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글리츠는 1퍼센트를 위한 자본주의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으며, 그것이 얼마나 불합리하고 거짓으로 가득 찬 자본주의인지, 모두를 위한 자본주의로 되돌리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논의한다.
스티글리츠는 전작 '불평등의 대가'에서 했던 논의의 핵심을 이 책에서 거듭 재확인하고 확장한다. 그는 통화 정책보다 재정 정책이, 긴축 정책보다 적극적인 재정 지출 정책이, 공급 중심 정책보다 수요 중심 정책이, 부유층을 보호하는 정책보다 중간 소득층과 저소득층의 소득 증대를 돕는 정책이 경제를 성장시키고 모두에게 이로운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역설한다. 중간 소득층과 저소득층의 소득 대비 지출 비율이 부유층의 소득 대비 지출 비율보다 훨씬 높기 때문에 중간 소득층과 저소득층의 소득이 증대되면 수요가 늘어나고, 이는 경기 침체의 해소와 경제 성장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상황은 여전히 심각하다. 경제 불평등이 정치 불평등을 낳고, 정치 불평등이 다시 경제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는 악순환은 멈추지 않고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사람들의 환멸감도 깊다. 오늘날의 거대한 불평등을 빚어낸 주요 원천 가운데 하나는 정치이다. 그러나 이로부터 벗어날 기회 역시 정치에 있다.
스티글리츠는, 극소수의 부자들이 이익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하는 걸 조장하고 강화하는 짝퉁 자본주의에서 벗어나 다른 대안을 선택할 가능성이 여전히 우리에게 열려 있다고 말한다. 오늘날 사회에 거대한 균열을 가져온 불평등은 불공평한 정책들과 잘못된 우선순위가 누적되어 나타난 결과물일 뿐, 절대 경제의 근본적인 법칙에 따른 결과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정치가 중요하다.
불평등에는 소득과 부의 불평등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건강 측면에서도, 교육 접근성 측면에서도, 정치적 자유 측면에서도, 신변 안전의 측면에서도 불평등이 있다. 여성 차별과 아동기 박탈의 문제도 있다. 그러나 부와 소득의 불평등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기회의 불평등 문제이다. 불평등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아동기 박탈과 교육 및 의료의 불평등은 결국 기회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소득의 불평등이 심각한 나라들에서는 기회의 불평등 역시 심각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스티글리츠는 이렇게 한탄한다. "오늘날의 교육 시스템은 돈이 있어야만 참여할 수 있는 승자 독식의 게임, 최상층은 확고한 입지를 제공받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거액의 채무를 끌어안은 채 성공이 보장되지 않은 모험에 뛰어들어야 하는 게임이 되고 말았다."
스티글리츠가 불평등의 심화에 기여한다고 보는 또 하나의 중대한 요인은 불공정한 세금 제도다. 스티글리츠는 투기꾼들에게 부과되는 세율이 생계를 위해 성실히 일하는 사람들의 세율보다 훨씬 낮은 현실을 지적하며, 지금 미국의 세금 제도는 99퍼센트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다고 말한다. 천문학적인 부를 축적하고 있는 상위 1퍼센트의 실효 세율은 눈에 띄게 감소하고 있다. 미국의 최고 한계 세율은 2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94퍼센트로 정점을 찍은 다음 1960년대와 1970대에 70퍼센트를 유지하다가, 현재는 39.6퍼센트에 불과한데, 실효 세율은 이보다도 훨씬 낮은 수준인 20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수많은 특혜 조항들 때문이다. 더하여 스티글리츠는 부자들에게 막대한 이득을 안기는 자본 이득 세율이 왜 20퍼센트밖에 안 되는 건 형평성에 맞지 않다고 말한다.
이처럼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는 세금 제도는 경제 구조 또한 왜곡한다. 투기 거래에 대한 세금이 낮으면 투기 거래가 더 늘어날 수밖에 없고, 국가의 미래를 이끌 뛰어난 인재들이 실물 분야가 아니라 투기판이 된 금융계로 몰릴 것이기 때문이다. 지대 추구 행위에 막대한 이익을 보장해 주는 경제가 정상적으로 굴러갈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부시가 추진한 부자 감세 조치는 경기를 부양하기보다는 부자들의 지대 추구 행위를 조장했고, 지대 추구 사업이 번창하면서 오히려 경제 성장률은 떨어지고 불평등은 심화되었다. 교육과 기간 시설, 테크놀로지에 대한 투자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세금 제도가 이처럼 왜곡될 때, 경제와 불평등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더하여 국민의 연대감과 결속력 또한 현저히 낮아질 수밖에 없다. 정부가 대다수 국민의 이익을 돌보지 않는다면, 국민들이 그러한 정부를 불신하고 민주주의에 환멸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스티글리츠의 말대로, 불평등이 고착화된 국가에서 경제와 정치는 악순환의 구조에 갇히고 만다.
