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초마다 한 명씩 늘어나는 난민…그중 절반 이상이 어린아이
- 난민은 남의 얘기? 한국전쟁 겪은 우리, 국내실향민들도 '난민'이 됐을 수 있어
- "철거촌에서 살았던 유년, 가난했지만 나라 잃은 난민과 비교할 수 없어"
- 올해 3번째 열리는 한국난민영화제, 6월 24일 충무로 대한극장에서 개최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30~20:00)
■ 방송일 : 2017년 06월 22일 (목) 오후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정우성 (영화배우, UN난민기구 친선대사)
◇ 정관용> 지난 6월 20일이 세계난민의 날이었습니다. 6월 20일이 세계난민의 날이라는 거 사실 아는 분보다 모르는 분이 훨씬 많으실 것 같아요. 그런데 이분 여러분 좋아하시는 영화배우 정우성 씨가 UN난민기구의 친선대사로 활동하고 있다는 거 이건 더더욱이나 아마 모르시는 분들이 더 많을 것 같습니다. 최근에 이라크도 또 다녀오셨다는데요. 그래서 정우성 씨 오늘 스튜디오에 직접 좀 모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정우성>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정관용>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UN난민기구 친선대사 언제 되셨어요?
◆ 정우성> 친선대사로 임명된 건 2015년이고요. 임명되기 전 1년 전에 2014년에 서포터로 1년 정도 활동을 했죠.
◆ 정우성> UN난민기구에서 다가왔어요.
◇ 정관용> 요청이 왔어요? 왜 하필 정우정 씨를 콕 찍어서 요청을 했을까요.
◆ 정우성> 글쎄요, 모르겠습니다.
◇ 정관용> 안 물어봤어요? 왜 나한테 왔냐고?
◆ 정우성> 저는 그들이 어떻게 저에게 다가왔는지 보다는 그들이 저에게 다가와 준 게 감사했어요. 그리고 저 역시도 난민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고 UN의 활동에 대해서는 알고는 있었지만 굉장히 겉핥기 식으로 알고 있었고 그리고 이제 그들이 제안을 했을 때 어떻게 보면 이 선택이 내 인생에서 굉장히 중요한 어떤 기점이 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흔쾌히 응했고 사실은 응한 다음에 활동을 시작할 때 굉장히 두려웠어요.
◇ 정관용> 왜요?
◆ 정우성> UN난민기구 캠프를 가든지 하다 보면 엄청나게 많은 난민의 숫자들이 계속해서 업데이트되는 것을 보고 그리고 지금 이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엄청난 하나의 단면을 어떻게 진실된 모습으로 내가 우리 사회에 알릴 수 있을까. 그런 어떤 두려움이 상당히 컸었죠. 그러면서 저 스스로도 이제 공부도 많이 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이렇게 업데이트 되는 숫자들이나 이런 것에 대해서 빨리빨리 적응해 나가기가 굉장히 힘든 면도 있어요.
◇ 정관용> UN난민기구가 정우성 씨한테 찾아와준 걸 반갑게 고맙게 인생의 계기로 삼아서 선뜻 하겠다고는 했는데 가까이 가 보니까 엄청난 일이더라. 그런 거죠? 내가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 정우성> 네, 네. 그리고 사실 캠프에 매년 갈 때마다 또 방문하기 전에도 약간의 두려움이 또 있어요. 내가 가서 또 봐야 될 사람들. 그 사람들의 처참함, 절실함을 알고 있기 때문에 다녀와서 또 내가 어떤 진실한 목소리로 여러분들에게 또 모습을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들이 들죠. 그래서 이번에 이라크 갈 때도 그렇고 또 특이한 게 이렇게 캠프에 가면 작년에 갔던 캠프에서 만났던 사람들도 이렇게 그 모습들이 떠오르고.
그리고 이제 그 모습들이 또 각자의 평범한 삶 속에서의 가족이 갖고 있는 역사나 그리고 개개인의 어떤 사정들이 다 다르고. 그러다 보면 또 그들은 우리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었고. 그러니까 이게 난민이라는 단어가 굉장히 이질적이고 멀게만 느껴지지만 사실은 우리와 별반 다를 바 없었던 삶을, 우리와 똑같은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거든요.
