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선 실세' 최순실(61)씨의 딸 정유라(21)씨의 구속 여부를 결정할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검찰과 정씨 측이 약 2시간 30분간 날 선 공방을 벌였다.
정유라씨가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 고리이자 '종착역'이라고 주장하는 검찰과, 전체 사건에서 비중이 크지 않은 '잔챙이'라고 강조한 변호인 측이 팽팽한 법리 싸움을 펼쳤다.
정씨에 대한 영장심사는 20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1시까지 서울중앙지법 321호 법정에서 권순호(47·사법연수원 26기) 영장전담 부장판사의 심리로 열렸다.
321호 법정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해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최경희 전 이화여대 총장 등 국정농단 사태의 주역들이 줄줄이 심문을 받고 구속된 장소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도 이곳에서 두 번째 영장심사를 받았으나 구속을 면했다. 당시 영장을 기각한 판사가 정씨 영장의 심리를 맡은 권순호 부장판사였다.
정씨는 이날 오전 서울중앙지검에 도착해 잠시 대기하다가 오전 9시 58분께 법원으로 이동해 출석했다. 검은색과 흰색이 들어간 트레이닝복을 입고, 지난 첫 영장심사 때처럼 머리는 한 갈래로 묶었다.
심사를 마친 정유라씨는 "(판사에게) 사실 그대로 말씀드렸다"며 "(나는) 도망갈 우려가 없다"고 울먹였다. 삼성 측에서 지원받은 '말(馬) 세탁'과 관련해서는 "아는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정씨는 출석하는 길에는 추가된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인정하느냐는 취재진의 물음에 "아니다. 판사님께 말씀드리겠다"며 말을 아꼈다.
또 몰타 시민권을 얻으려고 시도하는 등 형사소송법상 구속 사유인 도망 우려가 있다는 지적에 "저는 도주 우려가 없다. 제 아들이 지금 들어와 있고, 전혀 도주할 생각도 없다"고 말했다.
정씨는 앞서 이달 2일에는 모친 최순실씨가 영장심사를 받았던 중앙지법 319호 법정에서 첫 영장심사를 거쳐 기각 결정을 받은 바 있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는 정씨에 대한 추가 조사와 관련 인물 보강 수사를 벌여 18일 구속영장을 재청구했다.
첫 영장에 적용한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업무방해 혐의 외에 범죄수익 은닉 규제 및 처벌법 위반 혐의를 추가했다.
검찰은 말(馬)을 포함해 삼성 측에서 제공한 각종 금전적 이익에 정씨가 깊숙이 관여했다는 정황을 제시하며 구속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아울러 최근 검찰이 확보한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추가 수첩과 관련해서도 국정농단 사건 보강 수사를 위해 정씨의 구속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씨가 덴마크 구금 도중 제3국인 몰타 시민권 취득을 시도했다는 사실도 제시하며 '도망의 우려'도 제기했다.
반면 정씨 측은 첫 번째 영장심사 때와 마찬가지로 각종 혐의가 최순실씨의 주도로 이뤄졌을 뿐, 정씨는 범행에 가담하지 않은 '단순 수혜자'일 뿐이라는 논리로 방어 전선을 펼친 것으로 알려졌다.
영장심사를 마친 정씨 측 이경재 변호사는 "정유라는 이 사건 전체 사건의 끝에 있는 정리 안 된 한 부분에 불과하다"며 "대어를 낚으면 잔챙이는 풀어주는 법"이라고 사건에서 정씨의 비중이 작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검찰에서 '정유라가 국정농단 사건의 출발점이자 종착역'이라고 주장한 점을 비판하며 "어디서 이런 뜬금없는 이야기가 나왔느냐. 그럼 그동안 국정농단의 출발점도 못 찾고 수사했냐"고 되묻기도 했다.
이 변호사는 또 "'말 세탁'과 관련한 부분은 기본적으로 말 중개상과 삼성 사이에 가격 지불과 관련한 다툼이 있는 민사 사안"이라며 뇌물과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몰타 시민권 취득을 시도했다는 것도 강제송환 위기에 처한 이들을 노리고 접촉하는 '국적 브로커'가 제안했을 뿐이고, 정씨는 이를 거절한 뒤 송환 불복 항소심을 포기하고 사실상 자진 입국했다는 것이 정씨 측의 주장이다.
정씨는 심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중앙지검 유치시설에서 대기한다. 구속 여부는 밤늦게 또는 21일 새벽에 결정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