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조합된 상황에서, 배우는 배역을 만난다. 그는 대본 리딩 때부터 마치 원래 하완승인 사람을 데려온 것처럼 배역에 몰입했다. 또한 뛰어난 추리력으로 각종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최강희와 핑퐁게임하듯 티격대는 관계를 잘 살려냈다. 덕분에 시청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자연스러운 캐릭터를 만날 수 있었다.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배우 권상우의 라운드 인터뷰가 진행됐다. 그는 팔딱거릴 듯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를 만들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배우들과의 찰떡 호흡과 촬영장의 즐거운 분위기가 있었다고 전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종영 소감 부탁한다.
너무 즐거운 작업이었던 것 같다, 진짜. 이렇게 즐겁게 작업한 드라마가 있었나 할 정도로. 배우들과도 다 너무 즐거웠고 감독님도 A팀 B팀 두 분 다 너무 친절하시고, 저희는 어쨌든 다들 만족했던 드라마다. 다 마음에 들었다. 보통 드라마 책을 다 못 읽고 시작하지 않나. 그러면 뭔가 흐지부지되는 듯해서 스트레스 많이 받는 상황이 생기기도 하는데, 그런 고통이 별로 없었다. 저랑 최강희 씨랑 연기하면 감독님이 막 웃으셨다. 즐거워해주시니까 저희도 즐겁게 연기할 수 있었다.
▶ 최근작이었던 영화 '탐정: 더 비기닝'에서는 추리하는 역할이었다. 추리물이나 수사물이 본인 취향인가.
추리물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웃음) 'CSI' 이런 것도 잘 안 본다. 그런데 이번 작품은 그 안에서 캐릭터가 재밌어 보여서 하게 됐다. 추리하고 수사하는 건 그 다음이었다. 두 작품 캐릭터가 겹치는 것처럼 말하는 분들도 있지만 제 입장에선 전혀 겹치는 게 없다. 저는 왠지 부족한 점이 있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고 그런 역할에 더 자신이 있다. 보통 '아줌마'(* 극중 완승은 유부녀인 동네 탐정 유설옥을 아줌마라고 부른다)에게 의지하는 모습이 되게 인간적이어서 제가 연기하기도 편했다.
▶ 이번 하완승 역은 특히나 캐릭터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는 반응이 나온다.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사람들의 관심도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그래서 배우로서는 서운할 때가 있다. 딴 데서 더 잘한 것도 있는데, 하고. (잘했다고) 그렇게 봐주시면 고마운 건데, '연기를 잘한다' 이런 걸 떠나서 '제 색깔대로 연기하는구나' 하는 말만 들어도 앞으로는 칭찬으로 듣고 만족할 것 같다. 앞으로도 어떤 작품하든 간에 제 옷을 입은 것처럼 했으면 좋겠다. ('추리의 여왕'에서는) 강희 씨와 시너지 효과가 컸던 거 같다. 다른 배우랑 했으면 달랐을 수도 있다.
▶ 유설옥 역을 맡은 최강희와의 조합이 인상적이었다. 같이 연기하면서 호흡이 어땠나.
강희 씨는 되게 열심히 한다. 또 속물 근성이 전혀 없는 사람이다. 굉장히 현장을 즐긴다. 고생을 되게 많이 했는데도 인생을 되게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그걸 보고 참 괜찮은 배우구나, 같이 작품하는 게 축복이구나 생각했다. '강희 씨만 OK하면 시즌2 갑시다' 이런 얘기를 맨날 할 정도였다.
▶ 다른 배우들하고는 어땠는지.
김현숙 씨는 어, 진짜 씬 스틸러였다. 기본적으로 연기를 잘하시는 분이고 머리가 되게 좋아서 어떤 작품에서 만나든 즐거울 것 같다. 원근이는 머리가 너무 작아서 (웃음) 짜증났던 배우다. 제가 머리가 큰 건 아닌데 걔랑 있으면 조금… (웃음)
작가님이랑 얘기가 되고 있는 걸로 안다. 다시 만나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무튼 같은 감독님, 작가님, 배우 분들과 만난다면 저는 꼭 같이 했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3개월 동안 너무 즐거웠기 때문이다.
▶ 촬영현장이 너무 즐거웠다는 얘기를 했는데, 제작진과 함께한 소감은 어떤가.
김진우 감독님은 느낌이 되게 좋으시다. '이 정도면 무리없이 연기하겠다' 하는 부분에서도 별로인 점이 있으면 그걸 잘 잡아내는, 감이 예리한 분이다. B팀 감독님은 되게 젊으시다. 27살? 최연소 입사하신 여자 감독님인데 앵글감이 되게 좋으신 것 같다.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셨다. 두 분 다 굉장히 장점들이 많았던 감독님인 것 같다.
