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눈으로 바라본 '해고자' 아빠… 그는 '영웅'이었다

[현장] 다큐 '안녕 히어로' 관객과의 대화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 소속 한영희 감독의 다큐멘터리 '안녕 히어로' (사진=연분홍치마 제공)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린 '제125회 독립영화 쇼케이스' 상영작은 '안녕 히어로'였다.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의 2016년 작품으로 올해 제17회 인디다큐페스티벌, 2017 제22회 인디포럼, 2017 제22회 서울인권영화제에서 상영된 바 있다.

'안녕 히어로'는 2009년부터 시작된 쌍용자동차의 대규모 정리해고 사태를 다루는 다큐멘터리지만, 같은 주제를 다룬 다른 작품들과는 사뭇 다르다. 해고자 '가정'에 들어가, 해고자 아빠를 둔 소년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을 담기 때문이다.

열네 살 현우는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내는 생활기록부에 아빠 직업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이다. 아빠가 내놓은 답 중 가장 괜찮아 보이는 말은 '노동운동가'. 그러자 아빠는 사실 노동운동가는 아니라며 멋쩍게 웃는다.

현우의 아빠 김정운 씨는 경영난을 이유로 한 정리해고 사태에 반발하며 파업에 힘을 실었던 쌍차 노동자다. 당초 해고 명단에 그는 없었지만, 파업을 했다는 이유로 결국 징계해고되고 만다. 2000일이 넘는 긴 싸움에서 복직할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은 대법원 판결. 그러나 2014년 11월 대법원은 사측이 주장한 경영위기를 인정해 해고가 정당했다고 선고한다.

어릴 적부터 엄마 손을 잡고 아빠와 동료들을 응원하기 위한 촛불집회에 갔던 현우는, 하루하루 여러 가지 장면들을 보고 듣는다. '노동자로 선수교체'를 외치며 국회 입성을 시도했던 동료를 위해 지지 연설을 하는 아빠의 모습, 대법원 판결에 진 후 울부짖는 사람들, 굴뚝에 올라간 쌍차 노동자 둘, 마라톤 협상 끝에 이뤄낸 복직, 그리고 복직자 명단에 들어있는 아빠의 이름.


중학교 입학을 위해 머리를 검게 염색했던 열네 살 현우는 영화 말이 열여섯 살로 자라 있다. 아빠가 해 온, 하고 있는 일이 옳다고 생각하는 현우에게 아빠는 '영웅'이나 다름없다.

◇ 아빠가 택한 길을 '응원'하기 위해 카메라 앞에 선 소년

쌍차 해고노동자 김정운 씨 (사진=연분홍치마 제공)
한독협 이도훈 비평가의 사회로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에서 한영희 감독은 '안녕 히어로'의 탄생기를 소개했다. 그는 당초 '10대 청소년도 이해할 수 있는 쌍차 정리해고 사태 영화'를 만들고자 했지만, 김정운 씨 가족을 만나고 나서 영화의 방향이 달라지게 됐다고 고백했다.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는 2012년 11월 20일, 쌍차 정문 앞 송전탑에 올라간 날이었다. 고공농성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 막연하게 (평택에) 카메라 들고 내려갔을 때 이분들의 얘기를 (영화로) 해 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가장 힘든 게 뭐에요'라고 질문했을 때 '가족들이 힘들다'는 얘기가 많았다. 특히 김정운 씨는 아이가 친구들로부터 '너네 아빠 TV에 나왔더라'라는 말을 들었을 때 설명해야 될 게 많은데 제대로 설명할 수 없어 안타깝다고 했고 그게 크게 와닿았다. 원래 10대 청소년들이 이해할 수 있는 쌍차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는데 제 능력 밖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현우와, 김정운 씨 가족과 만나서 얘기하는 도중에 컨셉이 좀 바뀌게 된 거다. 현우와 같은 친구의 이야기를 어른들이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영화로"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투쟁을 담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지만, 해고자의 '가정' 안에 들어가는 것은 그보다 몇 배는 고려해야 할 게 많은 어려운 길이었다. 우선 가족 구성원 전원의 동의가 필요했다. 그렇지 않으면 영화 자체가 성립할 수 없었다.

