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에선 종교계 역할 커
-항쟁 이후 '다 이뤘다'는 생각, 양김 분열 등…민주화 열매 무산시키기도
-6월항쟁과 2016 촛불, '이게 나라냐'는 의식 일치
-6월항쟁-절차적 민주주의 확보, 2016 촛불-직접민주주의 실현
■ 진행 : 박윤경 ANN
■ 정리 : 홍수경 작가
■ 대담 : 춘천시민연대 권오덕 정책참여위원장(6월항쟁 당시 강원대 총학생회 부총학생회장), 엄재철 정의당 춘천시당원협의회장
87년 6월 민주항쟁이 올해로 어느덧 30년을 맞았다. 그동안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얼마나 진전했을까? 최근 춘천에서는 6월항쟁 30년을 맞아 6월항쟁의 역사적 의미는 무엇이었을지 그리고 촛불민심을 통해 정권교체를 이룬 지금, 6월항쟁이 우리에게 다시 묻는 시대적 과제는 무엇일지 반추하고 고민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이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았던 춘천시민연대 정책참여위원장이며 당시 강원대 부총학생회장이었던 권오덕 위원장,엄재철 정의당 춘천시당원협의회장을 시사포커스 목요초대석에서 만나봤다.
◇박윤경>어제 춘천에서 의미있는 대토론회가 열렸다고.
◆권오덕>6월항쟁이 올해로 30주년을 맞았다. 국가기념일로 지정돼 있긴 한데, 춘천에서는 매년 기념 행사들을 하지 못했고, 30주년을 맞아 이번에는 해보자라는 의미로 춘천사람들 주관 토론회가 개최됐다. 6월항쟁의 의미와 기록과 과제 등의 내용이었다.
◆엄재철>정권교체가 돼서 그런지 6월항쟁 30주년을 맞는 기분이 가볍고 즐거웠다. 그렇지 않았다면 결의를 요구하는 자리였을텐데, 어제는 다들 표정도 밝았다. 촛불 정국으로 정권도 바뀌었고 비정상의 나라에서 정상적인 나라로, 희망을 가져볼 수 있는 사회로 바뀌었기에 더 뜻 깊은 자리였다.
◇박윤경>어느덧 3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두 분께선 6월항쟁 당시 어떤 위치, 또 어떤 경험을 반추하고 계신지?
◆권오덕>그 말씀 드리기 전에 6월항쟁의 경험과 위치는 다 다르다는 느낌이다. 어떤 분은 앞에 있었고 뒤에 있었고, 당시 보안부대에 근무했던 분도 있고 전경으로 시위대를 막는 입장도 있었다. 바라보는 시각과 경험은 각각 다르다. 저는 강원대 총학생회 부회장이었기에 학생 지도부 입장에서 참여했다. 그러다보니 그로인해 수배도 받고 어쩔 수 없이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박윤경>엄위원장님은 어떤 기억들이 떠오르나?
◆엄재철>권 위원장 말씀과 대동소이하다. 나는 권오덕 위원장님의 오더를 받는 학생의 입장이었다. 가두투쟁을 하기도 하고, 카톨릭 학생회 쪽에서 참여했다. 신부님들과 같이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외쳤던 기억들이 아련하다.
◇박윤경>잠깐 언급하셨지만, 권위원장께선 6월항쟁 당시 강원대 총학생회 부회장이셨다. 관련해서 어제 토론회에선 춘천의 6월항쟁 전개과정을 소개해주셨던데 당시 전국적인 상황과 함께 춘천에선 6월항쟁이 어떻게 전개됐고 또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었을지?
◆권오덕>6월항쟁의 기폭제가 된 건 87년 1월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사건과 5월18일 천주교 대성당에서 이 사건이 은폐·축소 조작됐다는 내용을 폭로하면서 기폭제가 됐다. 국민들이 대통령을 뽑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전두환 정권이 사람을 잡아가두고 고문하고 죽이고 그것을 은폐했다. 군부독재 폭압에 대한 분노가 국민들 마음에 깔려있다가 폭발한 게 6월항쟁이다. 거기에 전두환 정권이 4.13 호헌선언, 즉 헌법을 바꾸지 않고 체육관에서 대통령 뽑겠다라고 하니 민심이 폭발한 거다. 작년 촛불 때처럼 '이게 나라냐'라는 의식이 6월항쟁을 태동시킨 것이다. 이후 분위기가 고양된 것은 6월9일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에 맞아 쓰러지면서다. 살인정권 아니냐?라는 말이 나왔다.
