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보도 속 통계로만 접해 온 '난민'의 '진짜 얼굴'

[현장] 제3회 난민영화제 개막식&'구원'-'경계에서' GV

24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중구 대한극장 7관에서 제3회 '난민영화제' 개막식이 열렸다. (사진=김수정 기자)
"오늘 볼 영화들은 역경과 두려움, 분쟁과 파괴, 용기와 믿음, 희망과 연대에 대한 이야기일 것입니다. 난민은 우리와 전혀 다르지 않은 사람들, 평범하지 않은 상황을 견뎌내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 이야기들을 나누어 이 이야기들이 살아있도록 해 주십시오. 이 이야기들의 불씨를 살려둠으로써 우리는 난민이 얼굴 없는 통계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보호를 필요로 하는 실존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24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중구 대한극장에서 한국 난민지원 네트워크(이하 난민네트워크) 주최로 제3회 '난민영화제' 개막식이 열렸다.

이날 축사를 맡은 유엔난민기구(UNHCR) 한국대표부 나비드 후세인 대표는 "6500만 명이 집을 잃은 오늘날, 유럽조차도 외국인 혐오 정책을 거론하는 오늘날, 우리가 난민에 대한 얘기를 계속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후세인 대표는 무엇보다 이날 자리를 가득 메워준 관객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했다. 그는 "오늘 이 자리를 빛내주신 여러분들에게 특별히 감사하다. 여러분들이 주인공이다. 지속적인 연민과 지지를 보여주실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축사 이후에는 이한철 밴드의 축하 공연이 펼쳐졌다. 이한철은 "제3회 난민영화제 정말 많이 축하드리고, 개막하는 자리에 초대해 주셔서 정말 고맙다. 드럼 치고 기타 치는 게 영화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니니만큼 그 특별함을 잘 담아가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한철 밴드는 '잠보 브와나'와 '흘러간다', '슈퍼스타' 3곡으로 분위기를 흥겹게 만들고 자리를 떠났다.

◇ "난민에 대한 선입견 생기지 않도록 제도적 노력 필요"


왼쪽부터 제3회 '난민영화제' 개막작인 '구원'과 '경계에서' (사진='난민영화제' 홈페이지)
제3회 '난민영화제'의 개막작은 다큐멘터리 '구원'과 '경계에서'였다. 니콜라 이바노브스키 감독(이하 니코 감독)의 '구원'은 시칠리아 중앙에 위치한 작은 마을 수테라를 배경으로 난민과 이주민이 사회의 '자원'이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폴 우 감독의 '경계에서'는 정우성이 지난해 레바논에 방문했을 때 만난 하산 가족이 자신들의 상황과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작품이다. 내레이션도 정우성이 맡았다.

영화 상영 후에는 니코 감독, 폴 우 감독,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인 배우 정우성, 유엔난민기구 신혜인 공보관이 참석한 관객과의 대화가 열렸다.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관객들로부터 질문을 받았는데, 워낙 여러 개의 질문이 올라와 40~50여 분 행사를 진행했음에도 모두 소화하지는 못했다.

'구원'의 니코 감독은 "영국의 브렉시트(유럽연합 탈퇴) 사태를 보면서 유럽에서는 이민자들이나 난민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인 감정이 일고 있다는 걸 알았다"며 "긍정적인 스토리를 찾고자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마을 재건과 출산율 제고를 위해 난민을 받아들이는 것이 좋은 아이디어이긴 하지만 자칫 난민을 대상화, 수단화할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니코 감독은 "우려하시는 내용은 난민 지원 프로그램이 가져올 수 있는 부정적 영향보다 훨씬 더 앞서나간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어, "죽은 사람은 도울 수 없다. 배 타고 지중해를 건너온, 살아남은 사람들을 어떻게 도울 것인가 해서 결정한 것이다. 수테라 마을의 인구는 원래 8500명 선이었으나 지금은 1200명 정도다. 아예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는 이 작은 마을에 뭔가 생명력을 불어넣어보자는 차원에서 시작됐다"고 전했다.

