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성장의 시대는 끝나..교회는 양적 성장 추구 대신 삶의 현장으로 깊이 들어가야"

<파워인터뷰; 뉴욕 후러싱제일교회 김정호 목사> 교회성장과 진보적 목회 조화 이루려 노력



2천명 출석교회에서 분쟁중인 5백명 출석 교회로 옮겨

◇ 권혁률> 목사님 반갑습니다.

◆ 김정호> 반갑습니다.

◇ 권혁률> 목사님께서는 18년간 아틀란타한인교회에서 목회를 하셨는데 급성장하는 미국의 100대 교회 안에도 선정됐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더 규모 작고 또 갈등도 있어서 분쟁에 휘말린 그런 교회로 옮기셨는데 특별하게 동기가 있으신가요?

◆ 김정호> 제가 18년 있으면서 이민교회에서는 크다 할 수 있는 건축을 2번, 예배당 건축과 교육센터 건축을 끝내고 18년 정도 있으면서 150명 교인이 2천명 넘는 교회로 성장했는데, 교회의 문제가 아니라 내 내적인 문제가 시작된 것 같아요. 딴 것보단. 많은 목사들에게 유혹이 되는 것인데 교회가 커지면서 제일 문제가 됐던 것이 저희 집사람이 볼 때 마다 항상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당신 목사 같지 않다..목사 같지 않다"

그런데 그게 그냥 처음에는 지나가는 말로 들었는데 제 안에 조금 목회의 초심으로 돌아가야되겠다는 번민이 조금 있었던 때였는데 예배당 40주년 기념으로 1400명 들어가는 큰 예배당을 지어놓고 그 다음부터는 그것이 번민이 조금 오던 중에 뉴욕에 후러싱제일교회가 뉴욕연합감리교 중에 가장 큰 교회였는데 어려움이 있었어요. 교회가 반으로 줄어들고 하는데 남의 이야기처럼 들렸는데 어느 날 갑자기 뉴욕연회의 미국 감독이 연락이 왔어요. 올 수 없겠느냐..

그런데 전혀 객관적으로는 간다는 생각을 못 했는데 조금 고상하게 거절한다는 것이 기도해보겠다는 거절을 했다가 3일간 시간을 달라고 했는데 마지막 날 새 예배당에 가서 기도하는데 예배당 높이가 너무 커서 십자가를 못 붙이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날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우리 관리 장로님이 일꾼들 10여명 써가지고 십자가를 가지고 예배당 앞에 쏙 들어가는 그 순간에 제가 기도를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아 ,이게 싸인인가..' 그래서 가게되는 계기가 된 거죠. 그래서 외부적으론 어느 기자들이 그러더라고요. 장로교 목사나 이런 분들이 왜 가냐, 여자 문제냐, 돈 문제냐?

◇ 권혁률> 문제가 있어서 가는 것으로 오해하고?

◆ 김정호> 네. 그런데 저는 그런 개념 자체가 저한테는 별로 적용이 안 됐고 18년 있으면서 교회가 많이 안정되고 교회 리더십이 잘 자리 잡았고 그러면서 새로운 도전이고 같은 형제 교회니깐, 같은 교단에. 한번 무너진 교회 일으키고 싶다는 교만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어떤 목회 초심으로 돌아가는 기회가 주어졌던 것 같아요.


그래서 거의 2년 되어가는데 참 감사하죠. 은퇴 아니면 은퇴 모드로 가야하는데 다시 목회 야전 하는 군으로 돌아간 기분으로 하고 있습니다.

◇ 권혁률> 아틀란타한인교회는 성장하는 것으로 유명했지만 또 특색있게 목회한다, 이런 소문도 많았습니다. 어떻게 목회하셨습니까.

