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어 보험사 측은 잘못을 인정한 음식점 주인과 피해자가 맺은 별도의 손해배상 계약에까지 간섭하며 피해자를 압박하고 있다.
A(64) 씨는 지난 해 10월 경기 부천의 한 횟집에서 음식을 먹고 두 시간 만에 복통을 일으켜 병원으로 실려 갔다. 상한 오징어 회무침이 문제였다.
해당 음식을 먹은 동료도 같은 증상을 보였고, 횟집 주인도 잘못을 인정했다. 횟집 주인은 도의적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자신이 가입한 책임보험과는 별도로, A 씨 측에게 750만 원을 손해배상금으로 지급하기로 계약서를 썼다.
안타깝게도 A 씨는 한 달여가 지나 폐렴으로 숨을 거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경비 업무는 물론 정기적으로 등산까지 하고, 호흡기와 관련해서도 입원 치료를 받아본 적이 없는 A 씨였다. 사망 원인과 관련해 병원의 진료소견서는 "장염으로 인한 전신상태 악화와 구토 등으로 인한 폐렴의 가능성을 충분히 연결 지을 수 있다"고 적고 있다.
그리고는 횟집이 하기로 한 개인적 배상과 보험사 측의 배상금 지급을 한 데 묶어 버렸다. 횟집이 잘못을 인정한 뒤 A 씨 유족과 배상 계약서를 작성했음에도, 계약 불이행 여부를 따져야 할 소송에서 음식과 사망의 인과관계를 따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A 씨 유족들은 횟집과는 별도로 삼성화재 측과 배상금에 대한 협의를 진행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삼성화재는 1000만 원에 합의하지 않으면 소송뿐이라고 밝혀왔다. 항의를 하면 "소송을 담당하는 팀과 얘기하라"며 접촉도 제때 되지 않았다. A 씨 유족 입장에선 거대 보험사를 상대로 싸움을 벌인 상황이 돼버린 것이다.
게다가 '목숨 값' 1000만 원은 더더욱 받아들일 수 없는 노릇이었다. A 씨 측이 손해사정사를 고용해 산출한 피해보상 액수는 1억9000만 원이다. 삼성화재 측과 밀고 당기기가 불가피할 것이란 예상은 했지만 제안 받은 금액은 황당한 수준이었다.
A 씨의 아들은 "황망하게 아버지를 잃은 것도 억울한데, 삼성화재 측은 명백하게 별도로 맺은 계약에까지 참견해 1000만 원을 받아들이라고 하고 있다"며 "거대 보험사를 상대로 소송을 하는 게 일반인에게 쉬운 일이 아닌데, 이게 협박이 아니면 무엇이냐"고 하소연했다.
이에 대해 삼성화재 측은 두 개의 배상이 별도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고객사인 횟집 주인에게 "도움을 주려다가 A 씨 유족 측에 두 개 배상을 묶어 잘못 설명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 "(책임보험과는 별도로 개인적 배상을 한다는 횟집과의) 합의서 문구를 초반에 인지하지 못한 것은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삼성화재는 A 씨 측이 횟집을 상대로 낸 민사소송의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은 고집하고 있다. "어차피 배상금 산정 과정에서 음식과 사망 간 인과 관계를 따져야 하는데, 권위 있는 기관에서 그 내용이 나올 수도 있지 않느냐"는 것이 이유다. A 씨가 기약 없이 애를 태울 수밖에 없는 배경이기도 하다.
보험소비자연대 조영희 실장은 "일반 피해자 입장에서는 노하우와 자본력 갖춘 기업을 상대로 소송하는 것은 매우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며 "피해자가 소송 의지가 없었음에도 보험사 측이 일부러 상대의 힘을 빼게 만들려는 시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