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누구보다도 제가 연기하는 인물을 응원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공항가는 길'에서도 사실만 놓고 보면 이뤄져서는 안되는 사랑일 수도 있죠. 하지만 그걸 사랑이 아니라고 믿으면서 연기할 수는 없잖아요. 내가 안되는 사랑이라고 생각하면 받아들이는 사람 입장에서도 그럴테니까요. 논리적으로 그 감정이 납득 가능하면 연기가 되더라고요. '공항가는 길' 당시에는 이성적으로는 그러면 안되는 상황이니까 완전히 감정적인 흐름을 따라갔어요."
그는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하지 않았다. 서울대 물리학과 출신이라 '이과적' 감성을 가진 이들 중의 한 명이다. 삶 자체가 '논리'에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연기를 하는 모든 과정이 낯설었다.
"감성적인 부분을 받아들이는게 방법적으로 익숙하지 않았어요. 연기해오면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생기고, 느껴졌죠. 실제 삶에서도 더 그런 감정적인 부분을 알게 되는 것 같아요. 감정이 흘러가는 상황 때문에 이뤄지는 대화와 행동이 있거든요. 그런데 어쨌든 이번에는 감정과 정반대로 움직이는 작품이었어요."
혹시 악역을 해볼 생각은 없냐고 물으니 영화 이야기를 꺼낸다. 드라마보다는 좀 더 자유로운 캐릭터들이 영화에 있어 끊임없이 두드리고 있단다. 드라마에서는 언제나 주연급만 꿰차는 그이지만 영화 쪽에는 기회가 많지 않다고. 최근 들어 이상윤은 '변화'를 생각하고 있다.
"극적인 연기보다는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연기를 선호해왔어요. '더' 표현하는 방법이 있다면 아무렇지 않게 표현하는 방법도 있죠. 저는 후자였고요. 그런데 계속 그래서는 안될 것 같고 다른 방식을 찾아 볼 필요는 있는 것 같아요."
이제 이상윤에게는 전부 소진한 스스로를 풍성하게 채우고, 깊이를 더하는 작업이 남았다. '스스로 많이 부족했다'는 그의 성찰은 또 다른 가능성을 담고 있었다.
"사실 지금 좀 슬럼프가 온 것 같아요. 연기적으로 깊이를 더 파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해요. 감정적 혹은 정신적으로 많이 가라앉는 작품들을 연달아하면서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자신을 채우고, 좀 더 단단해지고, 깊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면 대본에서 받았던 느낌도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딘가 제가 힘이 약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배우로서 좀 더 변화를 모색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