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밤 방송된 '외부자들'에서 미학자 진중권은 "두 나라 사이 외교 합의에서 첨예한 문제가 걸려 있을 때는 양쪽이 편하게 해석할 수 있는 문구를 넣는 경우가 많다"고 운을 뗐다.
"그래서 우리는 '적절한 (외교적) 언어를 발견한다'는 표현을 쓴다. 이런 예민한 (한일 '위안부') 문제는 그렇게 해결할 성격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합의는 했는데, 한국과 일본의 얘기가 다르다. '일본이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정해 배상의 의미로 10억 엔을 출연하기로 했다'는 것이 우리 측 해석이다. 그런데 일본은 '우리가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정한 적 없다'고 합의 이후부터 다른 소리를 하니, 우리 국민들은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냐'는 것이다."
그는 "국민들은 누구 말이 옳은지를 모르는 것이다. 정부 말이 맞는지, 일본이 거짓말을 하는지 모르겠으니 합의문 내용을 확인해 보자는 것"이라며 말을 이었다.
"이해 당사자인,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외교부 입장에서는 국민과 간극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이것을 모두 공개하게 되면 사실 외교를 못하게 되는 측면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외교부에서 혹시 뭔가 실책을 감추기 위해 이러는 것 아닌가라는 의심도 드는 것이다."
작가 전여옥은 "법률 용어나 일반적인 용어로 '배상'은 누가 불법적인 일을 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늘 '보상'이라고 한다. 보상은 (적법한 행위라는 전제가 깔린 말로) 나쁜 일을 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니 (10억 엔 역시) 위로금, '불쌍하니까 안 됐다'는 생각에서 돈 쥐어준다는 의미다. 이런 용어 문제 등이 그 당시 외교 문서에서 어떤 식으로 기술 됐느냐를 보자는 것이다. 외교부가 말하는 국익(에 따라 공개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일본군 성노예였던 할머니들의 명예와 우리 국민들의 자존심·자존감을 위해 반드시 공개해야 한다고 본다."
전 국회의원 정봉주 역시 "이 문제는 박근혜 정부 시절에 했던 여러 정책들, 외교가의 관계들 속에서 무척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외교부는 법조문으로 꼼수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일단 '일본과 상호 비공개하기로 했다', 그리고 두 번째 '국가의 중대한 이익에 침해가 될 수 있다'는 주장으로 계속 비공개하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보면, 모든 (국가) 문서는 일정하게 비공개할 경우 영구, 준영구, 30년 식으로 시한 등을 매기게 돼 있다. 그런데 이 기록물(한일 위안부 합의문)의 보존 시한은 5년으로 돼 있다. 외교부에서는 이 문제 자체를 5년 뒤에 폐기하면서 덮어 버리자는 것이다. 양쪽의 외교부 장관이 실무적으로 합의문을 발표했는지, 아니면 진짜 국가간 조약이 돼 있는지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덮이는 것이다. 그러면 뭐가 진행됐는지를 이제 볼 수 없는 것이다."
전 국회의원 안형환도 "('위안부' 합의문은) 국가나 지역사회의 역사적 경험을 증명할 수 있는 기록물이기 때문에 (보존기한) 3년, 5년은 아니라고 본다"며 쓴소리를 했다.
"앞으로의 한일 교섭이라든지 후대 역사가들을 위해서라도 이것은 영구 보존하는 것이 맞다. 여기서 2심 재판부의 판단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본다. 2심 재판부가 그것(합의문서)을 보고 판단하겠다는 것이 맞다. 모르는 상황에서는 판단이 어렵다. 이 협상을 통해 외교부 관료들에게 돈이 생기나, 이익이 생기나. 물론 위에서 지시를 내렸기 때문에 관료는 국가 최고 통치권자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다. 외교부에서 합의문을 비공개하려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본다. 그 이유에 대해 판사가 '타당하다' '아니'라는 것을 판단하고 2심 결과가 나오면 그에 따르면 되지 않을까 싶다."
◇ "국민들이 자국 외교부를 믿지 못하는 슬픈 현실"
우리 외교부가 한일 '위안부' 합의 문서를 감추려 드는 이유에 대해, 전여옥은 "자신들의 역할에 대해 대단한 특권의식과 밀실의식을 갖고 있는 것이 전 세계의 외교가"라며 설명을 이어갔다.
"제가 그 (한일 '위안부' 합의) 발표를 보고 하도 기가 막혀서 아는 분들에게 물어봤더니 '이렇게 해결할 일이 아니'라며 그 안에서도 내부 갈등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외교부) 스스로도 정당성에 대한 회의감에 고통받기도 하면서 이것을 추진하고, 그 와중에 자신들의 괴로움도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외교부도 사역화 된 것이다."
진중권도 "슬픈 일이다. 이런 일 (제대로) 하라고 외교부를 만들고 그들로 하여금 30년 동안 문서를 공개하지 않을 권리까지 준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결국 우리가 (외교부를) 못 믿는다는 말이다. 국민들이 자기 나라 외교부를 못 믿어서 '너희들 혹시 거짓말하는 것 아냐? 문서 공개해'라는 상황이다. 사실 매번 이런 일이 터질 때마다 외교 문서를 공개하는 것이 좋은 관습은 아니다. 하지만 그 전제 조건은, 우리가 (국가 기밀) 비공개에도 참을 수 있었던 것은 신뢰에 있다. 최소한 우리 정부라면 우리를 배반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신뢰다. 그 신뢰감이 없어졌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정봉주는 "소송지휘권·명령권을 갖고 있는 곳이 법원이다. 법원에서 무슨 명령을 하면 따라줘야 한다"며 "법원에서 '너희가 그렇게 비공개할 문서 협의를 했니' 그걸 알기 위해 국장급 문서를 공개하라고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1~12차 문서와 비공개 문서 2개를 법원에는 공개해야 할 것 아닌가. (법원이) 제출하랬더니 한일 외교장관 회담 가운데 '군의 관여' '강제 연행' 등의 단어가 포함된 부분만 발췌해 법원에 제출했다. (법원에서) '그러지 말고 다 내놔라' 했더니 14개 중에 6, 7차 비공개 두 개만 전문을 냈다. 법원에서 그렇게 명령을 해도 안 내는 것이다."
외교부가 합의문서 공개를 꺼리는 데 대해 그는 "2015년 6월부터는 일본에 일방적으로 끌려간 듯한 흔적이 있을 것"이라며 말을 이었다.
"2015년 6월은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인데 이때부터 '(한일 위안부 문제를) 빨리 해결하라'는 미국의 압박이 세진다. 미국의 압박이 세져도 외교를 제대로 하면 지렛대로 쓸 수 있는 것이다. 외교라는 것이 밀당을 하는 것이다. (제출을 거부한) 8~12차 합의문에는 (한국 외교부가 일본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닌 흔적이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정봉주는 "우리 외교부에서 세 가지만 지켜줬으면 한다"며 "일단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두 번째는 국내 문제의 정치적 지지기반과 연관짓지 않았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빨리 해결해야 한다는 조바심을 갖지 않았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안형환도 "공감한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이용해서는 안 된다"며 "개인이나 정치적 이익에 따라 이용돼선 안 될 문제"라고 역설했다.
진중권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시간이 해결할 문제지만, 사실 시간이 흘러간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일본 내 인식이 바뀌어야만 궁극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며 "우리가 기다리기 힘든 것은 할머니들이 돌아가고 계시다는 것이다. 그것이 안타까운 일"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