한 감독은 김정운 씨 가족을 주인공으로 한 이유에 대해 "(투쟁을) 응원하는 조건 안에서 카메라가 집에 들어가는 것을 돕고 지지할 수 있는 분들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이 좋은 부모 자식 관계를 원한 것도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쌍차 해고자 분들은 가족이 헤어져서 사는 경우가 많다. 김정운 씨는 몇 안 되는 부자관계가 좋은 분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아들자랑을 많이 하는 팔불출이었다"며 "해고자의 집을 촬영하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촬영 이후에는) 지지해주셨던 것 같다. 현우가 동의한 이유는 아빠를 응원하고 싶었던 마음 하나였다고 본다"고 전했다.

◇ "왜 아빠는 지면서도 계속 싸우는 거야?"

원래 자기가 해고당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동료들이 겪은 '정리해고'가 부당하다는 것을 알기에 함께 힘을 모아주었던 아빠. 가끔 답답할 때도 있지만 현우는 아빠를 믿고 묵묵히 지지한다.

영화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현우의 인터뷰에서 관객들은 현우가 아빠를, 쌍차 사태를, 세간의 시선을,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가늠할 수 있다. 현우는 아는 만큼, 느끼는 대로 솔직히 말할 뿐이지만 어른들마저 생각에 잠기게 할 만큼 가볍지 않은 견해를 풀어낸다. 질문도 던진다. "왜 아빠는 지면서도 계속 싸우는 거야?"

한 감독은 "해고가 어떻게 가족에게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가,보다는 현우의 시선에서 세상이 어떻게 보이는가에 더 포커스를 맞췄던 것 같다"며 "현우가 봤던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망설임, 현우가 사는 세계를 서사 구조로 가지고 가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몫이라고 봤다.

현우가 2014년 11월 이루어진 대법원의 쌍용자동차 대규모 정리해고 사태 판결 관련 뉴스를 보고 있다. (사진=연분홍치마 제공)
한 감독은 "(현우는) 해고 사안에 관해서는 묻지 않는다. 굴뚝 농성을 왜 하는 거냐고 묻지 않고, '이 투쟁은 언제까지 하는 거야?'라고 묻는다"며 "그걸 묻는 마음은 하나겠죠. 이 싸움이 빨리 끝나서 아빠가 다른 아빠들처럼 회사 다녔으면 좋겠는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거지? 아빠는 언제까지 기다리려고 하는 거지? 하는"이라고 말했다.

오랜 시간 아빠를 지켜보면서 '나는 아빠처럼 할 수 있을까'라고 자문하는 모습에서도 현우의 성격이 잘 드러난다. 한 감독은 "아빠가 하는 선택이 100% 옳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 있나' 하고 계속 질문을 던진다. 그 선택이 옳은 대우를 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현우에겐) 참 이해 안 되는 세상이지 않겠나"라고 부연했다.

◇ 오프닝, 엔딩 장면과 '제목'에 담긴 의미

'안녕 히어로'는 검게 머리를 물들이는 현우와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고 온 김정운 씨의 모습을 비추는 장면으로 시작해,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는 현우와 배낭을 들쳐메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김정운 씨의 뒷모습으로 끝난다.

한 감독은 "(오프닝은 이 영화가) 가족의 이야기라는 데서 출발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썼다. 세상에 대한 대응책이 다른 두 사람이라는 설정도 있었다. 현우 아빠는 '저항을 해야지!' 이런 사람인데 '학교에서 하라는 대로 해야지'라고 염색하는 현우와의 대비가 재밌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엔딩에 대해서는 "의도한 것"이라며 "현우는 아직 열일곱 살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되게 많은 친구인데, 이 미래라는 건 현우도 살지만 우리도 살고 있는 거고 현실의 길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고 봤다. 변화의 길 위에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안녕 히어로'의 영제는 '굿바이 마이 히어로'(Goodbye My Hero)다. 왜 '헬로'(Hello)가 아닌 '굿바이'였을까.

"현우는 아빠를 부끄러워하는 게 아니라, 저렇게 짓밟히는 노동현실에서 '싸운다'는 선택을 하는 게 얼마나 대단한지 그 무게감을 아는 친구다. 그만 짓밟혔으면 하는 생각이 드니까 '굿바이'하고 싶은 거다. 세상의 영웅이, 그들의 싸움이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면 당연히 '굿바이'하지 않아도 될 텐데, 피해를 감수하면서 싸움에 나서는 이 '영웅'들이 아직은 인정받지 못하는 초라한 영웅이다 보니 '굿바이'하고 싶은 거다. 그런 현우의 시선과 생각을 영화 제목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린 '안녕 히어로' 관객과의 대화에 참석한 이도훈 비평가와 한영희 감독 (사진=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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