'진보적 신앙으로 목회해도 교회성장 가능' 입증하려 노력

◆ 김정호> 특색이라기보다 제가.. 저는 제가 가졌던 관심 중에 하나가 진보적인 신학과 신앙관을 가지면서도 교회가 부흥할 수 있다는 것을 조금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많았었어요. 왜냐하면 젊은 시절에 진보 목회한다고 하도 구박당하고 비난당한 설움 때문에 한번 조금 진보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그런데 그게 참 잘 됐고 그래서 저는 지역사회 특별히 다른 어려운 미국교회를 돕는 일이나 그리고 우리 부목사들을 중심으로 교회를 개척하는 일이나 정말 재미나게 목회할 수 있죠.

그리고 한반도 통일을 위한 컨퍼런스라던가 평화통일에 관한 대회를 치러낼 수 있는 교회가 되었고 그리고 삶과 신앙과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는 목회.. 그런 면에서 특색이 있었다.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해봅니다.

◇ 권혁률> 건강하게 목회하면서 교회도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사회적 참여도 열심히 하고 양쪽을 다 하셨다는 것이죠.

◆ 김정호> 제가 참 한편으로 마음이 조금 아쉬운 것은 교회가 작을 때 사회적 책임을 하는 사회 정의에 참여하면 그렇게 비난을 잘하는데 교회가 커지고 제가 나름대로 목사로서 신분이 안정이 되고 존경받는 어느 정도 위치에 되다 보니깐 사람들이 대하는 것이 달라지는 것을 보고도 '아..이게 참..물량주의적인 판단이 이런데도 오는구나'이런 것도 있긴 했는데 감사하게 양쪽을 다 할 수 있어서 정말 감사했었습니다.

◇ 권혁률> 목사님에 대해서 한때 '빨갱이 목사 아니냐, 이단 목사 아니냐'이런 공격도 받으셨다고 들었는데 왜 그러셨습니까.

◆ 김정호> 첫째는 제가 신학대학원, 보스턴신학대학원에 다닐 때 79년에 들어갔는데 80년에 광주민중항쟁이 일어났기 때문에 저희 때는 다 이 민중, 민주, 민족 이게 중요한 초점이었죠. 그리고 제가 모셨던 담임목사님들이 저는 감리교 목사이지만 사실 제 첫 스승이 향린교회에 계셨던 홍근수 목사님이셨어요. 제가 유일한 첫 부목이었는데 그 목사님의 영향 받은 것 때문에도 통일 운동하다가 제가 빨갱이라는 소리 들었는데 빨갱이하고 통일 운동을 다른 건데 구별을 못하는 것 같아요 세상 사람들이.

그리고 두 번째 담임목사님이 노자, 장자 이런데 깊이 조예가 있던 곽노순 목사님이세요. 특별히 제가 타종교를 존경하고 타종교와 대화 나누는 것을 귀하게 여겼는데 그것을 사람들은 다원주의라나, 이런 이름을 붙여가지고 자기들이 원하고 자기들과 다르면 무조건 부정적인 것을 붙이는 것에 제가 20대부터 그것을 했기 때문에 참 힘들었어요.

우리 목사님들이 설교하면서도 제 이름 석자 불러대면서 그렇게 심하게 비난해도 보호해 줄 사람도 없었고 나는 나를 보호할 힘도 없었고..참 위기가 많았었죠.

목사 양심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

◇ 권혁률> 지금은 그렇게 비난하는 분은 없으시죠?

◆ 김정호> 제가 뉴욕에 가니깐 뉴욕이 조금 보수적인데, 비난하지만 조심하죠. 왜냐면 제가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고 또 말이 안되는 소리를 하고 있고. 그래서 제가 뉴욕에 가니깐 젊은 목회자들이 많이 어려움을 당했었더라고요. 제가 가니깐 그 목회자들에게 제가 울타리 역할을 해주게 됐죠.

얼마 전에도 뉴욕 지역 한인언론 기자들을 만났는데 저에 대해서 나이 많은 목사들이 못 마땅하게 여긴다고 해서 제가 그렇게 이야기했어요. “내가 이 나이에 나이 많은 목사님들 비위 맞추려고 온 것 아니다. 나는 젊은 목사들 용기주고 그리고 내게 주어진 목사 양심 지키는 것이다.”

