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립군' 여진구, "국정농단으로 정치적 영화될까 우려"

[노컷 인터뷰 ①] 여진구가 밝힌 '대립군'의 이모저모

영화 '대립군'에서 세자 광해 역을 맡은 배우 여진구. (사진=20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자못 점잖게 보이는 겉모습이지만 눈동자는 아직 소년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아역 시절, 누구보다 총명해 보였던 그는 이제 막 홀로 온전히 서기 위한 날갯짓을 시작했다. 청량한 웃음 소리 너머에는 끊임없는 호기심이 솟아나왔다. 배우 여진구의 이야기다.

그는 지금 인생의 가장 짙푸른 시절을 만났다. 아직 경험할 것도, 꿈꿀 것도 많은 청춘의 싱그러움, 그 자체다. 영화 '대립군'에서 세자 광해의 성장기를 그린 여진구는 스스로도 몇 계단 성장해냈다. 연기는 맛이 깊어졌고, 좀 더 묵직해졌다.

미디어 속에 존재하는 '오빠' 여진구도 분명 어딘가에는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먹는 이야기, 학교 이야기를 할 때면 딱 그 나이 또래 대학생이었다. '무대 연기'를 못한다며 멋쩍게 웃거나 신나는 얼굴로 맛집 이야기를 하는 순간들이 전부 그랬다.

다음은 여진구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지금까지 세자인 광해를 집중적으로 다룬 작품이 거의 없다. 보통 이런 역사적 인물은 자주 극화되기 때문에 참고할 자료가 많은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겠다. 어떻게 스스로 캐릭터를 설정해나갔나.

- 문헌도 처음에는 찾아봤는데 자세히 서술되어 있지는 않고 내용이 비슷했다. 감독님도 별로 참고할 만한 작품을 추천해주기 어렵다고 하셔서 최대한 선배님들, 감독님과 작품 들어가기 전부터 많이 만났다. 오히려 뭔가 참고한다면 방해가 될 것 같았고,
그렇게 연습과 드라이리허설을 거치면서 캐릭터를 만들어나갔다.

▶ 그렇다면 전쟁통에 원치 않게 '왕'인 아버지 대신 '지도자'가 되어야 했던 세자 광해는 어떤 느낌이었나? 본인이 그를 어떤 인물로 받아들이고, 또 보여주고 싶었는지 궁금하다.

- 초반에는 세자임에도 세자답지 않은, 찌질한 그런 인물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뒤로 갈수록 캐릭터에 믿음이 쌓이고, 사람을 아끼는 자신의 모습을 주변 사람들이 발견을 해주면서 나아가길 바랐다. 용포가 어울리지 않고, 당장이라도 용포를 벗고 싶은 그런 세자. 예전에는 연기를 하면서 자주 폭발하는 감정을 표현했던 것 같다. 그게
전달이 확실하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광해가 가진 내면의 변화, 그 결을 보여주고 싶었다.

▶ 그래서인지 연기가 성숙해졌다. 훨씬 감정 층위가 다양하고, '광해'라는 인간 내면에 깊숙이 들어간 것 같다. 연기에 변화가 일어났으니 방법적으로 달랐던 지점이 있었을 것 같은데.

- 이번에는 현장의 즉흥적인 감정을 살려봐야겠다고 생각했었다. 현장에 가기 전에 강약 포인트를 정리해서 연기를 시도하기도 했는데 너무 광해와는 어울리지 않는 연기가 나오더라. 일부러 연습한 것을 별로 신경쓰지 않고 연기를 했다. 그랬더니 준비를 많이 해갔을 때보다 새로운 감정들이 풍부하게 밀려왔다. 무엇보다 선배님들에게 의지를 많이 하면서 촬영을 했다. 내가 잘하고, 자주 해왔던 연기들을 떠나 색다른 시도를 해본 것 같아서 한 동안은 계속 긴장 상태일 것 같다.


▶ 사실 광해가 성장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는 대립군 수장 토우를 만나면서부터다. 토우 역의 배우 이정재와 호흡을 자주 맞췄을텐데 소감이 궁금하다.

- 정말 그 눈빛을 닮아가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배님 나름대로 도전하는 모습들에 나도 더 의욕이 생기더라. 강인한 겉모습과는 다르게, 광해처럼 연약하면서도 흔들리는 눈빛이 느껴졌다. 이중적이면서도 여러 가지 감정을 섞으면서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만드는 능력을 빼앗아 오고 싶었다. (웃음) 감독님과 그걸 목표로 잡고, 세세한 연기를 해보자고 이야기했었다.

영화 '대립군'에서 세자 광해 역을 맡은 배우 여진구. (사진=20세기폭스코리아 제공)
▶ 영화 거의 대부분이 광해 무리를 쫓는 세력을 피하기 위해 등산하는 장면이다. 거기까지 올라가는 것도 물론 힘들었을테지만 본인이 느낀 가장 큰 고충은 무엇이었나?

- 화장실이 제일 문제였다. 화장실이 걸어서 1~2시간 걸리는 곳에 있으니까 일부러 잘 먹거나 마시지를 않았다. 영화를 보면 시간이 지날수록 광해와 대립군들이 산행으로 고생하는 게 보이는데 그런 장면을 위해 굳이 다이어트를 할 필요도 없었다. (웃음)

▶ 산행이야 고생스러워도 멋진 자연 풍광 속에서 술이 빠질 수는 없었을 것 같다. 아직 성인이 된 지 얼마 안됐는데 이번 현장에서 자신의 주량은 확인했나?

이정재 선배님은 술을 잘 드신다. 다른 선배님들도 이런 풍광 속에서 안 마시면 섭섭하다고 하셔서 같이 마셨다. 내가 생각보다 술을 못마셔서 작년까지만해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마시다보니 매력이 느껴지더라. 힘들면 힘든대로, 좋으면 좋은대로 생각이 난다. 이만하면 충분히 주량이 늘 것도 같은데 그렇지도 않다.

▶ 촬영이 없는 날도 서울에 가지 않고 계속 거기에 머물러 있었다고 들었다. 보통 집으로 쉬러 갈 것 같은데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나?

- 그렇게 국내 이곳 저곳을 다닌 게 처음이었다. 몇 시간 걸려서 왔는데 바로 또 가는
게 아쉽더라. 동네 분위기가 궁금하기도 하고 그래서 특산품 구경하고 맛집도 탐방했다.

▶ 사실 '대립군'을 보면서 어지러웠던 국정농단 시국을 떠올리는 이들도 많다. 이런 반응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 지금은 또 그 당시와는 다르게 희망적으로 바뀌었다. 처음에 전혀 정치적인 의도가 담기지 않은 영화였는데 촬영 도중에 그런 사건들이 있어서 난리가 났다. 현장에서는 진짜 심각했다. 이런 뜻이 아니었는데 개봉하면 너무 정치적으로만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 이런 걱정을 많이 했다. 다행히 지금 많은 분들이 영화를 보면서 더 기쁘게, 밝게 봐주실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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