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에게 관대하고 여성에게 가혹한 연예계, 왜 안 바뀔까

[미디어씨, 여성혐오 없이는 뭘 못해요? ④] 연예산업 편

예쁘고 마르고 젊은 여성에게는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고, '예쁨'의 기준에서 벗어났다 판단하면 웃음거리로 만드는 예능. 여성을 끝없이 대상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너무 멋진 나'의 소유물 정도로 바라보는 노래가사, 여성 유저임이 드러나면 공격받거나 성희롱을 당하는 게임판… 한국여성민우회가 미디어에서 마주하는 '여성혐오'에 제동을 걸고 바꿔나가기 위한 연속특강을 마련했다. 18일부터 4주 동안 진행될 '미디어씨, 여성혐오 없이는 뭘 못해요?' 특강을 옮긴다. 매주 토요일 연재될 예정이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여혐' 가사 나와도 노래만 '좋으면' 괜찮은 걸까
② 게임과 게이머는 어떻게 '여성혐오'하고 있을까
③ 혐오발언은 '표현의 자유'도, '불가침의 영역'도 아닙니다
④ 남성에게 관대하고 여성에게 가혹한 연예계, 왜 안 바뀔까
<끝>

최지은 기자는 2015년 10월 '여자 없는 예능'이라는 기획기사를 썼다. '여자 없는 예능' 흐름은 2017년 6월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사진='아이즈' 홈페이지 캡처)
대중문화를 다루는 웹진 아이즈는 연예산업 전반에 걸쳐 있는 '여성 배제'와 '여성혐오'를 꾸준히 파헤치고 환기시켜 온 매체다.

최지은 전 아이즈 기자도 '남자의 이야기 속 강간 피해자는 어디로 가는가', '[해피투게더3]와 기안84, 예능 짝짓기의 폭력', '2016년, 방송통신심의위원들은 이렇게 말했다', '한국 영화 남초 시대│② 남자끼리 다 하는 한국 영화 브로 테스트', '[함부로 애틋하게] 이경희의 남자들, 그만 좀 함부로 하게', '여자 없는 예능│② 여자가 예능에서 피해야 할 일곱 가지' 등의 기사를 쓰며 이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한 '공적 발화'를 해 왔다.

8일 오후 열린 한국여성민우회 연속특강 '미디어씨, 여성혐오 없이는 뭘 못해요?' 4강 '연예산업' 편의 강의를 맡은 최지은 기자는 왜 이런 문제들을 말하기 시작했는지, 현재 연예산업 판은 어떻게 뒤틀려 있는지, 이 판도는 왜 달라지지 않는지, 변화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들려줬다.

◇ 여성혐오에 눈뜨게 한 칼럼과 옹달샘 사태

최 기자는 연예산업 구석구석에서 발견할 수 있는 여성혐오를 '말하게' 된 계기로 2015년 '그라치아'에 실린 김태훈 칼럼니스트의 'IS보다 무뇌아적 페미니즘이 더 위험해요'라는 칼럼과 개그 트리오 '옹달샘'(장동민·유세윤·유상무)의 팟캐스트 파문을 들었다.

최 기자는 "페미니스트라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한국에서는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에 대해 이렇게 모욕적인 발언을 공식적인 지면에 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는 것에 충격이 컸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최 기자는 과거 자신도 '옹달샘'에 주목해 많은 기사들을 써 왔고, 팟캐스트 파문이 일기 전에는 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기획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고백하며 "저 역시 (여성혐오 발언을 일삼은) 이 사람들의 성공과 서사를 확대재생산해 사람들에게 퍼트리고, '이게 재밌는 거다' 하면서 보게 만들었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지금까지 계속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 '여자 없는 예능'은 지금도 기본값

최근 방송된 MBC '무한도전-미래예능연구소' (사진=MBC 제공)
최근 방송된 MBC '무한도전-미래예능연구소'에도 출연진은 모두 남성이었다. 방송 사진을 보고 누군가는 말했다. "미래 예능에도 여자(의 자리)는 없다는 뜻인가?"

최 기자는 2015년 10월 '여자 없는 예능'이라는 기획기사를 썼다. 주요 예능 프로그램에서 여성을 보기 힘든 상황은 2017년 6월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예능이 나오지만 여성이 주가 되는 경우는 손에 꼽고, 병풍조차 되지 못하고 모든 출연진이 남성으로 구성된 경우가 대다수다.

JTBC '비정삼회담', '냉장고를 부탁해', '잡스', '아는 형님', '한끼줍쇼', '뭉쳐야 뜬다', tvN '신서유기', '문제적 남자', '프리한 19', '공조7', '알아두면 쓸데없고 신비한 잡학사전'…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는 KBS2 '1박2일'과 MBC '무한도전'도 남성 멤버들로만 구성되어 있는 대표적 프로그램이다.


최 기자는 "살림도 남자가 하고, 과학도 남자끼리 하고, 딸도 남자가 키우고, 혼자 사는 것도, 화장하는 것도 남자가 중심이 된다. 이 정도면 숨만 쉬어도 아이템이 되는 수준이다. 최근 예능이 거의 다 이런 식"이라고 말했다.

유시민·유희열·김영하·정재승·황교익 5인이 '인문학'을 이야기하는 컨셉인 나영석 PD의 신작 '알쓸신잡'은 중년의 남성이 술을 마시고 수다를 떠는 것만으로도 '예능'이 된다는 것을 잘 보여준 사례다.

