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과 한국민을 '지켜주기 위해' 갖다 놓았다는 사드 포대를 지켜주기 위해, 이제 다시 대공포나 감시 병력을 추가로 배치해야 할 판이다. 기지설계나 방어계획을 짜기도 전에 사드포대가 강행 배치되는 바람에, 경계 대책은 없다.
더욱이 사드 발사대 2기를 놓을 부지에 대한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도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여서, 사드 포대로 고압선을 끌어올 수도 없다.
급한 김에 석유를 넣고 발전기를 돌리지만 전압이 불규칙해 사드 체계 같은 정밀 장비를 오히려 망가뜨릴 수 있다는 걱정이 나온다. 그래서 사드는 제대로 가동되지 못한다. 하루에 고작 몇 시간 가동되는 수준일 뿐이다.
사드가 쉬는 시간이 많다보니, 이미 가동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사드는 최근 북한이 기습발사한 미사일 일부를 잡아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이 먼저 감지해 우리 국방부로 정보가 넘어왔다고 한다.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우드로윌슨센터에서 열린 세미나에 참석차 방문한 국회 국방위 소속 정의당 김종대 의원에게 전해들은 ‘사드의 현실’이다.
◇ 사드의 처참한 현실.. 왜 미국은 묻지 않는가
너무 급하게 들여온 탓이다. 박근혜 전 정부에서 한미 양국이 당초 합의한 대로 사드를 올 연말까지 배치하기로 했다면, 기지 조성계획이나 방어계획, 환경영향평가 등이 찬찬히 이뤄졌을 일이다.
또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미군의 한반도 무기배치 권리를 보장해주고 있다. 그런데 왜 이렇게 급하게 서두르는 바람에 10억 달러나 되는 무기 시스템을, 한국 국민과 주한미군을 잘 지켜줘야 할 무기체계를 거의 무용지물로 만들고 있는가.
그간 특파원으로서 지켜본, 그렇게도 합리와 절차를 중시하는 미국이라면, 이 문제는 미국 의회가 먼저 미 국방부 장관을 불러 따져 물었어야 할 질문이었다. 그러나 미 의회에서는 이런 질문은 나오지 않는다.
이는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 사드 체계가 군사적으로 잘 작동하는 것은 미국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점을 반증한다. 사실 사드 체계는 정치적인 사안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한국이 확실한 미국 편이냐 아니냐를 확인하는 하나의 검증 장치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2년 전,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 문제와 미국의 사드 배치 문제가 겹치면서 한국을 가운데 놓고 중국과 미국이 줄다리기를 벌인 일이나,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중국이 벌인 치졸한 보복 행위는, 사드가 어떤 의미로 해석돼야 하는지 잘 보여준다.
특히 “사드가 깨지면 동맹이 깨진다고 하는데, 무기체계 중 하나에 불과한 사드 때문에 동맹이 깨진다면 이게 동맹인가. 그 동맹을 어떻게 믿느냐”고 한 발언은 뜨거운 논란을 낳고 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문 특보의 발언은 반은 틀리고 반은 맞다.
일단 그 정치적 의미를 생각하면 사드는 ‘하나의 단순한 무기체계에 불과하다’고 할 수 없다. 그것은 오히려 동맹의 '징표'에 가깝다. 미국은 사드에 대해 설명할 때마다 ‘동맹의 결정’이라고 정의 내리고 있다.
이미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사드 배치 결정을 사실상 재확인한 상태에서, 문 특보는 한국에서의 절차적인 문제 때문에 결정이 지연될 뿐이라고 설명하는 정도면 충분했다고 본다.
"이전 정부에서 발생한 절차 하자 때문에 사드가 제대로 작동도 못하고 있지 않은가. 미국에서 같은 일이 일어났어도 당연히 그렇게 했을 절차를 법에 따라 진행하는 것일 뿐이다."
이정도의 설명이면 충분했다. 뭔가 찜찜하지만 ‘절차의 나라’ 미국이라면 그래도 납득할만한 설명이다.
그러나 문 특보는 거기서 더 나가버렸다. 외려 ‘미국이 사드 갖고 자꾸 왈가왈부하는데 우리가 진짜 동맹이 맞느냐’고 역으로 질러버린 셈이다. 한국특파원들 앞에서 한 말이고 일면 속 시원한 발언이기는 하지만, 동맹의 징표를 부정당하는 입장에서는 불쾌할만한 발언이다.
아마도 문정인 특보는, 뒤에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질 문재인 대통령의 부담을 덜어주고, 좋은 모습만 보여주도록, 나서서 악역을 자처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의도적인 악역’이었다면 이른바 ‘힘 조절’이 필요했을텐데, 뒷 부분의 발언은 대통령의 역할로 남겨뒀어도 되지 않았을까 아쉬움도 있다.
◇ 60년 넘게 그대로인 한미상호방위조약…한미동맹이란 무엇인가
지난 1953년 전쟁으로 몰락한 세계 최빈국의 입장에서 세계 최강대국 미국과 조인한 한미상호방위조약의 6개 조항은, 한국이 세계 11대 경제대국이자 11번째 군사력을 보유한 지금까지, 무려 60년이 넘도록 단 한 번도 변하지 않았다.
진보 진영에서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미국이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너무 불평등하게 돼 있다고 주장하고 있고, 보수 진영에서는 조약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수준으로 격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내용적으로는 엇갈리지만 기본적으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개정해야 한다는 점은 진보나 보수 모두 인정하고 있다. 어떤 내용이 되든 한미동맹의 재정의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한 직후, 유럽 또한 기존에 미국과 맺고 있던 동맹을 재검토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다른 누군가를 온전히 의지할 수 있는 시대는 더는 아닌 것 같다. 우리의 운명은 우리 자신의 손으로 챙겨야 한다."
메르켈 독일 총리가 얼마 전 내뱉은 이 발언을 문재인 대통령도 하게 될까. 다음 주에 열릴 한미정상회담은 사드를 둘러싼 논란보다 더 깊고 본질적인 물음을 우리에게 던질 수도 있다.
우리는 지금도 미국이 지켜주어야만 생존할 수 있는 국가인가, 아니면 우리 스스로도 생존을 지킬 수 있는 국가인가, 한미동맹은 국익 증진의 수단일 뿐인가, 아니면 민족의 생존을 위한 필수불가결의 가치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