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김호철 감독과 한국 배구가 처한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지난 시즌 V-리그에서 맹활약한 문성민(현대캐피탈)과 전광인, 서재덕(이상 한국전력) 등이 부상과 재활 탓에 대표팀에 합류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김호철 감독은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세대교체라는 분명한 목표를 두고 대표팀의 붙박이 주전 세터였던 한선수(대한항공)를 배제하고 이민규(OK저축은행)와 노재욱(현대캐피탈), 황택의(KB손해보험)를 소집했다. 과거 세계무대에 이름을 날린 세터 출신답게 나이 어린 세터를 집중 조련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김호철 감독은 안방에서 시작하는 월드리그 3연전에서 2승1패를 거뒀다. 슬로베니아에 패했지만 체코, 핀란드를 풀 세트 접전 끝에 꺾으며 기대 이상의 출발을 보였다. 전체 일정의 1/3을 소화한 가운데 최소 목표치의 절반을 달성했다.
대회 전 김호철 감독이 ‘에이스’로 지목했던 이강원(KB손해보험)이 제 몫을 톡톡히 했고, 그동안 대표팀에서 활약이 뚜렷하지 않았던 박주형(현대캐피탈)도 인상적인 경기를 선보였다. 정지석(대한항공)도 ‘유망주’ 꼬리표를 떼고 힘껏 날아올랐다.
무엇보다 선수 개인의 ‘이름값’이 아닌 대표팀 구성원 전체의 ‘단결력’으로 만든 2승이라는 점이 더욱 고무적인 결과라 할 수 있다. 여기에 특성이 다른 세터를 경기 흐름에 맞춰 교체 투입하는 김호철 감독의 선택도 적중했다.
안방에서 절반의 목표를 채운 ‘김호철호’는 이제 월드리그 2주차와 3주차 일정을 모두 원정으로 치른다. 안방과는 다른 분위기에 시차라는 보이지 않는 적과도 싸워야 한다. 지난해 1, 2주차 6연패 후 3주차 안방에서 3연승을 거둬 극적으로 2그룹 잔류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사실상 쉽지 않은 일정이다.
2주차는 일본 다카사키에서 9일 슬로베니아를 시작으로 10일 터키, 11일 일본과 차례로 격돌한다. 3주차는 네덜란드 헤이그로 이동해 네덜란드(17일), 체코, 슬로바키아(이상 18일)와 차례로 경기한다. 실질적인 목표는 일본에서 1승, 네덜란드에서 1승을 추가해 2그룹 잔류다. 김호철 감독은 일본과 슬로바키아를 1승의 제물로 꼽았다.
김호철 감독은 “연습 때와 너무 다른 선수들의 모습에 놀랐다”면서도 “이 기세가 언제까지 갈지 모르겠다. 2승을 했다고 너무 기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겸손한 자세를 잃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