춘천은 종교계의 역할이 컸다. 사실 80년 이후 학생운동이 가두진출하거나 이런 건 거의 없었다. 학생들이 학교 안에서 투쟁할 때 밖에서 역할을 해준 것이 바로 천주교 신부님들과 NCC 목사님들이었다. 박종철 열사의 추모미사를 2월과 3월2일 성당에서 하면서 성직자들과 신도들이 분노의 목소리를 내주셨다. 6월10일은 사실 민정당 정당대회였다. 노태우 씨가 후보로 지명되는 날. 그날 범국민대회를 전국적으로 연 거다. 그 대회 준비 역시 신부님들과 목사님들이 본인 가택연금까지 피해가면서 잡혀갈 각오로 거리로 나갔다. 그렇게 밖에서 처음 시위가 시작됐고 학생들은 학교 내부에서 시위하는 정도였다. 그러다 6월 18일 전국적으로 ‘최루탄 추방의 날‘을 선포하고 범국민적으로 하자. 강원대에서 학교뿐만 아니라 명동으로 나갑시다라고 했다. 명동입구에서 6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강원대에서 명동까지 가는 인도가 꽉 차서 움직일 수 없을 정도였다. 학생들 분노가 표출된 거였다. 6월항쟁이 시작됐고 18일~20일 춘천에서 싸웠다. 6.29선언으로 정권이 직선제를 하겠다고 하면서 항쟁이 끝나게 됐다.춘천의 시민들과 학생들이 놀랐고, 학생들이 시위를 할 때 시민들이 호응을 해줬다. 정권에 대한 분노감과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느낄 수 있었다.
◆엄재철>6월항쟁이 갖는 의미는 예전처럼 힘과 폭압으로 정권 잡을 수 없다. 총으로 정권을 잡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부패한 군부독재 세력들이 아니라 민주주의 형식을 통해 집권방식을 바꿔가는 것이라 본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으로 오면서 사회적 약자·노동자·농민 ·시민들의 권리를 보장해 준 측면이 있지만 기득권들은 여전히 돈을 기반으로 정치권력을, 정치권력을 기반으로 법과 제도를 바꿔간 측면이 있다. 촛불이 일어난 계기도 법과 사회가 민주주의라고 하는데 왜 이렇게 불공평한지, 왜 우리만 못살게 굴고 저들은 잘못해도 처벌받지 않는지에 대한 의문에서 비롯됐다.
역사는 민주주의가 진전해왔다고 하지만 이를 불편해 하는 사람들도 그들의 입지를 강화시키기 위해 노력해왔고 그런 것들이 충돌해왔다.
◆권오덕>성과는 민주주의의 진전이 있을 것 같고 6월항쟁을 통해 직선제 개헌을 이뤄냈다는 부분, 절차적·제도적 민주주의는 확보했다. 그게 가장 큰 것 아닌가 싶고 내용적으로는 민주주의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국민 스스로 만들어가는 역사다라는 걸 자각하지 않았겠는가 생각한다. 국민들이 나가서 우리 손으로 대통령 뽑게 해달라고 요구한 것을 독재정권이 밀려서 받아들인 것. 6.18일 계엄령까지 검토하면서 그들의 방식대로 가려고 했는데 미국에서 반대했다. 국민들의 저항이 그것을 무산시키고 국민의 손으로 민주주의 이룬 것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고 본다.
아쉬운 점은 당시 그렇게 국민들이 만든 성과를 대선을 통해 야당이 스스로 무산시킨 것이다. 당시 시민사회진영과 학생 진영이 '할 일을 다했다'라고 한 게 강하지 않았나 싶다. 보다 적극적으로 권리를 찾아나가도록 노력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양김 분열로 나타나 민주화의 열매 무산된 게 아니겠나 생각된다. 그런 안타까움들이 이후의 과정 속에서 전노협, 전농, 빈민단체, 학생의 조직들을 만들고, 정치적 진출을 위한 진보정당 운동을 하게 했다.
