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형표 유죄 판결은 세월호 외압수사의 '예고편'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국무위원인 장관 지시는 도대제 어디까지가 '합법'이고 어디까지 '불법'인가?

이 물음에 답할 수 있는 중요한 판결이 엊그제 나왔다. 바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에 대한 '직권남용권리행사 방해죄'(직권남용죄)에 대한 유죄 판결이다.

비록 1심 선고지만 문 전 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에 대한 유죄 선고는 '기록적 판결'로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다.

이 선고는 장관의 지시가 어떤 경우에 '외압'으로 변질되는지를 명료하게 판단했다. 장관은 물론 검찰총장 등 정부 고위직 인사들의 직무 이행에 앞으로 '이정표'가 될 중요한 판결이다.

정부 최고위직인 장관 지시를 놓고 '외압 여부'를 따져 본 것도 이 사건이 근래들어 독보적일 것이다.

이와함께 장관이 '잘못된 지시'라는 사실을 알고도 그것을 '무리하게' 밀어붙였다면 그 또한 형사 처벌 대상이 된다는 사실이 이번 판결로 확인됐다. 그 실례가 홍완선 전 기금운용본부장에 대한 유죄 판결이다.

특검 공소장에 따르면, 문 전 장관은 '삼성합병을 잘 챙겨보라'는 박 전 대통령 지시를 안종범 전 수석 등으로부터 전달받고 복지부 직원들에게 "합병이 성사됐으면 좋겠다"고 합병 성사 지시를 내렸다.

재판에서 보건복지부 조남권 연금정책국장은 "2015년 6월 합병이 큰 이슈가 된다고 보고하자 장관은 '찬성해야 한다'는 취지와 지시를 내렸다"고 진술했다.

또 "'(장관이) 합병 건은 100% 슈어(sure.확실하게)하게 성사돼야 한다. 전문위원별로 성향을 파악하고 대응방안을 만들라'는 지시도 내렸다"고 증언했다.

법원은 복지부 공무원들의 진술을 모두 증거로 채택하고 "문 전 장관이 복지부 공무원들을 동원해 국민연금공단의 개별 의결권 행사 사안에 개입해 그 결정 방향을 구체적으로 지시한 것으로 직권남용 행위에 해당한다"고 선고했다.

이 판결은 비록 장관일지라도 직무 범위를 넘어 '부당한 지시'를 하거나 '외압'을 가했다면 형사 처벌 대상이 된다는 중요한 '선례'를 만들었다.

법원의 한 판사는 "문 전 장관에 대한 유죄 판결은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 등의 국정농단 사건은 물론 앞으로 예상되는 세월호 수사 외압의혹에도 참고사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는 대개 입증이 매우 까다로운 범죄로 인식돼 왔다"며 "그러나 이번 판결은 장관의 월권 행위를 판단하는데 '가이드라인'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크다"고 덧붙였다.

◇ 문형표 유죄는 황교안과 우병우의 세월호 외압의혹 수사에도 당위성 제공

황교안 전 법무장관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삼성합병과 세월호 외압 수사의혹은 내용은 근본적으로 다르지만 황교안 전 법무장관 등의 직무범위와 지시가 유사하게 작동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황 전 대통령 권한대행은 2014년 법무부 장관 시절 검찰의 세월호 수사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해 수사를 방해했다는 의혹이 이미 제기됐다.

광주지검은 2014년 7월 29일 해경의 늑장구조와 관련 세월호 사고현장에 맨처음 도착했던 당시 김경일 해경 123정장을 긴급체포했다. 참사가 발생한 지 석달 보름 남짓 경과한 시점이다.

검찰은 이미 김 전 정장을 '업무상과실치사죄'(업과사)로 입건한 상태에서 상당기간 수사를 벌였다. 하지만 김 정장이 신병을 비관해 스스로 몸을 해칠 우려가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더이상 미루기 어렵다고 판단해 긴급체포한 것이다.

수사팀은 48시간 체포시한을 얼마 안남기고 '업과사'로 구속영장을 청구한다는 방침을 법무부와 청와대에 보고했다.

하지만 황 전 장관은 김주현 당시 검찰국장 등을 통해 '업과사' 적용을 한사코 반대한 것으로 당시 수사팀 간부들이 증언하고 있다.

세월호 수사를 지휘한 변찬우 전 광주지검 검사장은 "수사팀이 김 전 정장을 '업과사'로 구속영장을 청구하려 하자 법무부가 '청와대가 절대로 안된다고 반대한다'며 영장을 청구하지 못하도록 막았다"고 말했다.

◇ 외압으로 '앙꼬 없는 찐빵' 된 구속영장

수사팀은 결국 청와대와 법무부의 장관 수사지휘권을 빙자한 외압에 '업과사'를 뺀채 항해일지 조작 등 '허위공문서 작성 위반 혐의'만 적용해 영장을 청구했다. 그러나 법원은 보란듯이 기각해 버렸다. 외압으로 '앙꼬' 없는 '찐빵'이 된 것이다.

변 전 검사장은 CBS노컷뉴스에 "(검찰이) 가장 중요한 '업과사'는 빼버리고 허위공문서만 기재하니까 법원이 영장을 기각해 버린 것"이라고 밝혔다.

청와대와 법무부 장관이 '부당한 지시'와 '외압'으로 법원에 청구할 구속영장에서 '업과사'를 빼도록 했다면 이는 문형표 전 장관 범죄사실에서 보는 것처럼 명백한 직권남용 행위에 해당한다.

당시 박근혜 정권은 정장을 처벌하면 초동 대응과 구조에 실패한 정부의 책임이 부각되는 것을 크게 우려했다.

앞에선 진상규명과 엄중 처벌을 다짐하면서, 뒤로는 진실을 감추려고 수사와 처벌을 한사코 방해하려 한 것이다.

법무부와 우병우 전 수석은 '업과사' 적용을 두고 자신들과 끝까지 대립각을 세웠던 조은석 전 대검형사부장(현 사법연수원 부원장)과 일선에서 사건을 담당한 변 전 광주지검장을 한직으로 좌천시켜 버렸다.

심지어 조 검사장이 주무 부서임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수사결과 최종 발표문 작성을 대검 기조부에 뺏긴 채 배제되는 수모를 겪은 사실은 당시 대검내에 파다했다.

전직 수사팀 관계자는 "이미 긴급체포한 피의자는 혐의가 확인됐다고 판단되면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방법 밖엔 없다. 이미 체포를 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구속이 되고 안되고는 법원 판단을 받으면 된다. 그런데 당시 법무부가 주요 혐의사실인 '업과사'를 영장에서 빼라고 지시했다, 이건 분명한 부당 지시이다"라고 말했다.

황교안 전 권한대행과 우병우 전 수석은 세월호 수사 외압의혹을 철저히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세월호 수사 외압의혹 사건의 '뚜껑'은 열리기 시작했다. 문형표 전 장관과 홍완선 전 기금운용본부장의 유죄 판결은 세월호 수사외압 의혹사건의 '예고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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