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선 6·25 민간인 학살피해자 유해 발굴…정부는 '뒷짐'

민간단체 주도 유해 발굴 '한계'…"정부가 나서라"

지난 2014년 대전 산내 골령골 학살지에서 출토된 민간인 희생자의 유해. (사진=민족문제연구소 제공)
6·25 전쟁 기간 동안 인민군과 미군, 심지어 우리 정부의 군인과 경찰에 의해 학살돼 전국 각지에 묻혀있는 민간인 유해가 100만을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민간단체의 노력으로 희생자들의 유해가 조금씩 발견되고 있기는 하지만, 정부 차원의 유해 발굴 작업은 2010년 이후로 멈춰선 상태다.

◇ 보도연맹 사건으로 대표되는 민간인 학살

6·25 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유족 모임인 한국전쟁유족회는 전쟁 기간 동안 114만 명의 민간인이 학살됐다고 파악하고 있다.

민간인 학살은 크게 인민군에 의한 학살, 유엔군 참전 후 미군의 공중 폭격, 우리나라 군경에 의한 학살로 나눌 수 있다.

유족회에 따르면, 이 중 '보도연맹사건'으로 대표되는 우리 군경에 의한 학살이 가장 폭넓게 진행됐고 희생자 수도 많았다.

국민보도연맹은 1949년 이승만 정부가 좌익 활동 전력이 있는 시민들을 계도하겠다며 만든 단체다. 군인, 검찰, 경찰의 간부들이 실제 활동 전력이 있는 시민들을 의무 가입시키고 감시했다. 하지만 가입 대상이 자의적이어서 정부에 비판적인 인사나 무고한 국민들도 가입됐다.

6·25 전쟁이 일어나자 정부는 보도연맹원 일부가 인민군을 환영하는 태도를 보인 것을 보고, 나머지 지역에서도 북한에 동조할 것을 우려했다. 이에 보도연맹원들을 연행했고, 전황이 불리해지자 이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했다.

참여정부 시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이에 대한 진상조사에 나섰으나 희생자 수를 추산조차 하지 못했다. 다만, 당시 전국의 149개 시·군에서 114곳의 희생 사실이 확인됐다. 학계에서는 적게는 10만 명, 많게는 60만 명까지 희생됐다고 보고 있다.


충북 괴산·증평·청원 국민보도연맹 유족회의 이제관 회장(79)은 당시 둘째 형님을 잃었다. "전쟁이 일어나고 '피난을 시켜주겠다, 식량을 보태준다' 하면서 마을 사람들을 소집했다. 모이니 바로 새끼줄로 엮어서 가둬 놓고 학살시켰다."고 증언했다.

그렇게 정당한 절차 없이 전쟁 속에서 민간인들은 억울하게 희생됐다.

1950년 대전 산내 골령골 학살 당시의 사진 (사진=민족문제연구소 제공)
◇ 정부 무관심, 보다 못한 민간단체가 나서

지난 2005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출범하면서 6·25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에 대한 진상 조사와 유해 발굴이 진행됐다.

진실화해위는 2007년부터 전국적으로 168곳의 민간인 학살지를 찾아내고 유해 발굴에 착수했다. 하지만 진실화해위 활동 기간이 종료된 2010년 12월 31일까지 실제 발굴이 진행된 곳은 13군데로 전체의 10%도 되지 않았다. 발굴한 유해 수도 1,617개에 불과했다.

진실화해위는 활동을 종료하며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의 유해발굴과 안장을 위한 지속적인 활동을 건의했으나, 그 이후 정부에서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행정자치부 관계자는 "2011년부터 권고사항에 대한 이행계획을 수립했으나 예산이 확보되지 않았고, 지역주민, 유족들과의 협의가 이뤄지지 않아 미뤄진 것"이라고 답했다. 그렇게 현재 유해발굴을 위한 정부의 노력은 멈춤 상태다.

결국 지난 2014년 참다못한 유족들과 시민단체가 모여 직접 유해발굴에 나섰다.

2014년 2월에 결성된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공동조사단)'은 한국전쟁유족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족문제연구소,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 등의 모여 결성됐다.

이들은 경남 진주시, 대전시, 충남 홍성군 등의 민간인 학살지에서 매년 1차례씩 총 4번의 유해발굴을 진행했다.

유해발굴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공동조사단. (사진=민족문제연구소 제공)
◇ 유해 발굴, 희생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정부의 지원 없이 순수 자원봉사와 기부금에만 의존하다보니 한계가 분명하다. 공동조사단 발굴단장을 맡고 있는 충북대 고고미술사학과 박선주 명예교수는 "정부 차원 조사와 비교하면 민간은 비용과 인력의 한계 때문에 대규모로 할 수가 없고 유해를 분석하는 전문성도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한 번 발굴 조사를 할 때, 소요되는 비용은 최소 2천만 원이다.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인건비는 아낄 수 있지만, 발굴 기간 동안 이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장비를 구매하는 데에도 힘이 부친다.

따라서 대대적인 발굴은 어렵고, 해당 장소에 유해가 발견됐고 학살이 있었다는 것을 알리는 수준에 그치는 것이 현실이지만, 정부는 묵묵부답이다.

민족문제연구소 김민철 책임연구원은 "2015년에 진행한 대전 산내면 발굴지 같은 경우는 더 진행하면 분명히 유해를 발굴할 수 있었는데, 할 수 없이 철수했다"며 "정당한 절차 없이 공권력에 희생된 사람들에 대해 정부가 최소한의 예의도 안 갖추고 있는 것"이라 비판했다.

공동조사단은 정부가 나서지 않는 것은 단지 의지 문제라고 지적한다. 박 교수는 "진실화해위 발굴 당시 1년에 5억의 예산으로도 세 군데 이상을 발굴했으니, 정부가 이렇게 10년 정도만 예산을 지원해주면 어느 정도 성과가 있을 것"이라며 "다른 국가사업에는 수백억을 쏟아 붓는 정부가 민간인 학살 진상 규명에는 의지가 약하다"고 아쉬워했다.

행정자치부는 지난해 유족과 민간단체,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위원회를 구성하고 2020년까지 대전 동구 낭월동에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전국단위 위령시설'을 짓기로 했다.

세종시 '추모의 집'에 임시로 안치된 민간인 희생자 유해를 옮기고, 그 이후에 다시 유해 발굴 작업에 착수할 방침이다.

이에 대해 유족회는 시민단체의 압박에 못이긴 형식적인 대책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유족회 박용현 부회장은 "유족들이 7~80대가 되다보니 아버지의 숙제를 풀지 못하고 돌아가시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며 "관련법을 빠르게 개정해 제2기 진실화해위원회를 출범시켜 명예회복을 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김 책임연구원도 "민간인 희생자 진상 규명은 단순히 피해를 알리는 것을 넘어 당시 제도의 폭력성 문제를 미래 세대에 알리는 작업"이라며 "희생자들의 원혼을 씻어주고,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서 제2기 진실화해위원회를 출범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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