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권리금 금지' 예고에 이어 '운영관리권 최고가 입찰'에 나서면서 일부 상인들은 생계에 빨간불이 켜졌다.
◇ 오후 3시인데 한 명도 없었다
길을 따라 걸어 보니 좌우로 불 꺼진 빈 점포가 잇달아 늘어섰으며 그나마 남아 있는 귀금속·한복·양복점 등 점포 89곳은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상가 출입구에 위치한 양복 원단 판매점주 박명호(64) 씨는 "오늘도 아직 개시도 못 했다"며 "요즘 한 달 벌어도 임대료도 못 채운다"고 털어놨다.
박 씨는 지난 1978년 상가가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이곳에서 장사를 해왔으나 "올해가 최악이다. 작년보다 더 심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청계천 복원으로 상권이 움츠러들 때만 해도 그나마 버티던 이곳이었지만 지상에 횡단보도가 생기면서 이제는 유동인구가 거의 없는 상태다.
이어 "배운 게 이것밖에 없어 다른 일을 하기도 마땅치 않다. 청춘을 여기 다 바쳤는데 이제 와 억울해서라도 못 나가겠다"고 말했다.
23년째 귀금속점을 운영해온 전명훈(59) 씨 역시 "요즘엔 가게에 비치한 반지를 되팔아서 임대료를 내는 실정"이라면서 "어디 가서 취업을 하기도 어려워 그만두면 당장 생계에 문제가 생긴다"고 덧붙였다.
◇ 최고가 낙찰제…"지원은 못 해줄망정"
종로4가 지하상가 상인들의 형편은 더 나빠질 전망이다. 서울시설관리공단이 지난 13일 이곳 점포 69곳 중 23곳의 운영관리권을 '최고가 낙찰제'로 입찰에 부쳤기 때문이다.
공단에 따르면 입찰을 따낸 업체에서는 임대료 낙찰가를 공단에 내게 된다. 그리고 이 낙찰가와 같은 금액을 상인들에게 받고, 별도로 이 돈의 10%를 관리운영비 명목으로 더 거둔다. 월 최대 10%의 수익률을 내게 되는 셈이다.
상인회장을 맡고 있는 전 씨는 "매출이 최악으로 몰려 다 망해가는데 임대료까지 올린다는 건 수십 년 동안 자리를 지켜온 우리더러 다 나가라는 소리"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면서 "어디는 권리금 없앤다고 난리 치는 곳도 있지만 여기 같은 경우는 이미 권리금 자체가 없어졌을 정도로 답답한 상황"이라며 "서울시가 지원은 못 해줄망정 최소한 현상태는 유지해줘야 하지 않느냐"고 하소연했다.
그러나 공단 측은 종로4가 지하상가를 시작으로 서울시내 29개 지하상가에도 이런 식으로 최고가 낙찰제를 적용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공단 관계자는 "같은 곳에서 오래 계셨다고 하더라도 시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공평한 것"이라며 "입찰받아 들어오는 업체도 봉사단체가 아닌 이상 소정의 관리운영비는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