세월호 추모예배를 뉴욕후러싱교회에서 장소를 빌려줬다가 난리가 났었죠. 그래서 우리 장로님들한테 그랬어요. 장로님들 100%반대해도 이거 합니다. 그리고 장로님들, 어버이연합이냐고. 그리고 위안부 문제라던가 이런건데. 제가 나이가 60대니깐 누가 비난해도 이제는 그거 겁낼 나이는 아닌거 같아요. 이제는 소신껏 해도 되는 나이가 됐고 교회도 남이 나한테 비난할 입장이 아니니깐. 좋은 것 같아요. 이제는.


◇ 권혁률> 후러싱교회로 옮기신지 2년 되셨는데 얼마 전에 장로 8분을 포함해서 99명 임직식을 거행했다고 들었습니다.

◆ 김정호> 뉴욕후러싱제일교회가 15년 동안 장로를 못 세우셨던 것 때문에 가졌던 어려움이 결국은 교회가 분열되고 젊은이들 다 나가고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하나님이 도우셔서 15년 만에 장로 세울 수가 있었고 저는 젊은이들하고 목회를 오래했기 때문에 장로 세우는 것이 이렇게 난리인 줄 몰랐어요. 그런데 이민교회는 어쩔 수 없는건데. 정말 우리 장로님들도 많이 기도하시면서 너무 은혜롭게 잘 끝났어요. 그래서 제 전임자 목사님이신 김중언 목사님께 마지막 축도 부탁을 제가 드리면서 목사님이 이거 때문에 어려우셨는데 이거 마무리 지시라고. 참 기뻐하시고 교인들도 좋아하고. 너무 감사한. 교회가 안정이 됐죠. 그 이후로. 부임할 때 5백명 수준이던 교인이 지금은 1천명 정도 됩니다.

이제는 예배당 건축보다 젊은이 위한 선교에 주력

◇ 권혁률> 그러면 지금은 어디에 중점을 두고 목회를 하고 계십니까.

◆ 김정호> 저는 어린이, 청소년, 청년 그리고 뉴욕이 제일 많은 것이 청년들입니다. 맨하탄에 가면 한인 2-3세만이 아니라 유학생이 많이 있고 전세계에 젊은이들이 제일 많이 와있는데 기성교단들이 맨하탄을 떠나요. 전도가 어려우니깐. 저는 참 우리 부목사들이 맨하탄에 나가고 있고 교회는 앞으로 후러싱에 있지만 하나님이 주신 진짜 좋은 선교지라고 생각합니다, 뉴욕이.

그래서 제가 요즘 젊은 목사들에게 도전하는 것이 뉴욕에 와라. 와서 이 선교지같은 젊은이 목회에 같이 동참하자 그러는데 호응이 참 좋아요. 그래서 요즘 한 두 달 전에도 10명 젊은 목사들과 함께 조금 보수교단이지만 팀켈러나 존파이퍼 장로교단 컨퍼런스에 같이 참여도 하고. 내가 나이가 60살이 되서 30대 목사들이랑 같이 가는게 싫어할 줄 알았는데 너무 좋아하고. 교회서도 교인들이 헌금해주셔서.

그래서 앞으로 젊은 목사들 훈련하고. 양적으로 성장하는 것은 어느 한계가 있다고 보니깐. 뉴욕이란 지역 자체가 땅이 작기 때문에 예배당을 더 크게 짓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젊은 목사들 개척하고 교회 세우는 것을 지원해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 내 사명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 권혁률> 목사님 주변에서는 아틀란타 같은 시골에서도 2,000명이 넘는 교회로 성장시켰는데 이제 뉴욕에서도 그 이상의 교회로 성장시키는 것이 아닌가 그런 기대를 하시는데 오히려 교회는 성장시키기보단 쪼개시겠다..?

