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포머'에만 영화관 7할…또 도진 '고질병'

극장가 '스크린 독과점' 위험수위

영화 한 편이 절대 다수의 스크린을 차지해 여타 영화의 상영 기회를 앗아가는, 극장가 고질병으로 꼽혀 온 스크린 독과점 문제가 또 다시 불거지고 있다.

22일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전날 개봉한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는 전국 1739개 스크린에 걸려 8121회 상영되면서 28만 4178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이날 이 영화의 매출액 점유율은 69.8%에 달한다.

앞서 영화 '미이라' 역시 현충일 휴일이던 지난 6일 개봉 첫날 전국 1257개 스크린에서 7039회 상영돼 87만 3082명을 모았다.


영진위에 따르면, 2016년 12월 31일 현재 전국 스크린수는 2575개다. 개봉 첫날 '트랜스포머'가 전체 스크린의 67.5%를, '미이라가' 48.8%를 가져간 셈이다. 전체 스크린 가운데 3대 멀티플렉스인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의 스크린이 2292개(89%)에 달한다는 점에서, 스크린 독과점 문제는 멀티플렉스의 시장 영향력에 기인한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스크린 독과점 문제는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이 집계한 스크린수보다, 상영횟수를 따져보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1개 스크린을 지닌 1개 상영관에서 오롯이 1편의 영화 만을 상영하지 않는 까닭이다. 관객이 많이 드는 시간대는 어김없이 거대 자본이 들어간 블록버스터의 차지다.

서울의 대표 멀티플렉스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CGV 왕십리점의 23일 상영시간표를 보면, '트랜스포머'는 모두 36회 상영된다. 이 영화의 상영관은 골드클래스, 3관, 4관, 7관, 8관, 4DX관, 아이맥스관에 두루 걸쳐 있다. 반면 1관의 경우 영화 '노무현입니다'(상영 3회) '악녀'(3회) '하루'(3회)까지 3편의 영화가 몰려 있다. 2관에서는 '다크 하우스'(5회), '미이라'(1회), '언더더씨'(1회), '원더우면'(1회), '캐리비안의 해적: 죽은 자는 말이 없다'(1회)까지 5편이 상영될 예정이다.

영화평론가 오동진은 22일 CBS노컷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봄, 여름에 걸쳐 있는 스크린 독과점 시즌이 돌아온 것"이라고 꼬집으며 말을 이었다.

"배급사, 특히 외화 배급사의 경우 우리나라 사람들이 극장 관람을 선호하고, 영화 콘텐츠 부가시장이 아직 약한 상태라는 점을 잘 안다. 짧은 기간에 판을 크게 벌려서 승부를 보겠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거대 자본이 들어간 블록버스터인 만큼, 욕을 좀 먹더라도 스크린을 최대한 많이 차지해 관객을 모으는 방식이다. 뒤에 블록버스터가 계속 기다리고 있으니 길게 잡으면 2주에 승부를 보게 된다."

◇ "법으로 해결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

"여기에 최근 봉준호 감독의 '옥자' 상영을 보이콧하겠다는 멀티플렉스의 입장까지 더해져 스크린 독과점 문제가 더욱 부각되고 있다"는 것이 오동진의 진단이다.

"멀티플렉스들은 (극장 개봉은 물론 넷플릭스에서도 동시에 서비스되는) '옥자'가 시장 질서를 헤친다는 명목 아래 이 영화를 걸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지금까지 시장 질서를 헤쳐 온 것은 멀티플렉스였다. 주도권을 놓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냄으로써 멀티플렉스가 자기모순에 빠진 셈이 됐다."

그는 "사실 스크린 독과점 문제는 대기업 멀티플렉스에게도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며 "시장을 죽이면 결과적으로 부메랑이 돼 돌아오게 된다는 것을 그들도 잘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환경오염으로 지구 온난화가 심해지면 인류에게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죽기 전까지 지구는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팽배하지 않나. 대기업도 마찬가지다. 그들, 특히 임원진은 자신들이 일하는 동안에는 시장 독주 체제를 계속 가져갈 것이라고 믿는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지배 체제를 유지할 수 없을 만큼 시장이 와해될 텐데, 독점 지배력이 무슨 소용인가. 거기까지는 염두에 두려 하지 않는 것이다."

오동진은 "이 문제는 현재로서는 법적으로 해결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며 "영화 배급과 상영을 동시에 할 수 없도록 하는 '수직계열화 금지'는 물론, 한 영화가 전체 스크린의 몇 % 이상을 가져가지 못하도록 하는 '스크린 독과점 제한'이라는 이중장치를 둬야 한다"고 역설했다.

"법안 통과 과정이 어렵고, 통과되더라도 이후 시행 착오를 겪을 것으로 우려되는 것은 사실이다. 예를 들어 독과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직계열화를 금지했을 때, 매물로 나온 극장을 또 다른 대자본이 차지하면 '도둑 막겠다고 강도 들이는 꼴'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세는 대기업의 영화산업 수직계열화 금지에 맞춰지고 있다. 그래야만 스크린 독과점 문제 등을 해결할 단초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이상 대기업 배급사나 극장의 자체적인 판단이나 조치에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점을 공유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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