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과 게이머는 어떻게 '여성혐오'하고 있을까

[미디어씨, 여성혐오 없이는 뭘 못해요? ②] 게임 편

(사진='프란' 캡처)
예쁘고 마르고 젊은 여성에게는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고, '예쁨'의 기준에서 벗어났다 판단하면 웃음거리로 만드는 예능. 여성을 끝없이 대상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너무 멋진 나'의 소유물 정도로 바라보는 노래가사, 여성 유저임이 드러나면 공격받거나 성희롱을 당하는 게임판… 한국여성민우회가 미디어에서 마주하는 '여성혐오'에 제동을 걸고 바꿔나가기 위한 연속특강을 마련했다. 18일부터 4주 동안 진행될 '미디어씨, 여성혐오 없이는 뭘 못해요?' 특강을 옮긴다. 매주 토요일 연재될 예정이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여혐' 가사 나와도 노래만 '좋으면' 괜찮은 걸까
② 게임과 게이머는 어떻게 '여성혐오'하고 있을까
<계속>


최근 'PRAN'의 한 동영상이 화제가 됐다. 블리자드의 인기 게임 '오버워치'를 하다가 여성 게이머임이 밝혀졌을 때 게임 도중 얼마나 많은 성희롱과 폭언을 당하는지 경험을 털어놓는 내용이었다. 여자가 팀에 끼면 진다며 일부러 불성실하게 플레이하거나, 기운 내게 신음 소리를 내 달라고 부탁하는 등 모욕을 줘 놓고 게임을 중단하고 나가면 막상 '여성이라는 이유로 친구신청을 하는. 여성 게이머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겪고 있는 웃지 못할 상황이 잘 드러나 있었다.

25일 '미디어씨, 여성혐오 없이는 뭘 못해요?' 2강 '게임 편'을 맡은 전국디바협회 협회장 감나무는 수많은 이미지와 동영상을 통해 게임과 게이머가 마주하는 '여성혐오'를 보여줬다. 그는 자료조사 차 '벗을수록 강해진다', '남녀 갑옷' 등을 검색하며 만난 이미지들을 보며 "너무 고통스러웠다"고 밝히기도 했다.

감나무가 협회장을 맡고 있는 전국디바협회는 지난해 생긴 페미니스트 게이머 모임이다. '디바'는 '오버워치'라는 게임에 등장하는 한국인 천재 여성 프로게이머 캐릭터를 말한다. 2070년 기준으로 19살인 '디바'(한국명 송하나)가 여성혐오, 성차별 없는 사회에서 자신의 능력을 맘껏 펼칠 수 있게 '현재'를 살고 있는 게이머들은 다양한 활동을 해 나가고 있다.

◇ 게임은 어떻게 '여성혐오'하고 있나

감나무는 우선 시중에서 볼 수 있는 게임에서 흔히 이루어지는 '여혐'적 요소를 소개했다. 일단 '오버워치'는 캐릭터 성별에 따라 외양의 차이가 컸다.

그는 남성 캐릭터가 방어력을 위해 얼굴을 대부분 가리고 있는 데 비해, 여성 캐릭터는 아름다운 얼굴이 그대로 나와 있고 말랐는지 체구가 큰지 구분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아주 센 캐릭터라고 해도 미형의 얼굴이다 보니까 결국 '남성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정도의 강함'으로 느껴진다"고 덧붙였다.

대단한 능력을 지닌 천재 프로그래머인 '디바'는 게임 속에서 트와이스의 '티티' 춤을 추거나 한껏 애교있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거는 군인이자 프로그래머인 캐릭터의 설정을 삭제한 채 아이돌처럼 춤추는 모습으로만 소비한다는 설명이다.

게임 오버워치의 영웅 캐릭터 (사진='오버워치' 홈페이지 캡처)
실시간 공성전 액션 게임 '사이퍼즈'에서는 샬럿 엘리, 마를렌 등 10살 전후의 어린이들에게 토끼 머리띠와 수영복 같은 이벤트 의상을 입힌다. 스마트폰 전략 카드게임 '언리쉬드'에서는 가슴이 보일락말락 할 정도로 노출 있는 옷을 입은 캐릭터나, 음부를 리본이나 초콜릿으로 간신히 가린 캐릭터가 나온다.