◆ 김정호> 쪼개는 것은 아니고 첫째 아틀란타가 뉴욕에 비하면 시골이 아니에요. 아틀란타는 급성장할 수 있는 조건이 되어 있고 다만 땅이 넓고 그리고 이미 아틀란타에서는 제가 섬기는 교회가 기선을 잡은 교회이기 때문에 이 빈익빈부익부 현상을 못 벗어나는 건데 이미 큰 교회였기 때문에 그 다음에 이렇게 부흥했죠. 그런데 지금 저는 양적인 성장의 시대가 지났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어떻게라도 교회들이 예배당 크게 짓는 때는 아니고 더 깊이 현장 속으로 들어갈 때라고 보니깐 관심이 없어요. 저는 지금은.

삶의 현장에서 사역하는 평신도지도력 강화되어야

◇ 권혁률> 목사님께서는 평소 서번트리버십, 평신도 지도력 이런 부분을 강조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이유 때문에 그러신가요.

◆ 김정호> 저는 그것이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의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요즘에 90년도 이후부터 교회에 대한 이미지가 굉장히 부정적으로 되고 있는 것이 바로 섬김의 리더십 자체가 아니라 장로도 똑같잖아요. 이게 무슨 명예직이나 되는 것처럼 피터지게 싸우고 목사도 똑같은 것 같아요. 요즘은. 목사 되는 것이 무슨 굉장한 거룩한 것이 되는 것처럼.. 이게 본질을 잃어버린 현상이기 때문에 서번트리더십으로 가는 것.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이 시대는 평신도들의 사역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전도와 선교는 불가능합니다. 이미 그것이 보여지고 있고 100명, 200명 교회하면서 교회 월급 주는 제도의 시스템은 세월이 흐를수록 어려워 질 것 이라고 보기 때문에 텐트메이커 사역이라던가...

◇ 권혁률> 직업을 갖고 목회하는거요?


◆ 김정호> 그렇죠. 그것이 중요한 때가 올 것이고 평신도 사역이 직장에서 사역에서 가정에서 확산되지 않으면 현재 개신교나, 구교는 제가 신경쓸 것 없고. 가지고 있는 이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다고 봅니다. 그 길이 살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합니다.

블라디보스톡에 평화기도센터 건립 추진

◇ 권혁률> 요즘은 러시아 선교에 관심이 많으시다고 들었습니다.

◆ 김정호> 제가 지금 유레시아연합감리교 후원회장으로 있는데 러시아에 감독이 에드워드 헤가이 고려인 4세가 감독인데 러시아교회 감리교단의 지도자들이 다 고려인들이세요. 조영철 선교사가 92년도 소련 때 들어가서 키워 놓은 열매들인데, 어떻게 지금 감독하는 에드워드 헤가이와 에모리 공부할 때부터 알게 됐는데 그래도 우리 미래에 한민족을 하나님이 고난의 역사 가운데 길을 열기 위해서 보낸, 미리 보낸 요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번에 10월 달에도 블라디보스톡에서 고려인 강제 이주 80주년 행사가 있는데 거기 제가 후원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해외 흩어진 한민족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그 부분을 제가 관심가지고 참여하고 있습니다.

◇ 권혁률> 블라디보스톡에 평화센터 건립도 추진하신다고 들었습니다.


◆ 김정호> 그게 이제 러시아 감리교 또 한국 감리교회, 미국 감리교회가 조인트로 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우리 블라리보스톡이 중국, 러시아, 한국, 북한, 일본 이 중심이 될 수 있는 트라이앵글로 보는데 저도 자주 다니면서 그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통일의 미래를 준비하는 센터를 해야되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참여하는 분들 중에 보수 성향 가진 분들은 평화통일 센터는 너무 진보적이다라고 해서 타협이 된 것이 평화기도센터 이렇게 타협이 이뤄졌습니다. 그래서 추진하고 있습니다.

