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러운 '내 새끼'와 팔리는 '고기', 그 사이의 '옥자'

[노컷 인터뷰] 영화 '옥자'의 봉준호 감독 ①

29일 국내 극장과 넷플릭스에서 동시 개봉한 영화 '옥자'의 봉준호 감독 (사진=NEW 제공)
열 개 조금 넘는 질문을 준비했는데, 두어 개나 했을까. 아쉽긴 했지만 들은 내용에 부족함을 느끼지는 않았다. 이전 타임 인터뷰를 진행했던 한 기자가 전한 "봉 감독님이 말씀을 무척 잘 해 주셨다"는 말이 금세 이해됐다.

'설국열차'(2013)에서 머리칸과 꼬리칸으로 대표되는 철저한 계급 사회를 '기차'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 담아낸 봉준호 감독이 이번에는 유전자 조작과 공장식 동물 사육에 대한 풍자를 담은 '옥자'(2017)로 돌아왔다.

영화 '옥자'는 강원도 산골 소녀 미자(안서현 분)의 동물 친구 옥자를 다국적 글로벌 기업 '미란도'가 데려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틸다 스윈튼, 폴 다노, 제이크 질렌할, 스티븐 연, 변희봉 등이 출연한 '옥자'는 29일 넷플릭스와 전국 극장에서 동시 개봉했다.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봉준호 감독은 "개봉이 오늘이야"라며 웃었다. 지난 5월 중순 제70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첫 공개된 이후, 봉 감독은 수차례 공개석상에 서야 했다. 기자간담회와 각종 인터뷰에서 하도 '옥자' 이야기를 많이 한 덕에, 그동안 '아직도 개봉하지 않은 현실'이 실감나지 않았다고.

더구나 국내 영화관 점유율 90%가량을 차지하는 3대 멀티플렉스(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가, 극장에서만 독점적으로 상영되는 기한(홀드백)을 주지 않고 넷플릭스와 '동시 개봉'했다는 이유로 '옥자' 상영을 거부했다. 뜻하지 않게 플랫폼 논쟁까지 벌어져 '옥자'에 대한 관심은 나날이 높아졌다.

"저도 이런 상황을 처음 겪어보는 거라 모든 게 신기하고 어떻게 될 것인가, 하고 강 건너 불 구경하듯 하고 있다. 유체이탈 상태로. '저거 어떻게 되려나? 어, 내 영화인가?' 이런 자아 분열 경지에 오르게 됐다. (웃음)"

이 모든 소란스러운 상황이 빨리 '과거사'가 되었으면 좋겠다며, 영화에 대한 '뜨겁게 달궈진 관심'이 사라졌을 때쯤 다시 한 번 영화를 보고 싶다는 봉 감독에게 '옥자'의 숲과 나무에 대해 들어 보았다.

◇ "육식 반대, 채식 강요? 전혀 아니다"

영화는 오직 '이윤'을 위해 없는 수요를 만들어내면서까지 동물('옥자'에서는 돼지)을 괴롭히는 다국적 기업과, 옥자를 한 가족이자 친구로 여기는 미자를 배치시켜 선악 구조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옥자를 고깃덩이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생명체로 대하려 하는 미자의 사투와, 도축된 후 각각의 '부위'로 변하는 옥자의 친구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돼지고기를 맛있게 먹어 온 시간들이 심상치 않게 다가온다.

하지만 '옥자'는 결코 "육식을 반대하고 채식을 강요"하는 영화가 아니라는 게 봉 감독의 설명이다. 사실은 한 끗 차이인 동물의 두 가지 모습을 한데 섞어 이야기함으로써, 그동안 잘 분리되어 있던 '평소 생각'에 균열을 내고자 했다는 것이다. 미자보다는 미란도가 100% 이해된다는 반응, 영화 끝나고 오히려 돼지고기가 땡기더라는 반응에도 모두 반가워했다.

"우리는 어정쩡한 중간지대에 살지 않나. 완벽한 비건은 인구 중 아직 그리 많은 숫자는 아니다. 그렇다고 동물을 증오하고 학대하는 사람도 소수이고. 자기의 애완견을 사랑하지만 집에 가면서 삼겹살 먹는 중간지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만큼 일상에서는 (반려동물과 판매되는 고기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게 잘 되어 있는데, 그걸 한 영화 안에서 묶어버린 거다. (…) 이 영화가 육식에 반대하거나 채식을 강요하는 영화는 전혀 아니다. 미자도 닭백숙 먹고 그러니까. 다만, 우리가 쉽게 분리시켜서 생각하는 사랑스러운 동물 가족과 맛깔난 고기 제품을 한데 합쳐 보고 싶었던 거다."

봉준호 감독 (사진=NEW 제공)
공장식 사육과 유전자 조작을 중점적으로 다루다 보니, 동물을 괴롭히는 장면들이 빠지지 않는다. 실험실로 끌려들어가고 싶어 하지 않는 돼지들에게 전기충격을 쓴다거나, 강제 교배를 시킨다거나, 고기 질을 가늠하기 위해 살점 일부를 재빠르게 떼어낸다거나.

봉 감독은 실제로 소에게 쓰이는 바이옵시 건을 영화 안에 등장시켰다. 소 옆구리를 뚫고 들어가 고기를 집어서 나오게끔 하는 도구인데, 그 과정을 담은 동영상을 보면 정말 무시무시하다고.

