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위원장은 1970년 폴란드 유태인 묘소 앞에 3분간 침묵으로 나치의 만행을 사죄한 서독의 빌리 브란트를 언급하며 "50년 세월이 흐르면서 화해의 사진은 세계가 가야할 방향을 우리 모두에게 제시하고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백남기 농민의 명복을 빈다"며 "이철성 청장도 기꺼이 고인의 명복을 빌고 공식적 사죄를 할 것이라 본다"고 덧붙였다. 인권 경찰로 거듭나기 위한 경찰의 경찰개혁위 발족이 과거에 대한 반성 위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인데, 과거 경찰의 잘못을 나치의 만행으로 등치시켜 비판의 수위를 에둘러 높인 것이다.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입술을 굳게 다문채 박 위원장의 발언을 듣던 이 청장은, 곧바로 시작한 모두 발언에서 경찰이 백남기 농민의 죽음에 책임이 있음을 인정하며 사과했다. 어느 때보다 긴장한 표정이었다.
그는 "6월 9일 민주항쟁 30주년을 맞아 박종철 기념관을 다녀와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되돌아보며 인권개혁을 강도 높게 추진하겠다고 마음 속으로 다짐했다"며 "민주화 과정에서 경찰에 의해 유명을 달리한" 박종철, 이한열 열사에 이어 백남기 농민을 언급했다. 사과문 자체는 길지 않았지만, 백남기 농민의 죽음에 대한 책임이 경찰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한 셈이다.
이어 이 청장은 "경찰의 공권력은 어떤 경우에도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고 절제해 사용해야 된다"면서 "과도한 공권력으로 국민이 피해보는 일이 되풀이 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일반 집회 현장에 살수차를 배치 하지 않고 사용 요건도 최대한 엄격히 제한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를 위해 대통령령을 통해 관련 규정을 법제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앞서 서울대병원은 백남기 농민의 사인을 '병사'에서 '외인사'로 수정했다. 백남기 농민은 2015년 11월 서울 광화문 민중총궐기 당시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의식을 잃은 채 병원에 이송됐다가 317일 만에 숨졌다.
경찰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사과의 시기와 형식에 대해 계속 논의를 이어왔었다"고 말했다. 그동안 경찰은 백씨의 사망에 대해 사과 하지 않았다. 강신명 전 경찰청장은 국회 청문회에서 사과를 거부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경찰의 수사권 독립이 경찰 개혁을 전제로 논의되고 있는 만큼, 이 청장의 사과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던 차였다.
경찰이 이날 발족한 경찰개혁위원회는 그간 경찰에 비판적이었던 시민단체와 언론이 상당 부분 포함돼 있다. "국민께 진정성을 보여드리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일까(경찰 관계자)"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이 청장은 "경찰은 국민 곁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고, 국민들과 함께 할 때 비로소 바로 설 수 있다"며 "경찰의 존재 이유와 역할, 국민이 진정 원하는 경찰은 무엇인가를 항상 고민하고 국민이 공감하는 경찰활동을 펼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