책 속으로
우리 앞에는 더 많은 과제가 놓여 있다. 우리가 당장 해야 할 일은 간단하다. 지금껏 해온 행동을 멈추고 정반대로 행동해야 한다. 소득을 넘어서는 지출을 하지 않고, 부유층에 대한 세금을 인상하고, 기업 지원 정책을 축소하고, 저소득층을 지원하는 안전망을 강화하고, 교육과 과학 기술, 기간 시설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는 것이다. - 87면
알렉시 드 토크빌은 한때 미국 사회의 독특한 특징을 창출한 주요 원인으로 <개인적 이익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꼽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뒤의 두 단어다. 사람은 누구나 좁은 시야에서 개인적 이익을 추구한다. 당장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손에 넣기를 바란다. 개인적 이익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이와는 전혀 다르다. 이것은 다른 모든 사람들의 개인적 이익, 즉 공공복지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자신의 궁극적인 복지를 달성할 수 있는 전제 조건임을 인정하는 것을 뜻한다. 토크빌은 이런 관점이 숭고하다거나 이상적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정반대의 의미로 말했다. 그것이 미국적 실용주의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약삭빠른 미국인들은 다른 사람을 보살피는 행위가 비단 영혼을 살찌우는 데 그치지 않고 사업을 살찌운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이해했다. -160면
저소득층으로부터 부유층으로 돈이 이동하면 소비는 줄어든다. 상대적으로 소득이 높은 사람들은 소득이 낮은 사람들보다 소득 대비 소비 지출 비율이 낮기 때문이다. - 163∼164면
또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정책적 우선순위의 문제이기도 하다. 예컨대, 스칸디나비아 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전 국민 무상 의료와 거의 무상에 가까운 대학 교육과 양질의 대중교통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동시에> 표준적인 경제 성과(1인당 소득과 경제 성장률) 면에서 엇비슷하거나 훨씬 나은 성과를 내고 있다. 미국보다 훨씬 가난한 나라들(아프리카 대륙 동쪽 인도양에 있는 섬나라 모리셔스도 그중 하나다)조차 어려운 상황에서도 무상 대학 교육과 훨씬 건전한 의료 접근권을 보장하고 있다. 국가는 선택을 통해 우선순위를 결정해야 한다. -178∼179면.
더 깊이 파고들면, 소득 재분배와 관련한 여러 가지 문제들은 우리가 얼마를 지출하느냐가 아니라 누구를 위해서 지출을 하느냐와 관련되어 있다. -179면
경제 분야의 중요한 결정권자들이 이처럼 상위 1퍼센트와 금융업자들에게 <인지 포획>되어, 경제 위기를 초래한 주역에게는 수천억 달러를 지원하고 노동자들과 주택 소유자들은 곤경 속에 방치하는 게 유일한 대안이라고 생각하는 시스템, 이것이야말로 불공정한 시스템이다. -223면.
금융계의 구제 금융 상환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사기꾼이 자랑할 만한 사기 게임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정부는 연준의 지원 속에서 거의 제로에 가까운 이자율로 은행에 돈을 빌려준다. 은행은 다시 2∼3퍼센트의 이자율로 정부에 그 돈을 빌려준다. 여기서 생기는 <수익>이 정부의 <투자>에 대한 상환금으로 정부에게 돌아간다. 한편, 은행 임원들은 자신이 <벌어들인> 엄청난 수익에 대한 보상으로 거액의 보너스를 받아 챙긴다. 이건 열두 살짜리도 할 수 있을 만큼 쉬운 일이다. 과연 이게 자본주의인가? 225-226면
지금 우리 정치와 경제는 악순환의 족쇄에 갇혀 있다. 경제 불평등은 정치 불평등을 낳고, 정치 불평등은 규칙 바꿔 쓰기를 낳고, 이것이 다시 경제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는 과정이 끝없이 이어진다. 그렇다면 그 결과는 빤하지 않은가. 우리 민주주의에 대한 환멸감이 점점 더 커질 수밖에. -226면
기회 균등을 촉진하기 위한 정책이 주안점을 두어야 할 대상은 영유아들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미래의 어머니들이 환경적 위해 요소에 노출되는 것을 막고 적절한 산전 의료 관리를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다음으로 유아 교육에 대한 대대적인 삭감 정책을 철회해야 한다. -243면
조지프 스티글리츠 지음 | 이순희 옮김 | 열린책들 | 576쪽 | 2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