▶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아무래도 저는 최강희 씨랑 초반부터 만나서 호흡을 맞출 때, 그때부터 기분이 되게 좋았던 것 같다. 준비해 온 것 딱히 없이 완승 역으로 현장에서 저도 모르게 한 마디 하는데, (강희 씨가) 리액션을 되게 유연하게 잘 받더라. 어, 이게 되게 재밌네? 했다. 둘이 나오기만 하면 재밌었던 것 같고, (그런 느낌이) 우리 작품의 중심이었던 것 같다. 티격태격하는 깨알 재미랄까. 물론 대작도 필요하겠지만 이런 종류의 드라마도 있으면 좋지 않을까.
▶ 설옥과 완승은 쿵짝이 잘 맞는 공조 파트너였고 딱히 러브라인은 없었다. 일부 시청자들은 좀 아쉬워하기도 했다.
(로맨스 연기가) 더 가면 좀 이상할 거라고 봐서 사실 뭐 가볍게 가볍게 했다. 제가 들이대고 그런 씬은 옷 덮어주고 그런 정도다. 그런 걸 여자 분들이 되게 좋아하시지 않나. (웃음) 별 게 아닌데. 대본 보면서 '이런 씬들은 열광하겠는데?' 하기도 했다. 깨알 애드립이 많아서 즐거웠다. 우리가 섬에 범인을 잡으러 갔을 때 자전거 타는 씬도 분량이 없어서 늘린 장면이었는데 그걸 좋아해주시더라. 소소한 것도 알아채 주시네, 하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고현정 누나도 자전거 씬 뭐냐고 재밌다며 카톡 보내셨다. 그런 응원의 메시지가 왔을 때 희열을 느꼈다.
결혼식장에서 도망치는 장면을 찍다 다쳤다. 발목이 부러질 정도로 너무 심해서 물이 이만큼씩 차서 세 번이나 뺐다. 이것 때문에 드라마 못 찍을 줄 알고 스트레스를 좀 받았고, 말을 못할 정도로 심한 인후염으로 고생했다. 그때만 잠깐 스트레스를 받았고 아무 문제가 없었다. 제가 아파도 내색을 잘 안 하는 스타일이라 와이프, 어머니가 걱정을 많이 한다. 제가 '통증'의 남순이 같은 캐릭터다. (웃음) 잘 못 느끼고 잘 참는다.
▶ 평소에 시청자 분들 반응 많이 보시나. 가장 듣기 좋았던 말은.
잘 안 보려고 하는데, 보게 된다. 제가 드라마할 때는 7시에 일어나서 시청률 보게 되고, 영화할 때는 예매율도 보게 되더라. 근데 또 안 하면 안 보게 되고. (웃음) 마지막 종영할 때쯤 댓글 몇백 개가 다 '시즌2 갑시다' 이거였는데 그런 말 들으니 되게 기분이 좋더라.
▶ 드라마는 오랜만에 출연했다. '유혹' 이후로 3년 만이다.
굳이 일부러 안한 건 아니다. 작품은 중국에서 많이 했고, 1년 정도 하다 한국에 오면 제가 되게 오래 쉰 배우로 인식되더라. 그래서 올해는 영화 2편을 스트레이트로 찍으려고 한다. 조금만 안 보여도 (이쪽 판은) 되게 빠르게 돌아가니까. 작품에 대한 욕구도 강하고. 나이 먹을수록 현장에서 작품하는 게 제일 즐겁다.
▶ 그동안 중국 영화, 드라마에 다수 출연하며 꾸준히 활동했다. 그것 때문에 한국에서의 공백기가 길어져 배우로서는 아까운 시간이 아니었나 하는 반응도 있는데.
아니다. 장단점이 있을 뿐이다. 중국에서 저를 찾아준다는 게 되게 영광스럽다.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어서 그런가, 거기 시스템의 장점도 있고 현지에서 일하는 즐거움이 있다. 제가 좋아하는 감성의 드라마에 희로애락이 묻어있어서. 한국은 경쟁이 치열한데 (중국에서는) 그런 부담감 없이 연기할 수 있어서 좋았다. 한국에 오면 공백기에 대한 두려움도 있지만… (기자 : 앞으로도 중국 작품을 할 계획인가) 사드(보복 조치)만 풀리면 무진장 들어올 것 같다. (웃음) 원래도 계속 얘기하던 작품이 있었는데 사드 때문에… 찍어놓은 드라마도 편집, 더빙까지 다 돼 있는데 아직 방송을 기다리고 있다. (기자 : 새 정부에 바라시는 게 많겠다) 저 촬영할 때였는데도 밤새고 6시에 투표하고 나갔다. (웃음)
(노컷 인터뷰 ② 17년차 배우 권상우가 말하는 장점 "두루두루 80점은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