◇ 권혁률> 목사님께서는 고등학교 때 미국 이민 가셔서 쭉 미국에서 자라시고 목회하셨는데 현지에서 바라 본 조국, 어떻게 바라보고 계십니까.

◆ 김정호> 제가 문재인 대통령이 이번에 되는 것을 보고 저는 개인적으로 참 기뻤고요. 그리고 광주 80년대 신학 공부한 저희들이 시인의 이름은 기억이 안 나는데 그 당시 우리가 제가 늘 읊었던 시가 하나 있어요. '남들은 쓸데없는 짓이라고 하지만 나는 봄을 기다리며 얼음을 깬다' 이런..

누군지 기억이 안나요. 그런데 거기에 대한 열매들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기 때문에 이번에 촛불 이런 과정을 보면서도 젊은 세대에 대한 소망, 자랑스러움, 그래서 역사를 발전해나갈 수 있는 경험들이 축적되지 않았나. 그래서 너무 감사하고. 미국에 산 지 40년이 넘었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잘되기만을 바라고 특별히 제일 아쉬웠던 것이 약자와 억울함 당한 자, 약자와 우는 자들과 손을 잡아주지 않는 그런 나라의 지도자들을 보면서 가슴이 아팠는데 이번에 새롭게 대통령 된 문재인 대통령이 정말 가장 아쉬운 부분을 채워주는 게 전 너무나 감사하고 그래서 너무 기쁘고 좋습니다.

◇ 권혁률> 종교개혁 500주년인데요. 한국교회에 권면의 말씀 한 마디 해주시죠.

◆ 김정호> 한국교회 권면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들에 대한 거지만. 저는 조금 본질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저도 목사가 된 지 안수 받은지 3년이면 40년 돼요. 그래서 오랜 목회 생활을 했는데. 어느 시대부터인가 예수는 어디 가 있나 하는 아쉬움이 나중에는 정말 아픔이 되는 것을 많이 경험했어요. 목사들 속에, 교인들 속에, 교회 속에 예수가 어디 있는가..

무너진 사람, 무너진 정의 다시 일으켜세우는 '중풍병자 사역' 힘써야

그래서 저는 몇 년전부터 매년 똑같은 교회 표어를 씁니다. '예수 잘 믿고 예배 잘 드리는 교회 되자' 그것만 구호를 내세우고 교회 성경공부도 줄이고 프로그램을 줄여요. 그 이유는 정말 세상 속으로 내려와서 에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좀 해야하는데. 그래서 제가 뉴욕후러싱교회와서 제일 많이 하는 것이‘ 믿음의 형제들’이라고 해서 중풍병자 일으키는 프로그램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4명씩 팀이 되어서 모든 무너진 사람이나 건물이나 또 사회정의 문제나.


그런데 놀라운 것이 대학생, 청년들이 70개 팀이 되어서 참여를 해주는데 진짜 잘해요. 노숙자 돕는 것부터 여성 권익부터 망가진 집 고치는 것부터 무조건 4명 친구들 팀을 만들어서 예수님께 데려오는. 또 우리가 왜 중풍병자인체로 사는가. 저는 이 시대의 해결책은 딱 하나라고 봅니다. 교회가 본질로 돌아가고 예수님이 중심에 계시는 교회로 만들어 가는 것, 그것이 어렵지 않기 때문에 거기에 해법이 있지 않을까... 저는 그것만 종교개혁의 중심도 예수로 돌아가는 것, 예수님 기뻐하시는 일 하고. 요즘은 교리 논쟁의 시대도 아니라고 봅니다. 예수 사랑 실천의 시대라고 보기 때문에. 전 아주 단순화 시키고 있습니다.

◇ 권혁률> 다시 일으켜세운다, 아주 중요한 말씀이신거 같고 그런 목회철학이 한국교회에도 확산됐으면 좋겠습니다.

◆ 김정호> 바람입니다.

◇ 권혁률>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 김정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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