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교조 법외노조 철회, 법정공방 거쳐 공은 다시 정치권으로
7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법외노조 철회를 요구하며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10일째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다.
전교조가 법외노조 행정처분을 받은 이유는 6만여 조합원 가운데 해직교사 9명을 포함한 바람에 교원노조법을 위반했기 때문이다.
문제의 해직교사들은 전교조 활동의 최전선에서 일하다가 교직을 박탈당했다.
비단 교원노조법 뿐 아니라 일반 노조법에도 해고된 조합원은 노조 조합원에 포함할 수 없도록 규정됐지만, 통상 노조 측이 부당해고를 주장할 경우 해고자의 조합원 자격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애초 대법원은 2004년 구직자조차도 노조원에 포함할 수 있다고 판결한 바 있고, 국제노동기구(ILO)도 조합원 자격요건은 노조가 재량에 따라 규약으로 정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법적 공방에서 전교조는 수세에 몰려있다. 박근혜 정부 시절 내려진 1, 2심 판결에서는 "전교조 규약은 노조 가입 자격을 '재직 중인 교원'으로 한정한 교원노조법 2조에 어긋난다"며 고용노동부의 법외노조 통보가 정당하다고 밝혔다.
현재 관련 소송은 대법원에 계류 중이지만, 헌법재판소 역시 2015년 전교조가 낸 교원노조법 위헌법률심판에서 "교원 노조의 자주성·주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조합원 자격을 제한한 것은 적절하다"며 8대 1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그런데 당시 헌재는 정작 정부의 법외노조 통보가 적법한가에 대해서는 "행정당국의 재량적 판단"이라며 다시 정부로 공을 넘겼다. 이후 정권교체 덕분에 지난 박근혜 정권과 달리 새 정부 들어 전교조의 법외노조 철회 조치는 '가시권'에 들어섰다.
우선 앞서 대선 기간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초에 전교조 법외노조 조치를 철회하겠다고 공언해왔다. 더구나 7일 인사청문회가 열리는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는 헌법재판관 시절 전교조의 위헌소송에서 유일하게 반대 의견을 냈던 장본인이다.
다만 보수 진영의 거센 반발에 청와대와 여당은 아직 전교조 관련 논의를 공식화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문 대통령 취임 직후 전교조의 법외노조 문제를 놓고 논란이 불거지자 지난달 22일 청와대는 "한번도 논의된 적 없다"며 선을 그었다.
이낙연 총리도 지난달 25일 인사청문회에서 전교조 법외노조 철회 문제에 대해 "대법원의 판정을 기다리는 상황"이라며 "법원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고 후퇴했다.
더구나 아직 대법원 판결이 남았지만, 이미 법외노조 조치가 정당하다는 법률적 판단이 잇따라 내려진 상황에서 정부가 스스로 통보한 행정처분을 뒤집기에는 정치적 부담이 상당하다.
◇ 정부, ILO 협약 비준 통해 법 개정 우회? 전교조 "즉각 철회해야"
그렇다고 정부가 마냥 대법원 판결을 기다릴 수 없는 만큼, 법외노조 문제의 유력한 돌파구로 ILO 협약 비준이 떠올랐다.
고용노동부를 중심으로 ILO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 협약(제87호) 등의 비준을 위한 제반 사항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관련 법 개정 논의로 이어질 조짐이다.
실제로 이 총리는 인사청문회 당시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면서, 그 법원 판단의 틀 안에서 혹시 갈등을 완화하는 방안이 있다면 (마련돼야 한다)"며 묘한 뉘앙스를 남겼다.
즉 법의 테두리 안에서 법외노조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이 총리의 발언과 ILO 비준 추진 움직임을 함께 고려하면 정부는 애초 논란의 발단이 된 교원노조법 등을 개정하는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다만 이 경우 국회에서 여야 간의 합의가 필요한데다, 복잡하게 헝클어진 법외노조 사태 해결의 책임을 앞장 서서 지는 정치적 부담을 놓고 대법원과 국회 사이의 '눈치 싸움'까지 벌어질 것으로 보여 사태가 장기화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전교조도 법외노조 통보는 지난 정부의 정치적 꼼수일 뿐이라며 즉각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전교조 송재혁 대변인은 "고 김영한 민정수석 비망록에서 전교조 법외노조 처분에 대해 '긴 프로세스 끝에 얻은 성과'라고 언급하기도 했다"며 "법외노조 처분은 적폐 그 자체"라고 주장했다.
이어 "전교조는 하루 하루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고 있다"며 "법 개정 등을 통해 법외노조 문제를 해결한다면 이는 지혈 없이 수술하겠다는 안이한 발상으로, 우선 행정부가 법회노조 통보부터 철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에도 영혼없던 공무원, 그들에게 노조가 있었다면?
앞서 이명박 정권 시절인 2010년부터 법외노조 신세인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지난 정부 국정 농단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노조 정상화가 절실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전국공무원노조는 2009년 9월 옛 전국공무원노조·민주공무원노조·법원공무원노조가 통합해 출범한 이후 5차례나 설립신고서를 제출했지만, 역시 해직 공무원을 조합원으로 뒀다는 이유 등으로 거듭 반려되면서 법외노조 처분을 받고 있는 상태다.
전교조에 앞서 지난 15일부터 같은 자리에서 노숙농성을 진행중인 이들은 정권의 부당한 요구에 공무원들이 소신껏 항의하려면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보호할 노조가 있어야 진정한 적폐청산이 가능하다고 꼬집었다.
전공노 박중배 사무처장은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일 뿐, 지자체나 국가 권력의 행위가 불법 혹은 공익을 침해할 경우 거부해야 한다"며 "하지만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공무원법을 개정해 공무원은 국가 정책이 아무리 잘못되도 집단 반대할 수 없도록 막았다"고 설명했다.
박 사무처장은 "공무원 개인의 투철한 신념도 중요하지만 현재 한국 공무원 사회의 관료 시스템에는 한계가 자명하다"며 "노조 활동을 강화해 감시와 견제 기능을 다해야 박근혜 정부 국정 농단 당시의 영혼없는 공무원으로 전락하지 않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현재 6급 이하 공무원만 노조에 가입할 수 있지만, 해외 선진국에서는 일반 공무원은 물론 소방·경찰·법조계는 물론 학교장이나 장, 차관까지도 노조에 가입한다"며 "고위 관료라도 부당한 지시에 홀로 하소연하지 않도록 노조에 가입시켜 내부고발자에 대한 신분을 보호하고 직장 내 감시기능을 강화해야 박근혜 정부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