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끝작렬] 한국기자들이 백악관에서 소동을 부렸다고요?

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 노컷뉴스 기자들의 취재 뒷얘기를 가감 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 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 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사진=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간 첫 만남이었던 한미 정상회담이 끝났습니다. 문 대통령은 3박5일간의 짧은 일정을 빠듯하게 소화하며 첫 국제무대 데뷔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 동행 취재에 나선 한국 취재진들 역시 첫 해외 순방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도록 기원했고, 또 한미 정상간 만남 자체를 국민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의 미국 순방 중 하이라이트였던 두 정상간 단독회담에서 이를 취재하는 한국 기자들이 지나친 경쟁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렸고,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기자들을 꾸짖었다는 기사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습니다.

현장에 있었던 한국 펜기자(영상기자와 사진기자와 구분하겠습니다)로서 그냥 넘어가기에는 미 언론의 텃세도 문제지만,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어뷰징 기사를 생산해 내는 일부 언론의 행태도 심각하다고 판단돼 현지에서 나름 추가 취재를 통해 진실에 다가가봅니다.

어느 나라 기자들이든 취재경쟁은 심합니다. 특히 카메라 영상기자와 사진기자들은 영상 한 장면, 사진 한 컷이 주는 임팩트가 강한 만큼 취재 현장에서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 경쟁합니다. 국내 언론간 경쟁은 물론 이번 정상회담처럼 해외 정상과의 만남에서는 상대국 기자들과도 치열하게 경쟁합니다. 경쟁을 하지 않는 기자야말로 자신이 속한 언론사에 대한 해사(害社) 행위자이자 국민의 알권리에 부합하지 못하는 형편없는 언론인이지요.

물론 경쟁에도 룰이 있습니다. 경쟁하는 다른 기자들에게 최대한 피해를 주지 않을 것, 취재행위가 취재 대상을 지나치게 불편하게 만들지 않을 것 등입니다. 이번 한미 단독정상회담에서 한국 기자들이 이 두 가지를 어겼을까요? 정답부터 말하면 한국 기자들은 기본 룰을 깨지 않았습니다.

(사진=청와대 제공)
백악관 오벌 오피스는 미 대통령이 주로 외국 정상들과 단독 회담을 진행하는 장소로 로즈가든 앞에 있습니다. 제가 들어가봤는데 약 100㎡ 정도 되니 그리 큰 공간은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얘기를 빠뜨렸군요. 한미 정상회담이 진행된 오벌 오피스에는 한국 기자들만 있었던 게 아닙니다. 백악관을 출입하는 미 현지 기자들이 우리보다 더 많았습니다. 제가 한국 펜기자 풀러로 들어갔으니 가장 근접한 곳에서 봤겠지요. (Pooler, 많은 기자들이 특정 공간에 들어갈 수 없으니 몇몇 기자가 현장에 대표로 들어가 중요 발언 등을 메모해 나머지 기자들과 공유하는 언론취재 시스템)

일부 네티즌들이 어뷰징 기사로부터 제한된 정보만을 받아들여 마치 한국 기자들만 정상회담 취재에 나섰고, 서로간의 과잉 경쟁으로 국격을 떨어뜨렸다고 비판하는 데 대한 정확한 현장 팩트를 전달해 드리는 겁니다.


더 정확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단독 정상회담에 한국 기자는 총 18명 정도가 들어갈 예정이었지만 정상회담 뒤 공동 언론발표장(로즈가든) 자리 확보 등의 문제로 회담장인 오벌 오피스에는 총 11명의 한국 기자가 들어갔습니다.(ENG라 부르는 방송카메라 3대 포함 영상 기자 5명, 사진기자 4명, 펜기자 2명.)

백악관 주재 BBC 등 외신의 방송화면을 보면 단독 회담 때 오벌 오피스에 있던 기자들은 30명 정도됩니다. 맞습니다. 백악관 출입기자들이 한국기자들보다 배 이상 많았다는 거지요. 근데 왜 한국기자들의 무례한 행동에 트럼프가 짜증을 냈다는 식의 기사가 미국 일부 언론을 시작으로 한국으로까지 확대 재생산 됐을까요? 저도 궁금해서 짧은 시간에 취재해봤습니다.

발단은 청와대 전체 기자들을 대신해 현장에 들어간 저처럼 백악관 전체 기자들을 대신해 현장에 대표로 들어온 미국 기자의 현장 풀에서부터 비롯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애니타 쿠마(Anita Kumar)라는 백악관 기자는 미국 기자들에게 정상회담 관련 현장을 이렇게 묘사해 보냅니다.

The pool, which included a large contingent of Korean media, was quite large, larger than usual.

Secret Service asked Korean media to stop running as they entered the room. There was a lot of jostling as the Korean media, unfamiliar with the Oval Office, worked their way around the two chairs to get a good spot.

As the pool got situated in the room, a sofa moved and a lamp on a nearby table was almost knocked over. US aide Keith Schiller caught it before it fell.

POTUS looked visible annoyed.

"You are getting worse," he said to the room of reporters. "You knocked over a table."

"It's actually a very friendly press, don't let them get you," he said to Moon, "although they just broke a table."

