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치 높인 '기본료 폐지' 무산…법정싸움가는 선택약정

기대치 높이고 혼란만 '초래' 단말기 유통구조 근본적 개선 시급…'완전자급제' 부상

(사진=자료사진)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공시지원금 대신 약정기간동안 매달 요금을 할인해주는 선택약정할인율을 인상을 골자로 한 가계통신비 인하 방안을 22일 발표했다. 문재인 정부의 대표 통신 공약이었던 기본료 폐지에 대해선 "반드시 추진하겠다"고 못박았지만 '사회적 협의기구를 통한 장기 과제'로 넘어갔다.

사실상 '무산'된 셈이다. 선심성 공약으로 국민 기대치만 높이고 업계 갈등과 국민 혼란만 부추겼다는 비난은 피하기 힘들 전망이다.

◇ 기본료 폐지 대신 선택약정할인률 인상 '강행'…업계 "소송 불사"

이르면 9월부터 휴대전화 요금할인이 현행 20%에서 25%로 확대된다.

통신비 인하 방안으로 '선택약정할인율 인상'을 결정한 정부는 "현행 할인율은 고시를 통해 100분의 5범위에서 가감할 수 있으니 법 개정 없이도 20%에서 25%로 올리는 건 문제 없다"는 입장이다.

국정기획위는 이날 통신비 인하방안을 발표하면서 "요금할인율 인상으로 요금할인 가입자가 늘면서 약 1900만명에게 연 1조원 규모의 통신비 절감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개호 경제2분과 위원장은 "구체적으로 4만원대 요금을 기준으로 기존 가입자는 월 2000원, 신규 가입자는 월 1만원이 할인되고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의 경우 실납부액은 월 6만원대에서 5만원 이하로, 음성 무제한 상품은 월 2만 5000원 이하로 내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매출 감소가 불가피한 통신 업계는 이 같은 정부 결정에 법리를 검토하고 있다.

선택약정할인율을 인상하는 것은 현행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취지와 어긋나고, 소비자 차별을 심화시킨다는 이유에서다.

단통법 6조에 따르면 선택약정할인은 "지원금을 받지 않은 가입자에게 지원금에 상응하는 요금할인을 제공하도록 규정하고, 미래부 장관에 기준을 정해 고시해야" 한다.

더욱이 현행법에는 '통신사의 전년도 회계기준 지원금 및 수익성을 고려해 할인율을 산정하도록' 한 명확한 기준이 있다. 정부의 '일률적, 임의적 인상'은 법 위반 등 해석의 논란이 있는 것이다.

"지원금 규모로 산정하는 표준할인율 자체가 10%~20%임을 고려할 때, 미래부가 5%포인트 가감할 수 있다는 것은 '지원금에 상응한다'는 법취지를 벗어난 과도한 재량권 부여"라며 업계에서는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단말기 및 지원금 규모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도 일률적으로 요금을 할인해 오히려 가입자 차별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단말기 지원금을 받는 가입자와 그렇지 않은 가입자간 차별을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를 통신비 인하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것은 단통법에서 정한 근본 취지를 위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부는 "현행 할인율은 고시를 통해 100분의 5범위에서 가감할 수 있으니 법 개정 없이도 20%에서 25%로 올리는 건 문제 없다"는 입장이다.

미래부는 단통법 고시를 '5%p 가감'으로, 통신사들은 '5% 가감'으로 다르게 해석하는 셈이다.

양환정 미래부 통신정책국장은 "이통사의 데이터를 분석해 단말기 지원금 비율을 산정해보니 20%가 나와 요금할인율을 25%로 확대해도 된다고 판단했다"면서 "12%에서 20%로 확대했을 때도 단말기 지원금 비율이 15%로 산정돼 5%p를 확대한 것"이라며 업계 주장에 반박했다.


통신 업계에서는 "정부가 민간사업자의 요금 수준을 직접 결정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기업의 기본권 침해"라고도 꼬집는다.

