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정조 책문, 새로운 국가를 묻다'는 조선의 개혁군주 정조가 신하와 유생들에게 나라의 정책 등에 관해 질문한 '책문(策問)'을 지금의 시대적 상황에 맞게 풀이한 것이다.
이 책은 한 나라의 지도자가 앞으로 함께 정치를 펼쳐 나갈 인사들과 함께 인재등용, 문예부흥, 민생과 복지, 균형발전 등 모든 국정 현안을 논의하고자 했던 기록이다. 여기에는 정조가 꿈꾸던 이상적인 국가의 모습과 최고지도자로서의 마음가짐이 담겨 있다. 대책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지도자의 관점과 생각은 분야를 가리지 않고 해박한 지식과 열정을 바탕으로 항상 신하들에게 적극적인 정치 참여를 독려했던 최고지도자로서의 정조를 재발견하도록 한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처럼 훌륭한 인재를 선발하여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일은 국가 운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 사회는 양반만이 과거를 통해 중앙관직에 진출할 수 있고, 노론과 소론의 당파에 따른 당쟁이 극심한 시기였다. 하지만 정조는 시대에 꼭 필요한 인재를 갈망하여 적극적인 탕평책을 실시하였고, 당파에 구애받지 않고 인물과 실력 중심의 관리를 등용하는 대통합정책을 펼쳐 경제적·사회문화적 부흥기를 이끌었다.
각 책문은 환곡의 병폐와 관리의 폭정을 막고 나라의 균형발전을 꾀하던 정조의 애민정신은 물론이고, 국가의 자원이 낭비되고 있지는 않은지, 노인을 공경하고 절기를 따르는 풍습이 바른지 등에 대해서도 살피던 지도자의 세심한 마음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멀리 떨어진 함경도와 제주도 등지의 지방 특성에 맞춘 정책에 관해 자문을 요청하고, 문화와 함께 군사·안보적으로도 긴장을 늦추지 않는 대목은 먼 미래를 내다보는 지도자의 안목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또한 경전 공부와 시와 음악 등의 예술, 문체의 사용과 천문 등의 과학에 관한 책문에선 깊이 있는 지식과 통찰력을 갖춘 학자군주로서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정치政治에서 ‘백성을 다스린다.’는 의미의 ‘정政’은 ‘올바르게 다루거나 바르게 만든다.’는 ‘정正’으로 인식된다. 따라서 정치는 단순하게 막강한 권력을 소유한 지배자가 힘없는 백성을 상대로 군림하는 양식이라기보다는, 세상의 ‘부정不正’을 바로 잡으려는 인간의 행위로 귀결된다. 유교를 삶의 핵심으로 받아들인 조선시대도 마찬가지였다. 정조의 경우, 조선 후기 국가 최고지도자로서 제왕의 위치에 있었지만, 지배자로서 피지배자인 백성 위에 군림하려는 생각을 내세우기보다 백성의 삶을 올바르게 이끌어 가려는 통치자로서 리더십 확보를 위해 진지하게 고민했다." -「올바른 정치를 향한 소망」 (p.15)
책 속으로
나는 최고지도자로서 이 나라의 운명을 새롭게 개척해 나가야 할 무거운 책임을 받았다. 이제부터는 우주자연과 인간,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진실로 호응하느냐 호응하지 않느냐.’라는 소통의 문제가 정치의 핵심으로 떠오르는 듯하다. 아니,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사람 사이에 어떻게 소통하느냐에 따라 올바른 길이 열리느냐 닫히느냐가 달라진다. (p.21)
단비가 내려 온갖 화초가 자라나고 봄바람이 불어와 만물이 번창한다면 언제인들 삼월삼질이 아니겠는 가! 그러나 시절이 봄날처럼 좋고 풍성해야 백성들이 좋은 날만큼 보답할 수 있고, 정치가 평화롭고 풍속이 밝아야 사람들이 좋은 시절을 그만큼 즐길 수 있다. (p.52)
옛날부터 현명한 군주와 능력 있는 신하가 시대마다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문무를 겸하여, 이를 제대로 사용한 군주나 신하는 많지 않았다. 문식과 무략의 길이 물과 불처럼 달라 협동할 수 없는 것인 가? 아니면 인재가 옛날 같지 않고 기량이 제한되어, 한쪽에 능숙하면 다른 쪽에 능숙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러한 것인가? (…) 재상과 관료들은 탁상공론이나 하면서 장부나 문서만으로 녹봉을 받고, 장수들은 군사 훈련을 하잘것없는 것으로 여긴다. 이에 문식과 무략이 땅에 떨어지고 그 길을 잃어버렸다고 탄식 한 지 하루 이틀이 아니다. 독수리와 같은 변방의 적들이 다시 침략해 오거나 고래와 같은 왜구들이 사납게 날뛰며 노략질하기를 임진란이나 병자란처럼 한다면, 지혜로운 지도자가 있다 하더라도 어떤 계책을 세워야 할지 모르리라. 아, 내 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치니, 갑갑하기만 하다. 어떻게 하면 국가를 다스릴 때 문식과 무략을 함께 사용할 수 있을까? 인재를 등용할 때 문무를 겸비하 고, 문식과 무략의 길을 합하여 이 나라를 아름답게 지속할 수 있을 것인가? (p.83~84)
“국가를 잘 다스려 태평성대를 이룩하는 일과 사람이 장생불사長生不死하는 것은 다른 방법이 없다. 삼가는 것뿐이다.” 내 일찍이 이 말을 심각하게 음미한 적이 있다. 지금 내가 그대들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 또한 삼가는 방법뿐이다. 어떻게 하면 윤리도덕을 잘 지켜 삼가고 지나치게 용렬한 태도에 이르지 않겠는가? 학문을 열심히 하여 삼가고 지나치게 거친 모습에 이르지 않겠는가? 언론을 삼가고 지나치게 아첨하는 버릇에 이르지 않겠는가? 염치를 신중히 삼가고 지나치게 속이는 지경에 이르지 않겠는가? 중앙의 관리들이 점차 삼가는 태도로 공직자의 분위기를 일신하여 폐단을 고치고 올바른 자세로 돌아가기를 소망한다! (p.152~153)
오늘 이 자리가 시대의 여러 문제에 대해 고심하는 자리임을 안다면, 어찌 망설이고 얼버무릴 수 있겠는가! 나의 간절한 부탁을 저버리겠는가! 그대들이 신중하게 고민하여 발언했는데 그에 따르지 않거나, 훌륭한 정책을 제시했는데 그것을 쓰지 않는다면 그 허물이 나 한 사람에게 있다. 하지만 내가 자문을 구해도 그대들이 말하지 않거나 요구해도 응하지 않는다면 허물이 그대들에게 있다! 그대들은 기존의 규정과 형식에 너무 구애받지 말고, 거리낌 없이 이 시대에 필요한 사고와 정책을 논해 보시라. (p.185)
한 사람의 마음을 근원으로 만사의 이치를 깨닫는다. 그 근본은 자신의 몸을 닦는 데 있고 그 기준은 가문을 다스리는 데 있으며 그 실제적 효용은 이 세상을 다스리는 데서 최고조에 이른다. 때문에 『대학』이 ‘전체적으로 크게 쓰이는 경전’으로 평가받는다. 전통적으로 성현들은 『대학』을 교육의 근거로 삼았고, 군주는 『대학』을 바탕으로 나라를 다스렸으며, 학자들은 『대학』을 통해 인간으로서 해야 할 사업이 무엇인지 배웠다. (p295)
신창호 지음 | 판미동 | 440쪽 | 16,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