독을 유임했다. 대신 조영증 프로축구연맹 심판위원장, 박경훈 성남FC 감독, 황선홍 FC서울 감독, 서정원 수원 삼성 감독에 현역 은퇴 후 해설위원으로 활약 중인 전 국가대표 골키퍼 김병지를 새롭게 발탁했다.

선임 당시 김호곤 기술위원장은 “시급한 국가대표 감독 선임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우선 8명으로 기술위원회를 구성했다”면서 “향후 유소년과 여자 분야 등을 담당할 기술위원을 추가로 선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실상 이번 기술위원회는 한국 축구의 미래를 논의하는 모임이 아닌 당장의 축구대표팀 감독 선임을 논의하기 위한 모임이라는 점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이용수 전 기술위원장은 스스로 떠나며 ‘기술위원회’와 ‘감독선임위원회’의 분리를 당부했다. 한국 축구 전체의 발전을 위해 일해야 하는 기술위원회는 지속적으로 임기를 보장해 꾸준하게 일할 수 있는 사람을 활용하고, 대표팀 감독을 선발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몇몇 임원과 기술위원의 추천을 받아 결정하는 방안이다.


하지만 축구협회는 새로운 기술위원회를 사실상 감독선발위원회로 구성했다. 발등에 떨어진 불만 끄고 말겠다는 임시변통에 그쳤다. 한국 축구의 미래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은 엿보이지 않는다. 축구대표팀 감독 선임에 밀려 당장 19일 베트남에서 개막하는 2018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U-23) 챔피언십 예선을 이끌 감독은 뽑지도 못했다. 축구협회 전임지도자 가운데 임시감독을 찾을 예정이다.

8명의 기술위원 가운데 K리그 현역 감독은 황선홍 FC서울 감독, 서정원 수원 삼성 감독, 박경훈 성남FC 감독까지 3명이나 된다. 과연 이들은 현재 이끄는 팀 성적보다 한국 축구의 발전에 더욱 신경을 쓸 여유가 있을까.(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8명의 기술위원 가운데 무려 4명이 현역 감독이다. 대학무대와 프로무대에서 활약하는 이들인 만큼 현장감각은 그 누구보다 뛰어나다. 하지만 과연 이들에게 기술위원회와 소속팀 일정을 놓고 선택하라는 요청을 쉽게 할 수 있을까. 이미 축구협회는 여러 명의 기술위원이 프로팀 감독 제안을 받고 ‘1인2역’을 할 수 없어 기술위원회를 떠난 아픈 경험을 했음에도 같은 선택을 했다.

현역 K리그 감독의 기술위원 역할에 대해 김호곤 기술위원장은 4일 파주NFC(국가대표 트레이닝센터)에서 취재진과 만나 “최종예선 기간에 리그가 쉬는 만큼 역할에는 문제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다른 축구계 관계자는 “K리그 감독들이 (리그가 진행되는 가운데) 기술위원의 역할을 정상적으로 수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들다”고 우려했다. 사실상 반쪽짜리 기술위원회다.

한국 축구의 기틀을 다져야 하는 기술위원회라는 점에서 유소년, 여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필요하다. 최근 세계적인 축구 강국이 적극 도입하는 최신기술의 도입 등을 논의할 전문가가 전혀 없다는 점도 아쉽다. 이에 대해 김호곤 기술위원장은 “내년에 정관을 바꿔 기술위원회 조직을 새롭게 할 계획이다. 감독선발위원회를 따로 만들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축구협회 기술위원회는 오직 축구대표팀만 위해 존재하는 조직은 아니다. 감독 한 명 잘 뽑아 성적만 나오면 한국 축구가 저절로 잘 커갈 것이라는 발상은 더는 통하지 않는다.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치열한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2017년 현재 한국 축구는 위기다. 국제 유소년 대회에서는 예전처럼 성적이 나지 않는다. 성인 대표팀 역시 월드컵 본선 출전이 위태로운 상황이다. ‘아시아 최강’이라는 표현은 그저 씁쓸한 자위에 그칠 뿐이다. 기술위원회의 존재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상황에서 과연 대한축구협회는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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