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이런 캐릭터를 연기한 당사자 권율은 후련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워낙 감정적으로 소모가 컸던 탓이다.
"너무 감정적으로 고되고 힘든 작업이었어요. 저도 모르게 예민해지고 우울해지는데 그 모습이 힘들더라고요. 어떤 작품들보다도 힘겨웠고, 버거웠던 시간이었습니다. 매번 벽에 부딪치는 느낌으로, 제 목을 제가 조르면서 연기했어요. 당장 외울 대사가 없고 잠을 마음껏 잘 수 있다는 것이 기쁘네요."
아직도 강정일이라는 인물에 깊게 젖은 듯한 모습이었다. 배우로서는 고통스러우면서도 즐거운 작업이었던 셈이다. 권율은 강정일이라는 인물을 연기했던 시절을 마치 추억처럼 회상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내 학창시절을 생각하는 것 같아요. 3~4개월 동안 강정일이라는 인물을 삶의 일부분으로 만들고, 달려갔는데 마음 속에 담은 걸 털어버려야 되니까요. 이제는 그걸 시작해야 해요. 얼굴을 보지 못한 펜팔 친구와 더 이상 교류할 수 없는 느낌이랄까요. 펜팔을 끊어야 한다는 공허함과 허무함이 있어요."
그렇다면 권율은 끊임없이 잘못된 길을 선택하는 강정일을 어떤 캐릭터로 바라보고 해석했을까. 그는 강정일을 '목표를 향해 질주하는 인물'로 여겼다.
"강정일은 자기 목표를 향해 가고 있는데 방해하는 세력이 나타나니까 그들과 맞서고, 그들을 없애려고 해요. 그런 과정들이 악행으로 바뀌는 것이 재밌었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을 먹고 누군가를 해하려 하는 악행과는 조금 다르거든요. 강정일이 한 행위들이 정당화될 수는 없지만요. 한 마디로 자신의 것을 지키고, 목표한 것을 이루기 위해 아무것도 보지 않고 달려간 인물이었다고 평가하고 싶어요."
"제가 강정일의 감정을 계속 쫓아가고, 매 장면마다 처절하게, 절실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실 작품을 할 때마다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면서 하거든요. 스스로 두렵기도, 무섭기도 했고요. 잘 해낼 수 있을지 늘 고통받으면서 연기했었어요."
고민이 깊은 그의 옆에서 이명호 PD는 끊임없이 힘을 불어넣어줬다. 이명호 PD는 영화 '사냥'에서 어느 순간 바뀌는 권율의 눈빛을 보고 캐스팅을 결심했다고.
"항상 저를 믿어주셨어요. 감정 톤을 잘 잡아주시고, 문자 메시지로 위로도 해주셨거든요. 처음에는 감정적인 연기들이 후련하고 좋았는데 나중에는 힘들어졌어요. 예민한 부분을 발달시키니까요. 혼자 음악 들으면서 촬영장 주변을 많이 걸었던 것 같네요."
극중에서는 매번 날을 세웠지만 현실에서는 이상윤과 대기실을 함께 쓰면서 친분을 쌓았다. 그보다 선배인 이보영과도 마찬가지였다.
"현실과 연기를 완전히 분별해서 대해주셨어요. 이상윤 선배와 이보영 선배에게 인간 권율은 돌봄을 많이 받았습니다. 맛있는 것도 많이 사주셨어요. 이상윤 선배는 도너츠도 많이 주셨어요. 먹는 거 주는 게 최고죠. 두 분과 편안하게 대화도 많이 하고, 서로 응원도 많이 했어요."
그는 '귓속말'의 강정일이라는 인물을 이렇게 비유했다.
"조각칼 모양이 다 다르잖아요. 인물 자체가 날이 매서웠어요. 조각칼 세트 안에 들어있는 여러 가지 모양의 조각칼 중 제가 가장 날카로운 조각칼을 담당한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