극중에서 시리아 난민인 무니르에게 현지인이 친구가 되어 언어를 가르쳐주고 함께 '노킹 온 헤븐스 도어'라는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노래 선곡을 의도한 것인지 묻는 질문에 니코 감독은 "어떤 노래였는지가 중요하기보다는 두 사람 간의 상호작용, 문화적 교류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라고 생각했다"며 "문화적 간극이 넓어도 둘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또한 니코 감독은 미디어에서 난민의 부정적 측면만 부각하는 보도가 주로 나오고 있다는 점을 꼬집기도 했다. 그는 "난민을 떠올리면 내 일자리를 뺏어가고 내가 가진 것을 뺏는 이미지인데, 이런 이미지를 조성하는 데에는 언론도 상당히 큰 역할을 했다. 영국도 언론이 보수우파 쪽이라 난민들이 영국을 집어삼킬 것이라는 식으로 보도하는 경우가 많다"며 "정부 차원에서 난민에 대한 편견을 없애려는 노력을 하고, 난민에 대한 전형적인 편견을 없앨 수 있게 더 책임감 있는 보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경계에서'의 폴 우 감독은 "레바논 난민 가족을 많이 만났는데 (동행한) 정우성이 어떤 가족의 후속 이야기를 들을까 궁금했다. (하산 가족을 택한 이유는) 정우성과 개인적으로 친한 관계를 구축했다는 것, 태어난 것만으로 어두컴컴한 상황에서 가족들에게 빛을 주는 루아의 존재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경계에서'는 하산 가족에게 포커스를 맞추면서도 일정 정도 거리를 유지한 것이 특징이다. 폴 우 감독은 "저희는 그 가족의 단편만을 찍어오게 된다. 잠깐 가서 어느 한 부분만 찍는 것인데 갑자기 들이닥쳐 카메라를 대면 불편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라며 "영화 촬영, 제작하며 대상이 되는 가족을 하상 존중하려고 했다"고 밝혔다.

폴 우 감독은 "촬영 대상이 되는 가족 입장에서 생각하자면 그들은 배우도 TV스타도 아니라 카메라에 익숙하지 않다. 또 수 년 동안 어려움을 겪었기에 자기 얘기를 꺼내기 싫어할 수도 있다. 그래서 정우성이 하산 가족과 개인적인 친분 관계를 잘 쌓을 수 있게 하는 게 중요했다. 그래야 편하게 얘기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또, "스토리텔러로서 저희가 저희를 너무 드러내게 되면 결국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어디론가 사라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 정우성 "난민들에게서 삶의 의지와 희망 많이 느껴"

왼쪽부터 통역 담당, 니콜라 이바노브스키 감독, 폴 우 감독, 배우 정우성, 신혜인 공보관 (사진=김수정 기자)
2014년부터 유엔난민기구 서포터 활동을 시작해 현재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를 맡고 있는 배우 정우성은 직접 난민들을 만나고 나서 생긴 변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난민이라는 단어가 굉장히 친숙하지 않은 나라이지 않나. 그 사람들은 (우리와) 굉장히 다를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하지만 우리가 겪고 있지 않은 현실적인 난관을 겪고 일시적인 보호를 받을 뿐,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걸 알았다. 난민들에게서 삶에 대한 의지와 희망을 많이 느꼈다"고 말했다.

정우성은 "유엔난민기구가 저에게 같이 해 보자고 먼저 손을 내밀어줘서" 친선대사를 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문제를 좀더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고 관심을 나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친선대사 하면서 제가 세상에 무관심한 사람이었구나 하는 자기반성도 하게 됐다"며 "저라는 사람을 통해 난민들의 모습을 여러분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의지가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경계에서'를 같이 작업한 폴 우 감독은 정우성을 "아기를 굉장히 잘 보는 사람"이라고 칭찬해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폴 우 감독은 또한 "정말 프로페셔널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일할 때도 편했고, 여러 사람들에게 보여준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편한 마음으로 말을 꺼낼 수 있게 하는 능력이 있다"고 치켜세웠다.

난민 보호를 위해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묻는 질문에 니코 감독은 "전 세계적으로 난민 보호를 위해 애쓰는 여러 기관에 기부를 하는 행동부터 시작할 수 있다. 난민 뉴스를 찾아보면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아는 것도 중요하다"고 답했다.

폴 우 감독은 "우리가 똑같은 한 인류라는 인식을 가지는 데서 출발한다고 본다. 제 영화를 보시면 전쟁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알 수 있다. 나의 누나, 엄마, 형, 아빠, 할아버지의 일일 수 있고 그만큼 누구든지 (전쟁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며 "계속해서 관심을 유지하고 다른 친구들과도 끊임없이 얘기하면 여러분들이 가진 인식의 지평을 넓힐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정우성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도와야 되지 않느냐 하는 얘기는 굉장히 당연하고 인간으로 가져야 될 가장 큰 덕목"이라며 "경제적 논리, 수치에 대한 이해보다도 같은 '사람'으로서. 당면하고 있는 어려움을 외면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것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좀 더 성숙한 자세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제3회 '난민영화제'는 24~25일 양일 간 이어진다. 25일에는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야외 부스가 설치되고, 마로니에 다목적홀에서 '대답해줘'가 무료 상영된다. 영화가 끝난 후에는 관객과의 대화도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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