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잃어버린 것도 가슴 아픈데 '병역기피자'라니
지난 1997년 실종된 김하늘(실종 당시 3세, 현재 24세) 군의 어머니 정혜경(54) 씨는 지난 2013년 병무청으로부터 한 통의 우편물을 받았다. 김 군의 입영통지서였다.
20여년을 아들을 찾아다닌 정 씨는 병무청에 김 군이 실종 상태라는 사실을 알렸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아들의 주민등록을 말소시키라는 청천벽력같은 얘기였다.
정 씨는 "잃어버려서 찾지 못한 우리 아이의 주민등록을 말소시키라는 건 제 가슴에 두 번 못을 박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병무청은 "말소하지 않으면 '병역기피자'가 된다"는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결국 울면서 동사무소에 가 자신의 손으로 직접 아들의 주민등록을 말소시킨 정 씨는 오랫동안 큰 죄책감에 시달렸다.
몇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가슴이 아프다는 정 씨는 "등본을 뗄 때마다 아들이 없는 걸 보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며 "아들을 찾고 죽을 수 있을까 하는 압박감에 두렵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지난 1997년 실종된 박진영(실종 당시 0세, 현재 20세) 군의 아버지 박정문(53) 씨 역시 같은 이유로 병무청에 언성을 높여야 했다.
지난해 12월 병무청에서 전화가 와 "박 군은 왜 징병검사를 받지 않느냐"고 한 것. 박 씨는 "아들은 실종된 상태고 경찰청에 신고도 돼있다"고 말했다.
병무청은 정 씨에게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박 씨에게도 "동사무소에 가서 주민등록을 말소를 시켜야 한다"며 "병역기피자가 되면 법적 조치가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 씨는 끝까지 이를 거부했다. 그러나 그 이후 뒤늦게 알게된 사실은 이미 지난 2008년 거주불명에 대한 소명이 이뤄지지 않아 아들의 주민등록이 말소돼 있었다는 것이다.
박 씨는 "병무청은 심지어 아들의 주민등록이 직권 말소돼있는 것을 파악하지도 못 하고 전화를 한 것"이라고 눈물을 글썽였다.
박 씨는 왜 병역에만 이런 잣대가 적용되는 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실종자로 신고가 돼있었기 때문에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됐을 때도 입학통지서가 오지 않았다"며 "교육청에선 인정되는 사실이 왜 병무청에는 통하지 않는 거냐"고 토로했다.
◇ '별도관리대상' 제도 있지만, 병무청 "적용 어려워"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실종 아동은 '거주 불명' 등록 상태로 주민등록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실종 아동이 남성인 경우 병역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시기가 닥칠 때다.
이들은 병무청 훈령 '병무사범 예방 및 조사에 관한 규정'에 따라 지방병무청장에 의해 병역의무 기피자로 고발을 당할 수 있다
단, 예외가 있다. '별도관리대상'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별도관리대상에 지정 요건에 실종 아동의 자리는 없다.
주민등록을 유지한 실종 아동들이 병무청으로부터 입영 대상으로 간주되고 이들의 부모가 끊임없이 아들의 검사와 입영, 나아가 주민등록 말소를 요구 받는 이유다.
병무청 관계자는 "주민등록을 유지한 실종 아동은 '거주 불명자'에 속한다"며 "거주 불명자엔 '자발적' 가출자 등도 포함되는데, 이들 모두를 일괄적으로 별도관리대상으로 지정하는 것은 악용될 소지가 있어 현재로선 어렵다"고 밝혔다.
실종 아동의 부모들은 '주민등록 말소'만큼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고 말한다.
사단법인 '실종아동 찾기 협회'를 이끌며 본인 역시 실종된 딸 서희영(실종 당시 10세, 현재 33세) 양을 찾고 있는 서기원 대표는 "관련 부처에선 자녀를 찾고 다시 주민등록을 하면 된다 말하지만 부모 입장에서 주민등록 말소는 사망선고와 같다"며 "어떤 부모님들은 의료보험비용을 내면서까지 주민등록을 유지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서 대표는 "하지만 주민등록을 말소하지 않으면 병무청에선 아이를 계속 징집 대상으로 간주해 입영을 요구하기 때문에 결국 말소로 일을 매듭짓는 경우가 많다"며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계속해나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