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바로 위 작품)은 멍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은 노인이 벽에 걸린 괘종시계를 바라보고 있다. 그 괘종시계는 몇 시를 가리키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바늘이 흐릿하다. 그 노인 곁에는 소년이 등을 돌린 채 벽면 반대편 허공을 을 바라보고 있다. 노인의 시간과 소년의 시간. 노인은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는 시계를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지만,그 시계는 더디 가는지, 멈처 선 건지 알 수 없다. 하릴 없이 물리적 시간만 흘려 보내는 지루함과 권태, 절망을 노인의 표정에서 읽게 된다. 소년은 어떠한가. 노인과 괘종시계로부터 등을 돌리고 있다는 점에서 목표도 지향도 없는 노인의 시간과는 다른 시간관이 소년에게서 드러난다. 그런데 소년이 바라보고 있는 실내의 풍경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그 공간적 거리 또한 극히 짧다. 막히지 않았지만 답답한 시야는 소년의 앞길이 막혀있음을 암시한다. 후미에 드러난 윗층으로 향하는 계단은 출구가 있음을 내비친 것일까.
<버리기 3>(바로 아래 작품)는 담배를 입에 물고 의자에 앉아 있는 여성의 자태가 화면의 절반을 차지하고 나머지 화면에는 거센 화염에 휩싸인 그림 액자와 방바닥에서 쓰러져 자고 있는 여성이 보인다. 그 쓰러진 여성을 향해서는 불길인지, 물살인지 쏟아져 들어오는 것 같다.이런 위기 상황에서도 여성은 시선을 고정한 채 냉정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다. 이러한 묘사는 파국에 이른 삶을 냉정하게 성찰하고자 함인가.
"살아가며 부딪히곤 하는 어려운 감정, 가령 관리인 없는 공중 화장실 같은 수치스런 씁쓸함과, 지구 멸망 전의 멀미 증상 같은 자기 보호본능이 엉켜 다가올 때, 때론 희망이란 것이 차라리 없었으면 편할 것 같은 생각이 들거나, 내 시선이 지독한 연민이나 그리움을 향해 있을 때, 그 침잠이 자학이 아닌 캔버스 안의 새로운 이야기들로 그려 넣어지는 작업의 시간들 그 수많은 밤들은 그 무엇보다 황홀하다. 지독히 외롭게 말이다." - 작가노트에서
그녀는 기억 속에 잔재하는 아픔, 세상의 부조리와 소외된 이들에 대한 문제의식을 이번 작품을 통해 강하게 표출해 낸다. 그리고 작품에 담긴 인물들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마치 현미경으로 내면을 들여다보는 듯 일상 속 개인의 감정과 에피소드가 뒤엉켜 작품 속 인물과 동일시 되는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불안정한 현실 속 이야기들은 관객에게 말을 건다.
전시 기간: 5.20-6.3
전시 장소: 갤러리 이마주
전시 작품: 20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