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약의 기본 정신을 훼손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며 야당과 국민에게 양해를 구한 문 대통령의 이같은 입장은 야당의 공세를 사실상 정면돌파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 주재 수석보좌관회의 모두발언에서 "공약을 구체화하는 인수위 과정이 있었다면 그런 점을 감안한 구체적 인사 기준을 사전에 마련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5대 비리자의 고위 공직 임용 배제 원칙은 지나치게 이상적인 공약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도 "하지만 이는 그야말로 원칙이고 실제 적용에 있어서는 구체적인 기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국회와 인수위격인 국정기획위, 청와대가 새로운 원칙을 마련해 줄 것을 요청했다.
공약 원칙을 지키기 위한 방안을 국회와 국정기획위가 함께 논의하자는 '협치'의 제안으로 보이지만, 속내는 국정 주도권을 뺏기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을 설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민 눈높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무작정 저자세를 보이는 것은 향후 적폐청산 등의 개혁과제 수행에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는 판단으로 보인다.
앞서 청와대는 전병헌 정무수석 등 정무라인을 총가동해 야당 청문위원과 지도부를 잇따라 만났지만 뾰족한 성과는 내지 못했다.
대통령이 직접 해명에 나서긴 했지만 사과 대신에 양해를 요구한 점도 야당의 '대통령 길들이기'에 호락호락 당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문 대통령은 이날 회의 모두발언에서 이낙연 총리 후보자 국회 인준이 늦어지는 데 대해서는 국회의 '정치화'를 원인으로 꼬집으며 오히려 역공을 취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당선 첫 날 곧바로 총리 후보자를 지명한 것은 국정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목적과, 인사 탕평을 바라는 국민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그런데 총리 인준이 늦어지고 정치화되면서 한시라도 빨리 후보자를 지명하고자 했던 저의 노력이 허탈한 일이 됐다"고 지적했다.
또 "새 정부가 빨리 진용을 갖추어서 본격적으로 가동돼 주기를 바라는 국민들께도 큰 걱정을 끼치고 있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스스로 밝힌 5대 인사검증 기준 공약이 자기 발목을 잡은 다소 곤궁한 상황에서도 나름 정면돌파를 선택한 배경에는 아직 국정운영동력이 충분하다는 판단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리얼미터가 CBS 의뢰로 지난 26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 남녀 51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5대 비리 관련 고위 공직 인사를 임명해야 한다"는 의견이 59.8%로 "배제해야 한다"(31.1%)는 여론을 압도했다.
지난 22~26일 유권자 2천52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도 전주 대비 2.5% 포인트 상승한 84.1%를 기록했다. 부정 평가는 10%에 그쳤다.
이와 관련, 자유한국당은 이낙연 후보자 청문보고서 채택 반대를 당론으로 정하며 각을 세우고 나서 정권 초반 일대 힘겨루기가 시작된 양상이다.
다만 국민의당은 이날 총리 인준에 대한 대승적 협조를 당론으로 결정함으로써 야당 내부에서도 셈법이 제각각 갈리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