◆엄재철>반성할 지점은 87년 6월항쟁을 통해 대통령을 직선제로 뽑아놓고 (시민들이) 관여하지 않았다. 극단적으로 드러난 것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이다. '어차피 민주주의 절차를 통해서 대통령을 뽑은 거잖아?'라는 의견을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럼 관여할 수 없는 건가? 아니다. 잘못한 게 있으면 개입해야 겠네…라고 생각하면서 촛불들고 싸운 것이 최근의 촛불과 6월항쟁이 다른 점이다.
◇박윤경>우리가 장미대선까지 이뤄낸 지점에서 국민들의 역할과 책임은 더 중요할 것 같다.
◆엄재철>이제는 자꾸 물어야 한다. 대통령에게 이건 해달라, 이건 아닌 것 같다는 국민적 요구를 계속하고, 끊임없이 관심있게 지켜봐야 한다. 물론 이 사회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저항할 것이다. 기존의 권력을 유지하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온 집단 즉, 재벌이나 검찰, 고위직들, 이들에 대해 국민들이 제대로 적폐청산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박윤경>6월항쟁과 광장의 촛불이후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고 또 계승할 것이냐…여기에 대한 답을 찾아가야할텐데?
◆엄재철>대통령이 바뀌고 비정상적 모습을 안 보게 됐는데, 내 삶이 바뀌지 않는다면 큰 의미가 있을까? 그 속에서 내 삶이 어떻게 좋아질 건지 실생활에서 체감이 돼야 한다. 그것이 국가가 해줄 일이다. 예전에 밥 먹는 문제는 무조건 내가 해결해야 했다. 그게 내 문제였는데 이제는 국가가 어떠해야 하는지 많은 사람들이 깨달았다고 본다. 국가 구성원으로 살아갈 때 국가와 밀접할 수 있도록 자꾸 참여해야 한다. 그를 위해서는 지역 시민사회단체에 많이 가입해야 해줬으면 좋겠다. 정치를 통해 바꾸는 게 가장 유력하다면 끊임없이 관심가지고 정당도 후원하고 건강한 정당 만들기에 참여하면서 지금보다 삶의 질을 높이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 질적 민주주의 향상시키는 방법이다.
◆권오덕>어제 토론회에서 어떤 분이 87년 항쟁을 주도했던 학생 지도부들이 정치권으로 갔는데 왜 우리사회는 변하지 않았나 하더라. 그런 얘기에 가슴 아프고 안타까웠다. 그때는 거대담론, 이 땅에 민주주의를 어떻게 만들 것이냐가 중심이었다. 그때는 그 당시의 역할을 한 거다. 이제는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국민들이 내 손으로 권력 바꾸고자 광장에서 요구들을 끊임없이 쏟아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는 요구적 수준이 아니라 우리 손으로 되찾아야 한다. 지역에 눈을 돌려야 한다. 광장에 나간 국민들이 이제는 내 주변에서 무엇을 바꿀까를 고민하고 노력해야한다. 그것이 자연스럽게 정치의 형태로 가야한다. 어떤 사람에게 맡기는 정치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해결해 나가려는 시민정치가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87년 민주화가 완전단계로 간다고 생각한다. 춘천에서도 시민들이 모여서 정치를 어떻게 바꿀까, 어떻게 권력을 바꿀까 얘기를 해야 한다. 그 힘을 모아 정당이 마음에 안 들면 압박을 하고 후보을 내서 당선시키는 노력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촛불이 상당히 큰 기반, 출발이 됐다는 생각이 든다.
◇박윤경>6월항쟁의 의미와 더불어 지금 우리 시대가 반영해야 할 부분에 대한 말씀을 나눠봤는데 우리가 사는 세상, 우리의 역할이 중요하다라는 걸 깨달았고 촛불 민심 30년 후가 기대가 된다.오늘 두 분 말씀 감사. 지금까지 춘천시민연대 권오덕 정책참여위원장, 엄재철 정의당 춘천시당원협의회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