◆ 정우성> 아르빌은 이제 쿠르드 자치 지역으로 비교적 안전한 지역인데요. 이제 보통 중동 지역에서는 도시난민 형태로 사람들이 많이 지내고 있거든요. UN난민기구에서 제공한 캠프에서 그 보호를 받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제 그들은 왕래가 있었던 옆 나라였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친구도 있을 수 있고 또 친척들이 있을 수 있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난민의 신분으로 국경을 넘었지만 자기의 자력으로 생활을 먼저 유지해 나가려고 하는 그런 노력들을 캠프 밖에서 해요.
하지만 그런 생활이 길어지다 보면 이제 경제적인 난관에 봉착하게 되고 아이들이 아플 수도 있고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그 최후의 보루로 이제 난민 캠프 안에 보호를 신청을 하게 되는 거죠. 이번에 들어갔을 때에는 난민캠프 안으로 들어오겠다라고 신청을 해서 이제 받아들여진 몇 가족들이 난민 캠프 안에서의 생활규칙 같은 것들을 전해듣는 광경을 봤는데 저는 이제 그 모습들은 처음 봤거든요. 그 눈빛이 어떻게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절박함 속에서 내가 이 안에게 이제 두렵기도 하지만 새로운 희망을 잡고 생활을 이어가야지 그 눈빛으로 이제 질문들을 하고 이 안에서는 생활을 하면 됩니까, 혹시 내가 여력이 되면 상점을 열어도 됩니까? 이런 질문들을 하는데 그게 굉장히 가슴 아프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그 질문을 하는 어떤 한 아버지를 제가 이제 얘기를 하고 싶어서 다가가서. 가족이 어떻게 되느냐라고 물었더니 이제 4명의 아이가 있고 한 명의 아들이 있는데 아들이 9살인데 간질병을 앓고 있대요.
◇ 정관용> 저런.
◆ 정우성> 그래서 이제 밖에서 도시난민 형태로 본인이 고국에서 갖고 온 현금이나 이런 걸로 생활을 이어가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이제 난민 캠프 안에서 들어와서 아들의 이제 의료혜택이나 치료 이런 것들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선택을 했다라고 하는데 그런 어떤 개개인들의 사연들을 들을 때마다 굉장히 아프죠. 그리고 살마다라는 여성을 만났는데 나이대는 40대 초중반이었죠. 그런데 8명의 아이가 있는데. 딸 2명은 독일 쪽. 터키를 통해서 독일 쪽으로 가서 이제 난민 신청을 한 상태이고 이제 아들 6명을 데리고 이라크에 들어와서 캠프 생활을 하고 있는데 쿠루드 자치 지역은 이제 난민들이 캠프를 장기 거주지역으로 만들 수 있게끔 허용을 해 줘서 난민들이 살짝 이렇게 캠프를 집처럼 자기 능력 안에서 이렇게 증축을 할 수가 있어요.
◇ 정관용> 증축까지.
◆ 정우성> 그런데 이제 평수는 제한돼 있죠. 이 엄마가 이제 아이들이 조금 더 나은 지붕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돈을 어떻게 어렵게 모아서 지붕을 새로 했는데 하필 그게 양철지붕이에요. 그러니까 햇빛에 열을 그대로 투과해서 집 안이 한 30분 동안 얘기하는데 진짜 사우나에서 얘기하는 것보다 더 땀이 막 저도 이제 줄줄줄줄 흐르고. 보통 집 안에서 아이들과 같이 있는 시간이 별로 없다라고 하더라고요.
◇ 정관용> 그렇겠죠.
◆ 정우성> 그러니까 이 아이들의 정신적 외상에 대한 어떤 정신적 치료나 이런 것들도 굉장히 중요하고 시급하고 그렇기 때문에 UN난민기구와 협력기구들이 그 캠프 안에서 치료 프로그램을 가동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노래라든지 게임이라든지 그림이라든지. 그런데 이제 그 캠프 안에서 당장 필요로 하는 여러 가지 또 다른 것들이 급선무로 지원이 돼야 되는 것들이 많다 보니까 그런 치료 프로그램은 아무래도 뒤쪽으로 밀리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여러분들의 관심과 지원이 더 많이 필요한.