업계 관계자는 "가격 규제가 존재하는 공공요금조차 정부가 직접 요금이나 요금할인 정도를 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지 않은 현실을 고려할 때, 민간기업에 과도한 규제를 강요하는 것 아니냐"며 꼬집었다.

그러나 기본료 일괄 폐지는 문재인 정부 통신비 인하 공약이었던만큼 가장 논란이 뜨거웠지만 이번 대책에서 제외돼, 사실상 무산됐다는 평가다.

국정기획위는 기본료 폐지에 대해서는 "무산된 게 아니다"라며 "사회적 논의기구를 통해 지속적으로 추진해나갈 것"이라며 단호하게 말했지만 불거질 대로 불거진 통신료 인하 논란이 잠잠해질지는 미지수다.

시민단체 등에서는 새 정부의 통신공약이 한발 물러났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애초 시민사회단체는 "요금할인율을 30%로 올려줄 것"을 요구했다.

녹색소비자연대 윤문용 ICT정책국장은 "국정위의 공약 이해도가 부족해 논의가 오락가락하다 기본료 폐지가 무산됐다"며 "중장기적으로 인하안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통신업계는 업계대로 행정소송도 불사한다는 방침이다.

이통사 한 관계자는 "통신비가 제조사 부가서비스까지 포함돼 있는데 단말기 제조사는 쏙 빼고 요금할인 부담을 통신사에만 떠넘기는 것으로 불공평한 처사"라면서 "서울행정법원에 단통법 위반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도 "논의 기회 없이 통신비 절감 대책이 발표돼 심히 유감"이라면서 "구체적인 사안별로 정부와 협의해 국민들의 부담을 경감시키면서도 통신산업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합리적 방안을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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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말기 유통구조 등 시장 구조 개선해야…'완전자급제' 부상

이런 갈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현재 단말기 유통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다.

통신 요금과 단말기 가격, 통신사 보조금과 제조사 장려금 등이 복잡하게 얽힌 상황에선 정부의 요금 인하 압력만으로는 가계 통신비 부담을 줄이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유통되는 단말기의 90% 이상은 통신사를 통해 공급된다. 소비자가 이동통신사를 거치지 않고 사는 '자급 단말기' 비율은 한자리수에 그친다. 미국과 유럽 등 세계 선진국 주요 시장들에서는 자급 단말기 비율이 50∼60%에 달하는 것과 상당히 대조적이다.

단말기 유통 대부분을 통신사들이 맡으면서, 단말기 제조사들 사이의 가격 경쟁은 통신사에 장려금 지급을 늘리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소비자들이 직접 체감할 수 있는 '가격 인하' 형태가 아닌 셈이다.

결국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말기 완전 자급제'를 시행해야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휴대전화 매장에서 사고, 가입은 이용자가 원하는 통신사에서 하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통신사들은 가입자 확보를 위한 단말기 마케팅비를 줄이고, 통화 품질이나 속도 등 서비스 본질에 충실한 경쟁이 촉진돼 요금 또한 자연스럽게 낮아질 것이란 분석이다.

지난 20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통신비 인하 정책 진단과 제안' 토론회에서 김하늬 정의당 추혜선 의원실 비서관은 "서비스와 기기의 분리는 필요하다"며 "이게 엉키면서 막대한 마케팅 비용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양문석 공공미디어연구소 이사장도 "통신비 인하의 쾌도난마는 단말기 완전자급제"라며 "통신 3사는 마케팅비용 대신 요금인하를 하게 하고, 알뜰폰·제4통신은 단말기 수급의 어려움을 덜 수 있으며, 제조사들도 자기 제품에 대해 보조금을 쓰든 출고가를 내리든 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즉각 도입은 어려울 전망이다. 현실적으로 이동통신사 대리점과 판매점 등 기존 유통망이 존재하며 여기에 수십만명의 생계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통사 한 관계자는 "이통업계에서 정부의 요금 인하 압력에 대한 반발이 커지면서 '차라리 단말기 완전 자급제를 하자'는 주장도 있지만 가져올 부작용이 큰 만큼 당장
실현은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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