감나무는 "이걸 보면서 여성혐오나 성 상품화가 어디까지 진행되는지 알았다. 저렇게 젖꼭지나 음부를 가려놓은 것도 인간으로서 존중하는 게 아니라, 저게 더 야하다고 생각해서 저렇게 소비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액션 롤플레잉 게임 '클로저스'는 레비아라는 캐릭터를 소개할 때 그가 지닌 비극적인 서사를 숨긴 채, 고개를 내리깐 레비아가 "당신만을 위한 도구가 되겠어요", "복종할게요"라는 문구와 함께 있는 장면으로 홍보를 했다.

감나무는 "게임 광고에 정보값이 전혀 없다. 캐릭터의 표정과 홍보 문구가 합쳐졌을 때 뭘 노리는 것인지 너무나 명백하다. 순종적인 여성으로만 소비하려는 저열한 광고"라고 평가했다.

'마비노기 영웅전'에서는 델리아와 린이라는 왕궁 공주 출신 캐릭터 둘이 나오는데 이들 역시 철저히 '성적 대상화'된다. 자신의 군대를 찾기 위해 강해지고자 여행을 시작했다거나, 반대를 무릅쓰고 기사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서사보다 '옷을 벗을수록 공격력이 강해'지고, '봉춤을 추는' 선정적인 장면이 앞세워지기 때문이다.

RPG 게임 '데스티니 차일드'는 라이브 2D라는 신기술을 적용했다면서도 이를 여성 캐릭터의 가슴 흔들림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데 썼다.

◇ 게이머 사이에서 벌어지는 '여혐'

25일 오후 7시 30분, 한국여성민우회의 기획특강 '미디어씨, 여성혐오 없이는 뭘 못해요?' 2강 '게임 편'이 열렸다. 전국디바협회 감나무 협회장이 강의하고 있는 모습 (사진=한국여성민우회 제공)
여성혐오는 게이머 사이에서도 벌어진다. 지난해 게임 '클로저스'의 '티나' 역을 맡았던 김자연 성우는 메갈리아4 텀블벅 프로젝트로 진행된 'GIRLS DO NOT NEED A PRINCE' 티셔츠를 인증했다는 이유로 목소리가 지워졌다. 사실상의 해고를 당한 것이다.

그러나 게임 진행을 하면서 여성 캐릭터의 속옷을 훔쳐보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진정일 성우는 일부에서 문제제기가 나왔지만 사과문 등의 어떤 후속조치도 없었다.

또한 유튜브에서는 여성 캐릭터를 향한 노골적인 성희롱 영상을 어렵지 않게 검색할 수 있다. 게임 도중 닉네임이 여성으로 추정되면 공격받는 건 다반사다.

감나무는 "여성 게이머들 중 아이디를 바꾼 분들이 많다. 여성성과 전혀 관련없는 이름을 쓰거나 상대를 형이라고 호칭한다. 더 우악스럽게 굴기도 하고. 하지만 이렇게 되면 게임 내의 '여성 게이머들'을 지우게 된다는 점에서 문제"라고 말했다.

감나무는 "왜 지금이 2017년인데도 이런 경향이 더 심해질까"라며 "저는 결정권자들의 게으름 때문이라고 본다. 게임업계만의 문제는 아니고 모든 업계의 고질적 문제다. 아래에서 조금만 새로운 시도를 하려 해도 위에서 '야, 그게 뭐야. 하던대로 해. 더 벗겨, 이래서 팔리겠어?' 하면 그만이다"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게임 속 여성 캐릭터를) 남성의 삽입이 가능한, 남성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고깃덩이가 아니라 인간으로 표현해야 한다. 다양한 체형과 외모, 피부색을 가진 인물로"라며 "여성이 연대해 (게임 내 여성혐오 문제를) 공동의 이슈로 삼고, 네트워킹을 시작해 법안을 제정하자"는 게임물관리위원회 여명숙 위원장의 제안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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