◇ 정관용> 음식료품, 의약품, 또 필요한 인력. 이런 게 다 부족하죠. 아무래도.
◆ 정우성> 그리고 지금 이제 보호대상자로 엊그제 업데이트된 게 6560만 명이라고해요.
◇ 정관용> 6560만. 우리나라 인구보다 훨씬 많군요.
◆ 정우성> 그리고 그중에 난민으로 규정된 사람들이 2650만 명이고 그리고 3초마다 1명씩 또 실향민, 난민들이 발생을 하고 있고. 그런데 이제 난민 얘기를 하고 이런 엄청난 숫자들을 얘기할 때 이제 한국 사회에 계신 분들은 '그 엄청난 사람들을 어떻게 우리가 도와? 남의 얘기지, 그거 멀지'
그런데 사실은 그게 그런 어떤 전 세계적인 어떤 위급한 사태가 직간접적으로 이제는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그런 어떤 먼 나라 국가의 얘기다라고 방심을 하면 안 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그냥 후원이나 지원이 큰 거에서 시작되는 게 아니라 세상에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그리고 난민이라는 호칭으로 불리고 있구나라는 관심과 인식만 가지셔서 그런 도움의 시작에 아주 천천히 그리고 아주 작은 데부터 이렇게 이루어질 수 있다라고 생각이 듭니다.
◇ 정관용> UN난민기구에 직접 후원금 같은 걸 보내고 이런 게 다 있죠?
◆ 정우성> 그럼요.
◇ 정관용> 우리 국민들이 우리 사회 내에 좀 저소득층이나 또 장애인이나 우리 내부의 어려운 분들을 돕자. 이런 것들도 요즘 조금, 조금씩 늘어나고 있습니다마는 해외의 어려운 사람들을 돕자, 이것만 해도 한 단계가 넘어가는데 게다가 난민 그러면 조금 좀 접근하기 어려워 하는 게 분명히 있어요, 그렇죠?
◆ 정우성> 네, 네. 올해로 이제 6. 25 발발 67주기죠. 민족끼리의 안에서의 전쟁이 있었고 그리고 이제 그 안에서 많은 실향민들이 발생을 했었고 한반도에서 이제 그 전쟁이 더 심화됐으면 국경을 넘어서 일본이나 어디로 갔겠죠. 바다 건너 중국 쪽에 있는 상하이 쪽이나. 그렇게 되면 우리는 난민이 됐을 거예요. 그런데 이제 바다, 국경을 넘지 않기 때문에 국내 실향민이라는 호칭으로 불리고 있고 그리고 이제 심지어 아직까지도 고향에 못 들어가 그런 실향민들이 있고요. 그렇게 생각을 하시면 제일 편하게 접근을 하실 수 있으니까.
◇ 정관용> 바로 우리 문제였다.
◆ 정우성> 그리고 이제 그렇게 국제사회에 도움을 받던 국가에서 지금은 이제 지원을 해 줄 수 있는 국가로 빨리 성장을 했고 그리고 또 한반도라는 입지가 굉장히 언제나 그 열강들 속에 휩싸여 있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우리가 이제 그런 어떤 군사적인 위치에서의 어떤 열강들과 경쟁을 할 수는 없지만 어떤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인도주의적인 어떤 도움을 선두하는 그런 국가로 앞장서 나간다면 우리나라가 어떤 위기에. 물론 그래서는 안 되겠지만. 봉착했을 때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지 않을까,그런 생각도 해 봅니다.
◆ 정우성> 그렇죠.
◇ 정관용> 어떻게 전쟁 좀 없앨 수 없습니까?
◆ 정우성> 사실 그런 원론적인 질문 때문에 저 역시도 굉장히 괴로워요. 이 전쟁이. 이 놈의 전쟁.
◇ 정관용> 그러게 말이에요.
