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면 당시에는 왜 나는 안될까 원망했었어요. 그런데 가면 갈수록 당시에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걸 느꼈죠. 그래서 기회를 잡았을 때는 항상 소중하게, 절실히, 후회가 남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심정이 생겼나봐요. 매 순간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말이죠. 언젠가 한 번의 기회는 올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시간이 오기만을 기다렸고요."
그는 한 번에 많은 것이 달라지는 배우는 아니다. 선하고 바른 이미지의 그가 '귓속말'에서 악역을 맡게 된 것도 전작인 영화 '사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한 때는 다양한 역할에 욕심을 냈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자신의 얼굴을 쌓아가는 행위에 의미를 두고 있다. 만약 차기작을 한다면 아무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고된 작품을 원한다고.
"나도 다른 역할을 주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한 시기는 있었어요. 이런 모습을 한 번 보여주고 싶으니까 선택했던 적이 있죠. 대본이나 작품이 좋아서 선택하는 경우도 있고요. 그냥 이제는 다양한 얼굴이 종이처럼 쌓여서 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당장은 머리에 아무 생각이 들지 않게끔 하루 종일 뛰는 액션 장르가 하고 싶어요. 상처가 너무 아파서 평범한 살을 만져보고 싶네요."
"쉬면서 열심히 운동하려고요. 이번에도 체력적으로 좀 힘들었어요. 드라마는 특히 체력싸움이에요. 포커 선수들이 경기 시즌이 아닐 때마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그렇게 한대요. 사실 포커는 24시간을 치고, 나머지 6시간에서 승부가 갈리는 정신력 싸움이거든요. 지탱할 건 결국 체력밖에 없는 거죠. 드라마는 후반부로 가면 음식 관리도 못하고 쪽잠을 자는데 많이 신경을 써야 되겠다 싶었어요."
권율의 취미는 가사 노동이다. 청소나 빨래를 하면 쉴 공간이 깨끗해져서 기분이 좋아진단다.
"100단까지는 아니고 한 50단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절대 결벽증은 아니에요. 평소 촬영장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는데 사실 집에 돌아오면 좀 상쾌하고 깨끗했으면 하거든요. 집안이 잘 정돈돼있고 깨끗하면 피로가 풀리는 것 같아요. 직접 움직여야 좋고요. 집이 엉망이면 피로가 더 풀리지가 않으니까 촬영 다녀와서도 빨래 돌리고, 쓸고 닦아요. 혼자 사는 집에서 해먹으면 지저분하니까 요리는 잘 안해요."
어떤 측면에서 그는 강정일과 비슷하다. 힘든 상황에서도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것을 결코 멈추지 않았다.
"계획을 잘 세우고, 그걸 도모하는 걸 좋아해요. 큰일이 있을수록 차분해지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죠. 배우 생활도 비슷한 게 있어요. 배우로서의 제 목표 때문에 누군가를 상처입히지 않는 선에서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포기하고 싶지 않아요. 어느 순간 스스로 자괴감에 빠지거나 슬럼프가 있더라도 가야 할 목표를 바라보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