최 기자는 "인문학을 표방한 많은 토크쇼, 예능, 강연 프로가 늘 남자 어르신들 중심으로 짜여 있다. 여성 전문가가 한국에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닌데도 (제작진은) 발굴할 생각도 없고 여성들에게는 다른 잣대를 대어 배제시킨다"며 "인문학을 남자들이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나이 많은 남자들이 하는 말을 '인문학'이라고 하는 것 아닌가 싶다"고 지적했다.

◇ 여성이 방송에서 활용되는 방식

물론 한국예능에 여성이 '전무'하지는 않다. SBS '런닝맨', KBS2 '해피투게더3', tvN '인생술집', '집밥 백선생' 등에는 여성이 나온다. KBS2 '언니들의 슬램덩크', '하숙집 딸들'은 드물게 여성이 중심에 있는 예능이었다.

문제는 대부분의 예능에서 여성은 1/n일 뿐이고, 요구되는 역할도 지나치게 한정적이라는 데 있다. 최 기자는 한국 예능이 여성에게 허락한 자리는 홍일점, 꽃병풍, 치어리더, 막내 정도라고 분석했다.

최 기자는 "(홍일점일 때) 우리 예쁜 누구 정도로 귀여워하거나 '넌 이것도 모르니' 식으로 취급한다"며 "젊은 여자, 예쁜 여자가 나오면 앉혀놓고 칭찬하면 할 걸 다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꼬집었다.

많은 남자들 속 유일한 여성이기 때문에 기대치가 높은 것도 홍일점의 어려움이다. 최 기자는 "홍일점은 일당백을 해야 한다. 초반에 활약을 좀 못하면 '쟨 재미도 없는데 왜 앉아서 돈 벌어가냐'라고 한다. 또 (다수 중 유일한 여성이기에) 이 사람이 뭘 하는 게 너무 과도하게 해석되거나 오해받는다"고 설명했다.

8일 오후, 최지은 전 아이즈 기자가 한국여성민우회 연속특강 '미디어씨, 여성혐오 없이는 뭘 못해요?' 4강 '연예산업 편' 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한국여성민우회 제공)
'막내'의 포지션은 주로 신인 걸그룹의 몫이다. 경청하고 웃고 감탄하는 역할이며, 다른 남성 출연진은 이 사람을 "우리 누구는~"하고 우쭈쭈하거나 타박하고 가르친다.

여성들이 진출 가능한 예능 영역도 패션, 뷰티, 여행, 맛집 탐방, 가상 연애 및 결혼, 육아 프로그램 정도로 제한돼 있다. 거의 모든 것이 예능의 소재가 되는 남성들과는 출발선부터 다르다. "김숙하고 나는 애하고 시어머니가 없어서 방송을 하기 힘들다"는 송은이의 말은 농담이 아니다.

최 기자는 여성 예능인들이 더 자리잡기 힘든 이유를 '끈끈한 남성 네트워크의 혜택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남성 예능인들의 네트워크는 너무 많은데 반대는 거의 없다. (본인의 잘못으로) 어느 순간 커리어가 꺾였던 남자 MC들이 얼마나 어렵지 않게 방송에 복귀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친한 친구나 선배가 있으면 그가 하는 프로그램에 낄 수 있다. 그럼 자숙이나 대대적인 반성 없이도 잘 돌아오게 된다"고 설명했다.

가요계에서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걸그룹의 노동강도는 어마어마하다. '아이돌'이라는 위치에서 요구되는 역할에 '감정노동'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걸그룹은 자판기처럼 애교나 섹시댄스를 쏟아내야 한다.

최 기자는 "사실 이 사회의 모든 사람들이 걸그룹에게는 여러 가지를 요구한다. 항상 웃어야 하고 기분나쁜 표정을 지으면 안 된다. (여기서 어긋나면) '돈 받고 하는 일인데 왜 징징거려?', '프로페셔널하지 않네'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며 "분노하기 가장 만만한 대상이 걸그룹"이라고 분석했다.

드라마 속 여주인공의 모습도 여간해선 변하지 않는다. 정의롭고 감성적이며 덜렁대지만 따뜻한 성격이거나 거칠어보여도 '천상 여자'다운 면을 지니고 있으며 가난한데도 오지랖이 넓어 '민폐 여주'라는 말이 붙는다. 사회적 직위도 낮다. 비정규직, 하급자, 아마추어는 대개 여성의 몫이다.

◇ 여성혐오 엔터테인먼트, 왜 지속될까

최 기자는 이같은 여성혐오 엔테터인먼트가 지속되는 원인을 제작현장의 문제와 시청자의 문제 2가지로 나눠 볼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우선 제작현장의 문제로는 △방송 산업 내 성비 불균형(주요 결정권자 다수가 남성) △조직 내 젠더 위계와 성폭력 문제 △새로운 시도 대신 기존의 '안전한' 방식 선호 등을 들 수 있다.

시청자들에게도 △나는 혹시 남성의 과오에 너무 관대하고 여성의 실수에 유독 가혹하지 않은가 △특정 연예인을 비난하고 싶다면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그 사람의 잘못인가, 나의 기분 문제인가 등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 보는 것을 제안했다.

이어, △'여혐' 콘텐츠에 대한 항의 표시와 불매 △관련기관에 민원 제기 △각자의 채널을 통해 말하기 등을 바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으로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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