도축 때는 더하다. 가죽이 벗겨지고 목이 잘리고 척추까지 정확하게 두 토막난 돼지를 보면 느낌이 "되게 이상"하고 "초현실적"이라고 한다. 밖에 있을 때만 해도 눈빛과 표정이 있었던 생명체라는 사실은 지워져 버린다.

하지만 봉 감독은 공장식 시스템에서 벌어지는 잔혹사를 노골적으로 그려내진 않았다. 그저 '평소 성향'대로 했다. 시나리오에 썼는데 촬영하지 않은 장면도, 촬영했는데 쓰지 않은 장면도 없다.

봉 감독은 "원래 하드고어한 취향이 아니다. '살인의 추억'도 연쇄살인영화고 '설국열차'도 어딘가 도끼로 잘리는데 구체적인 장면은 없다. 사운드가 되게 무서운 거지"라고 말했다.

◇ 영화의 성패를 쥐고 있는 건 단연 '옥자'

'옥자'는 제목 그대로 미란도 그룹에서 만든 슈퍼 품종 돼지 옥자에 많은 부분을 기대는 영화다. 봉 감독은 옥자가 허구라는 것을 잊었다는 반응에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고.

"영화를 5~10분 보다 보면 어느 시점에 (옥자가) CG라는 걸 잊었다고들 하더라 . 그 말 들었을 때 안도했다. 그게 아니면 영화가 아예 붕괴되니까. 또, 옥자는 관객들에게 어떤 감정을 만들어야 하지 않나. 그게 저한테는 가장 모험 내지는 부담, 도전이었다."

"(옥자는) 99.9%가 그분의 공"이라며 에릭 얀 드 보어에 대한 감사도 잊지 않았다. '라이프 오브 파이' 등 유수 작품에서 CG를 맡아 온 에릭은 만난 지 3분 안에 봉 감독에게 확신을 주었다. 이미 수많은 수퍼바이저들을 만난 상태였음에도.

극중에서 유일하게 '진실한 소통'을 하는 옥자와 미자 (사진=넷플릭스 제공)
그는 CG 전반이 아니라 '동물 CG'에 특화된 사람이었다. 동물원에 가서 세 시간 동안 동물을 보다 오고, 정육점에 가서 직접 동물 뼈를 분해해 보는 사람. 봉 감독 말마따나 "접근하는 레벨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사랑스러운 돼지 옥자가 관객과 시청자들을 만나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있었던 것은 물론이다. 보다 정교한 모습을 만들기 위해서는 겉모습뿐 아니라 골격부터 차근차근 쌓아야 한다. 영화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가 보는 옥자는 장기, 근육, 피부 사이의 지방질까지 고도의 기술로 설계된 완성본이었다. 그래야만 움직일 때의 출렁임과 무게감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엄청난 '노가다'에 적게는 120명, 많게는 170명의 아티스트들이 투입됐다.

어릴 때부터 미자와 한몸처럼 자라 온 옥자는 영리하고 기지도 많은 똑똑한 돼지다. 영화 초반 벼랑에 떨어질 뻔한 미자를 구하기 위해 자리를 옮기고 자기가 떨어지기도 한다. 육중한 크기로 사람들의 시선을 압도하는 '슈퍼 돼지' 옥자는 그러나, 영화 후반부에는 악랄한 미란도에 의해 옴짝달싹 못하는 나약한 존재로 비쳐진다.

옥자의 갑작스런 변신에 의문을 품자 봉 감독은 "그게 고문 후유증"이라고 답했다.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끌려간 곳이 실험실이고, 여성 돼지로서 벌어질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일을 겪는다. 그래서 일시적으로 미자를 못 알아보지 않나.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던 미자인데…."

서울에 있을 때 회현지하상가에서 벌인 추격전과 달리 뉴욕에서는 다소 얌전히 있었던 것에 대해서도 "처음 시나리오 쓸 때부터 (뉴욕에서는) 또 한 번의 거대한 액션이 아니라 미자와 옥자의 정서적인 부분에 집중하려고 했다"며 "(더 큰 규모로) 때려부수는 걸 기대한 관객들에게 뉴욕의 씬들은 약간 성에 안 찰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미자와 옥자의 정서적 교감은 이 영화의 중요한 코드 중 하나다. 보통 인간들에게는 전혀 들리지도, 이해되지도 않는 옥자의 언어를 미자는 알아듣고 서로 의사소통한다. 모든 등장인물이 어떤 형태로든 거짓말을 하는 것과 달리 미자와 옥자는 서로 진심을 나눈다. 영화를 이끌고 가는 힘도 '사람과 동물의 커뮤니케이션'에서 나온다.

"둘이 무슨 귓속말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인간하고 동물이 커뮤니케이션이 되지 않나. 나중에는 옥자가 미자에게 귓속말하는 장면도 있고. 생명체의 이야기를 들어보자는 거였다. 그 장면을 되게 고요하면서도 마음의 울림이 있게끔 찍어보고 싶었다. 그 장면이 관객의 뇌리에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노컷 인터뷰 ② '봉테일' 봉준호 감독이 들려준 '옥자'의 숨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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