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달 만에 '청와대 관람' 다시 갔더니…"

기자의 '관람기'…"너무 달라져 깜짝 놀라"

문재인 대통령의 집무실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집무실(그래픽=강인경 디자이너)
#2월
경호실 직원: 대통령께 드릴 선물이나 편지 가져오신 분 계신가요? (좌중 침묵) 없으시죠? 있으시면 직접 전달이 불가능하니 저한테 전해주세요.

#6월
경호실 직원: 대통령께 드릴 편지 가져오신 분 계세요? (좌중에서 '아' 탄식하는 소리)
관람객1: 저 가져왔는데요.
경호실 직원: 제목이 어떻게 되죠? 여기 성함이랑 연락처 적어주세요.
관람객2: 지금 써서 내도 돼요? 혹시 우리 애 사인이라도 받을 수 있을까 해서요.

청와대 관람 버스 안 풍경이 달라졌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이 진행 중이던 지난 2월 1일과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인 6월 1일 각각 청와대 관람을 다녀왔더니 달라진 풍경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대통령 집무실의 위치(일러스트=강인경 디자이너)
일단 관람 인원 규모에서부터 차이가 났습니다. 지난 2월 당시 기자가 신청했던 회차의 관람객 수는 40여 명에 불과했지만, 지난 1일 관람객 수는 어림잡아도 그 3배인 120여 명에 달했습니다. 특히 어린 자녀를 동반한 가족 관람객이 많았는데요. 물론 날씨가 따듯해져서 관람객이 늘어난 측면도 있을 겁니다.

청와대 관람 버스에서 내리면 가장 먼저 발을 내딛는 곳이 춘추관 춘추문입니다. 춘추관 바로 옆 건물에서 보안 검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죠. 춘추관을 자주 볼 기회가 없는 관람객들은 저마다 인증샷을 찍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그건 4개월 전에도 마찬가지였죠. 그런데 청와대 직원의 태도가 눈에 띄게 달라졌습니다.


청와대 내에서는 허가된 장소에서만 사진을 찍을 수 있는데요. 춘추관 주변은 촬영이 금지된 장소입니다. 넉 달 전에는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던 한 관람객이 사진을 찍다가 청와대 직원에게 곧바로 제지를 당했죠. 그런데 지난 1일에는 관람객 여러 명이 동시에 인증샷을 찍고 있는데도 별다른 제지가 없었습니다.

기자도 인증샷을 찍었다(사진=김효은 기자).
그새 방침이 바뀌었는가 싶어 '여기서 사진 찍어도 되냐'고 외려 직원에게 물었더니 '안 된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특정 장소에서의 촬영 금지라는 방침은 4개월 전과 같았던 것이죠. 다만, 관람객에 대해 '과잉 제지'를 하지 않을 뿐이었습니다.

보안 검색을 거쳐 홍보관에 들어서면 2분짜리 청와대 홍보 영상을 틀어줍니다. 4개월 전에는 7분짜리 영상이었습니다. 청와대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뿐만 아니라 박 전 대통령의 치적을 홍보하는 내용이었죠. 특히 박 전 대통령의 집무실이 있던 청와대 본관에 대해 "대통령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 "언제나 가장 늦게 잠들고 가장 일찍 시작하는 곳"이라고 설명하는 바람에 실소가 나왔던 기억이 납니다.

녹지원 관람 코스(일러스트=강인경 디자이너)
다음 관람 장소인 녹지원에 이르러서는 적잖이 놀랐습니다. 녹지원은 청와대 정원인데요, 지난 2월에는 녹지원 앞에서 설명을 듣고 기념사진을 찍은 후 곧바로 다음 장소로 이동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녹지원에 난 길을 따라 녹지원을 한 바퀴 크게 돌더군요. 덕분에 외빈 접견에 사용된다는 상춘재를 코앞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앞에 보이는 건물은 대통령께서 근무하시는 여민1관입니다." 청와대 직원이 녹지원 맞은편에 있는 여민관(옛 위민관)을 가리키자 좌중이 '우와' 하며 탄성을 질렀습니다. 청와대 본관에 있던 대통령 집무실이 비서동인 여민1관으로 옮겨졌다는 소식은 알고 있었지만, 관람객 동선과 이렇게 가까울 줄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여민1관 앞(일러스트=강인경 디자이너)
혹시나 해서 집무실이 있는 3층을 올려다보았지만 천장만 언뜻 보일 뿐 사람들은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블라인드가 쳐진 사무실이 하나 있었는데 이곳이 문 대통령의 집무실인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녹지원 맞은편 여민1관의 출입구에는 경호관 한 명이 서 있었는데요, 다리가 편찮은 어르신들이 잠시 연석에 걸터앉아도 제지하지 않았습니다.

이밖에도 옛 본관 터와 소정원, 본관, 영빈관 순으로 돌아보는 관람 코스는 지난 번과 같았기 때문에 설명을 생략하는 대신 전체적인 관람평을 전해드릴까 합니다. 청와대 경내에는 곳곳에 출입문이 있는데요, 경찰관이 각각 해당 출입문을 지키면서 출입객의 동태를 확인합니다. 지난 2월 당시 경찰관은 관람객이 지나가도 정면만 응시할 뿐 말이 없었지만, 이번에는 관람객이 지나가는 동안 '감사합니다'라고 먼저 인사를 건네더군요. 이에 관람객들은 미소를 짓거나 손을 흔들어 답례했습니다.

출입문을 지키는 경찰관(일러스트=강인경 디자이너)
문 대통령이 경호실에 '약한 경호'를 주문했기 때문일까요? 불과 4개월 전만 하더라도 위압적이고 경직된 분위기에서 관람객을 주의관찰하던 경호관·경찰관들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되레 관람객과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걷거나, 관람객들의 인증샷을 찍어줬죠. 기자로서는 4개월 만에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에 당황스러울 정도였습니다.

달라진 건 청와대뿐이 아니었습니다. 이날 기자가 본 세월호 추모 리본만 3개나 됩니다. 10대로 추정되는 여학생, 어린 아들과 함께 온 여성 등이 가방에 노란색 세월호 리본을 달고 청와대를 거닐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이 집권한 청와대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겠죠.

이날 문 대통령에게 편지를 써서 전달한 김한나(35) 씨는 "동물 보호권을 강화해달라는 내용을 적었는데, 문 대통령이 잘 들어줄 것 같은 기대감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부모님·자녀와 함께 인천에서 왔다는 임채현(41) 씨는 "청와대에 처음 방문했다"며 "문 대통령이 보고 싶어서 왔는데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고 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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