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는 '도둑 반입'된 사드 발사대 4기를 둘러싼 관련 내용을 모두 조사함으로써 그동안 강조해온 절차적 정당성을 둘러싼 논란을 정리한다는 방침이지만, 당장 야권은 최근 불거진 인사 논란을 덮으려는 국면전환용 '꼼수'라며 의심 어린 눈길을 보내고 있다.
◇ 文, 보고누락에 "충격적"…다시 화약고 된 '사드'
30일 청와대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사드 발사대 4기가 국내에 반입됐다는 사실을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뒤 "충격적"이라며, 이같은 사실을 다시 한민구 국방부 장관에게 전화로 재확인까지 했다.
문 대통령은 곧장 누구의 결정으로 언제, 어떤 계기로 사드 발사대 4기가 반입됐으며, 국민, 심지어 새 정부에도 보고되지 않은 경위를 면밀히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청와대측은 국방부의 보고누락을 묵과할 수 없는 국기문란으로 판단할 정도로 중대한 사안으로 보고 있다.
조사 주체는 공직기강과 법률문제를 담당하는 민정수석실과 국방·안보 업무의 최고 컨트롤타워인 국가안보실이다. 국방부 자체 감사나 감사원의 감사와는 차원이 다른 고강도의 조사를 실시하고, 법적 처벌까지도 염두에 뒀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국방부의 이같은 보고 누락이 전략적 환경영향평가를 회피해 사드 배치를 강행하려는 포석인지를 의심하고 있다.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문 대통령은 사드 발사대 4기의 반입 사실을 비공개한 이유가 사드 부지에 대한 전략적 환경영향평가를 회피하려 한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도 조사하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전략적 환경영향평가가) 상당히 기형적으로 이뤄졌다는 의혹도 있는데, 그 부분과 연관성이 없는지에 대해 확인해보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조치는 국회 비준 등 사드 배치의 절차적 정당성을 강조해 온 문 대통령의 기조와 궤를 같이한다. 사드 배치의 절차를 면밀히 들여다봄으로써 절차적 정당성 논란을 정리하고, 이를 토대로 신중하게 사드 배치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일관된 '사드 신중론'이었다.
이에 국방부는 사드 발사대의 추가 반입 사실을 보고했다고 반발했다. 정부 부처가 청와대의 발표 내용에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국방부는 지난 26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에 관련 내용을 보고한 데다, 사드 발사대 4기를 추가로 배치한 것은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공공연한 사실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또 국방부가 사드 발사대 4기를 추가로 반입한 사실을 인정하면, 한.미 협약을 위반하는 것이라 공개하지 않았다고도 해명했다. 한민구 국방장관은 한 매체와의 통화에서 "나중에 조사결과를 보라"며 청와대에 보고했다는 사실에 무게를 실었다.
이에 윤영찬 수석은 국방부의 발표 직후 다시 기자회견을 통해 "안보실장과 안보실 1.2차장에 각각 따로 확인한 결과, '전혀 들은 바 없다'는 의견이 일치됐다"며 "정책실장이 준 보고서 내용도 봤지만, 관련 내용이 없었다"고 했다.
인수위원회 역할을 하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역시 사드 발사대 4기 추가 반입에 대한 보고를 받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이수훈 외교안보분과 위원장은 "지난 25일 국방부가 업무보고를 통해 사드 배치와 관련 진행 경과와 배치 절차 등에 보고했지만, 그 보고자료에는 지난 3월 6일 사드체계 일부인 발사대 2기가 C17편으로 도착했고 4월 26일 일부 장비가 공여부지에 배치됐다는 내용만 있었다"고 밝혔다.
국정기획위는 31일 오후 국방부 업무보고를 추가로 받을 예정이다. 지난 25일 보고 때 보고가 누락된 경위 등을 추궁할 것으로 보인다.
◇ 야권 '의심 눈초리'…청문회 '송곳 검증'으로 이어지나
하지만 야권은 문 대통령의 지시가 이낙연 총리후보자를 비롯한 인사청문회 대상자들의 연이은 위장전입 등 도덕성 의혹을 덮으려는 '국면전환용 방패카드'라며 반발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김성원 대변인은 "뒤늦은 대통령의 진상파악 지시가 최근 불거진 청와대발 인사 참사 책임을 면피하고, 오늘 지명한 장관 후보자들을 무사 통과시키기 위한 '국면전환용 인사청문회 방패카드'가 아니길 바란다"고 했다.
이어 "이번 진상 조사 지시는 4대강 정책 감사 지시와 마찬가지로 전 정부 정책 뒤집기를 위한 명분 쌓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도 강조했다.
최근 인사청문회 대상자들의 도덕성 문제가 잇따라 터지면서 문 대통령 리더십이 정권 초기부터 흔들릴 기미를 보이자, 민감한 이슈인 사드 문제를 확대해 덮으려는 속셈이 아니냐는 의심이다.
실제로 사드 발사대 4기가 국내에 반입됐다는 주장은 지난달 말부터 일부 언론에서 보도되면서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졌던 점은 야권의 의심을 뒷받침한다.
국민의당 김유정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이미 적지 않은 언론에서 (발사대) 4기가 이미 반입됐다고 보도한 바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충격적'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격노한 것에 대해 이해되지 않는다는 반응도 있다"고 꼬집었다.
바른정당 오신환 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사드 1개 포대는 레이더 1기, 발사대 6개, 미사일 48기로 구성돼 있다"면서 "현재 총 6개의 발사대 중 2대의 발사대만 배치된 상황이니, 나머지 4개의 발사대를 배치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런데 문 대통령은 이것이 무슨 문제라도 되는 것처럼 진상조사를 지시하고, 청와대 수석을 통해 발표하도록 했다"며 진상조사 지시를 '언론플레이'로 규정했다.
결국 야권의 반발은 인사청문회에서 빡빡한 '송곳 검증'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이 후보시절 천명한 '5대 인사원칙'이 새 정부의 아킬레스건으로 돌아온 상황을 야권이 집요하게 파고들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또 지난 주말 청와대 정무라인을 총동원해 인사청문회에 대한 국회의 협조를 당부했던 노력도 다소 빛을 바란 측면도 있어, 문재인 정부의 초기 내각 구성에 진통이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