◆ 정우성> 이 종교. 종파, 그리고 민족 간의 갈등. 인간은 꼭 이렇게, 인간은 서로를 말살시키면서 계속해서 살아가는 게 인간의 역사인가, 막 이런 생각들도 하게 되고 그런데.. 어쨌든 그런 역사가 굉장히 인류 역사에서 긴 세월을 차지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외면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그 문제를 계속해서 치유해나가고 그리고 그 치유를 필요로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이들이고 그 아이들은 그런 어떤 남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받았을 때 그 아이들이 성인으로서 성장했을 때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그리고 국제사회에 대한 어떤 좀 더 긍정적인 생각으로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 볼 수 있겠죠.
◇ 정관용> 정우성 씨 어린 시절에 굉장히 어렵게 사셨다고요?
◆ 정우성> 그랬죠.
◇ 정관용> 판자촌 사셨다고?
◆ 정우성> 네, 사당동 철거촌 산동네에서 살았었죠.
◇ 정관용> 그 당시에 판자촌 보다 더 열악한 시설이다.
◆ 정우성> 제 고향이잖아요. 그러니까 가난이라는 것과 그리고 나라를 잃고 지금 떠돌아다닌다라는 것과는 다른 문제죠. 제가 그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인해서 그들에게 동정을 가질 수는 없다라고 생각해요.
◆ 정우성> 네, 올해로 제3회.
◇ 정관용> 벌써 세 번째 입니까? 금년에 언제 시작해요?
◆ 정우성> 6월 24일 오전 10시 반부터 밤 10시 반까지 충무로 대한극장에서 합니다.
◇ 정관용> 이번 한국난민영화제는 정우성 씨가 출연한 영화도 상영된다면서요?
◆ 정우성> 첫 번째 섹션에서 이제 UN난민기구 다큐멘터리가 2편 상영이 될 건데 그중의 그중에 한 편이 제가 이제 작년에 레바논 갔을 때 만났던 가족을 다루는 그 다큐멘터리이고 저는 이제 목소리로 내레이션을 참여했습니다.
◇ 정관용> 제목이?
◆ 정우성> 경계에서. 제가 만났던 가족의 얘기를 다루고 있거든요. 그중에서 레바논. 그 가족을 통해서 레바논에서 생활하고 있는 시리아 난민들의 어떤 그런 모습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그때 그 가족에 딸이 3명이었는데 막내가 이제 루아라고 태어난 지 20일 됐던.
◇ 정관용> 아이고, 갓난아기.
◆ 정우성> 그러면서 그 젊은 부부가 그 아이. 사실 아이에게 줄 분유 하나 먹이려고 해도 이제 불도 떼야 하고 깨끗한 물도 어디서 받아와야 되고 아이에게 분유 한 번 먹이는 거 자체가 커다란 일인 거죠. 그래서 제가 이제 그때 기억에 그 아이를 만나고 숙소에 돌아가서 페이스북라이브를 시도를 했었어요. 그래서는 안 되는데 사실은. 감정이 조금 약간 올라와서 라이브를 망쳤죠.
◇ 정관용> 제대로 말씀도 못하시고.
◆ 정우성> 네, 네, 네. 그런데 이제 사실은 그런 모습, 그런 감정적 태도로 사람들에게 그들을 대변해서는 안 된다라는 생각이 드는데 어쩔 수 없이 잠깐 동안 하다가 끊었죠.
◇ 정관용> 한국난민영화제 이번 주 토요일도 우리가 관심 있게 지켜보고요. 앞으로 UN난민 친선대사로서의 활동은 계속하실 계획이죠?
◆ 정우성> 글쎄요, 제가 어떤 사회의 큰 물의를 일으키지 않는 한 UN난민기구가 저를 저버리지 않는 한 오랫동안 하고 싶은 생각은 있습니다.
◇ 정관용> 오늘 나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정우성> 감사합니다.
◇ 정관용> UN난민기구 친선대사 영화배우 정우성 씨 함께 만났습니다.
[CBS 시사자키 홈페이지 바로 가기]
[CBS 시사자키 페이스북 페이지 바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