Your pooler can attest to the problem as my head was hit with a videocamera on the way into the Oval and a still camera in the room.

한국 기자들이 평소보다 유난히 많았고, 백악관 관계자가 한국 기자들에게 뛰지 말라고 주의를 줬으며, 오벌 오피스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기자들이 그들만의 방식으로 두 정상을 취재하려하다가 소파가 밀리고 탁자가 흔들리고 램프가 떨어질 뻔했다는 겁니다. 또 한국 기자들이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치열하게 경쟁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기자들을 향해 짜증을 냈다는 식의 내용도 담고 있습니다.

쿠마 기자의 풀을 보고 뉴욕포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기자들의 행동을 꾸짖었다'는 식의 보도를 내보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현장에서 "탁자가 넘어질 뻔했다" "상황이 더 나빠지는 것 같다"고 말한 것은 팩트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녹음파일에도 담겨있습니다. 또 소파가 밀려 탁자를 건드렸고, 탁자 위에 있던 램프가 넘어질 뻔한 것을 백악관 관계자가 손으로 잡은 것 역시 팩트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게 한국 기자들의 과잉 취재 때문일까요?

참고로 트럼프 대통령은 미 언론과 사이가 극도로 나쁩니다.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열린 공동언론발표 직후 미국 기자들이 국내 문제와 관련해 질문들을 쏟아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대꾸도 않고 휙 돌아서 들어가버렸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오벌 오피스에서 "원래는 프렌들리한 기자들"이라고 반어적으로 언급한 것도 한국 기자들이 아닌 미국 기자들을 향해 한 것으로 해석하는 게 맞습니다. 저는 현장 풀러였던 쿠마 기자의 전형적인 미국 중심 사고와 백악관에 상주하는 미 기자들의 텃세가 이번 헤프닝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쿠마 기자는 현장에 미국 카메라. 사진 기자들이 꽤 많았음에도 오벌 오피스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 기자들의 돌발행동이라는 식으로 현장을 스케치해 미국 기자들에게 전달했습니다. 또 백악관 직원들이 한국기자들에게 뛰지 말라고 주의를 줬다고 했지만, 사실은 정반대의 상황이었습니다. 오벌 오피스로 가는 길은 백악관 브리핑룸을 통해 가는 방법과 아예 로즈가든쪽으로 돌아가는 방식 두 가지 입니다. 미국 영상기자들은 오벌 오피스 현장 진입 전부터 두 곳 출입문을 먼저 점령하고 한국 영상기자들에게 자리를 내주지 않았습니다. 좁은 복도를 지날 때도 큰 덩치로 한국 기자들보다 앞서 걸었습니다. 오벌 오피스로 들어갈 수 있는 출입문도 사전에 자꾸 변경해, 현장에 취재지원차 파견된 우리 외교부 공무원조차도 "백악관 직원들과 기자들이 우리 기자들을 따돌리기 위해 거짓 정보를 자꾸 흘리는 것 같다"고 걱정할 정도였습니다.

소파를 건드렸던 한국 영상기자는 귀국길에서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뒤에 눈이 달리지는 않았지만 미국 기자로 추정되는 사람이 자꾸 밀쳤고 결국 제가 앞으로 밀리면서 소파를 건드렸다." 다른 한국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나라 영상과 사진 기자들은 겹쳐 설 필요가 없다. 쫙 펼쳐서서 찍은 뒤 이를 서로 공유하기 때문에 일부 한국 카메라 기자들 뒤에서 자리를 잡지 못한 미국 기자들이 오히려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한국 기자들을 밀었고 결국 소파와 탁자까지 흔들린 것 같다."

실제로 미국 비영리 케이블 채널 C-SPAN이 공개한 영상을 보면 미국 기자가 한국 기자를 뒤에서 거세게 밀어 한국 기자가 앞으로 밀리면서 소파까지 건들이는 장면이 고스란히 나옵니다.

저는 펜기자인만큼 영상기자와 사진기자들이 서로 '좋은 그림'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쓸 때 바로 뒤에 서서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한국 기자들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좋은 컷과 영상을 잡아 국민들에게 알리려고 애를 썼습니다. 조금만 몸이 닿아도 유난스럽게 호들갑을 떠는 미국 기자들도 사실은 몸싸움을 합니다. 그네들도 자국 국민들에 대한 알권리와 소속 회사로부터의 압박이 있을테니까요.

참고로 정상회담 전날 있었던 문 대통령의 미 하원 지도부 간담회에서는 해외 정상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미국 기자들의 행태가 한국 기자단을 분노케 했습니다. 문 대통령 머리 위로 아무렇지도 않게 카메라를 휘휘 넘기고, 외국 정상을 동행 취재하는 상대국 언론을 밀치는 행위 등에 한국기자단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럼에도 단독 정상회담장에서 정당한 몸싸움과 자리 경쟁을 마치 한국기자들의 유난스러움 때문이라는 시각으로 초기 풀을 한 쿠마 기자에게 유감을 표합니다. 사실관계 확인 없이 쿠마 기자의 일방적인 스케치 풀을 기사화한 뉴욕포스트와 일부 미 언론에도 유감을 표하고, 특히 이를 대대적인 어뷰징 기사로 보도한 한국 언론에는 더 큰 유감을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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