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 요코의 귀거래 '어쩌면 좋아'

'저체온증', 박성신' 제3의 남자' ,스티븐 킹 '다크타워 5부 칼라의 늑대들'

'어쩌면 좋아'의 저자 사노 요코는 60세 무렵부터 번잡한 도쿄를 떠나 군마 현의 산촌에서 생활했다. 이 책은 ‘대학촌’이라고 불리는 기타가루이자와에서의 약 5년간의 전원생활을 주로 다룬 연작 에세이집이다.

'어쩌면 좋아'는 기타가루이자와 지역 별장에 사는 사람들을 비롯해 지역 토박이들과의 교류를 그린 ‘커뮤니티 문학’이라 할 수 있다. 등장인물 대부분이 사노 요코처럼 60세 이상이므로 ‘초로初老 문학’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에세이집은 저자의 삶에 대한 유쾌하면서도 가슴 먹먹하게 하는 통찰이 잘 녹아 있다.

전체적으로 밝음을 기조로 하고 있으면서도 상실과 애수의 터치가 곳곳에 섞여 있다. 유머를 잃지 않는 사노 요코의 에세이들 속에는 그녀가 툭툭 던져놓은 죽음에 대한 단상들이 곳곳에 박혀 있다. 죽음과 노화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는데도 그 분위기는 전혀 어둡지 않다. 사노 요코가 창작 초기부터 죽음이라는 주제에 몰두했던 것에는 그녀가 가장 사랑했던 두 남자인 아버지와 오빠의 때 이른 죽음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기타가루이자와의 산촌에서 사노 요코는 자연을 닮은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자연이 펼쳐놓는 축복 속에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필요한 것은 돈을 주고 사서 써온 자신의 삶을 대지에 단단하게 발을 딛고 선 주변 사람들과 비교해보고, 몸에 조그만 이상만 있어도 신이 나서 병원으로 달려가는 자신과 미련할 정도로 느긋한 농부의 아내를 비교하며 도시의 삶 속에서 정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정상이 아닐 수 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머윗대로 조림을 만들고, 한 포기 수선화를 마당에 옮겨 심고, 자연의 시간이 담긴 한 통의 꿀을 맛보며 감동에 젖고 위대한 대자연의 힘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무기력하고 촐랑맞은 존재인지를 유머러스하면서도 진지하게 펼쳐 보인다.

대자연 속에서 자연을 닮은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사노 요코는 자연이 인간에게 선사한 지혜를 일상의 생활 속에서 배워 간다. 자기연민에 빠질 새도 없이 생명을 가꾸고 돌보는 농부들의 담담한 모습에서 진한 감동을 느낀다. 그리고 자신도 모종을 얻으며 이것이 내년에 잘 자랄지 걱정하고 생각보다 잘 자라면 기뻐하자고 마음먹는다. 모두가 느끼는 삶의 허무를, 그리고 그 삶의 허무를 넘어서려는 생명의 의지를 그 마무리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 되어 사노 요코는 자신만의 언어로 정리한다. ‘언제 죽어도 좋다. 하지만 오늘이 아니어도 괜찮아.’

사노 요코 지음 | 서혜영 옮김 | 서커스(서커스출판상회) | 228쪽 | 12,000원

'저체온증'은 북유럽 경찰소설의 거장 아르드날뒤르 인드리다손의 장편소설이다. 이 책은 주인공 형사 에를렌뒤르가 자살과 실종 사건을 맡아 수사하는 과정과 함께,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이 교묘한 플롯으로 엮여 있다.

호숫가의 별장에서 마리아라는 여성이 자살한 채 발견된다. 부검의는 자살로 판정하고 조서도 그렇게 적힌다. 사건 파일은 신속하게 정리된다. 특이하게도 경찰로서 할 일은 다 끝난 것처럼 보이는 이 지점에서 『저체온증』의 주인공 에를렌뒤르 형사는 수사를 시작한다. 마리아의 자살을 믿지 않는 그녀의 친구가 겪는 슬픔과 절망의 시간을 줄여주는 것이 수사의 목적이다. 마리아의 주변인들이 ‘왜 그 아이는 죽을 수밖에 없었을까? 막을 수는 없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을까?’ 하고 스스로에게 끝없이 던지는 고통의 질문들에 답을 내려주기 위해서.

에를렌뒤르 형사에게 ‘이 사건이 범죄가 맞는가, 범인은 왜 범죄를 저질렀는가, 범인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사건이 주변 사람에게 남긴 상처를 치유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 사건을 할 수 있는 한 완전히 복원해 진실로써 치유제를 만들어주는 것이 그보다 훨씬 중요하다.


인드리다손은 경찰 수사를 보여주는 소설을 쓰는 데에 그치지 않고, 최종적으로는 구태를 일삼는 현대 경찰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 경찰은 왜 수사를 하는가? 경찰 수사의 원점은 사건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을 치유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남자의 아버지가 죽어가고 있어. 어쩌면 이제 영영 다시는, 스스로에게 던져왔던 질문에 대한 어떤 대답도 듣지 못하게 되겠지. 이미 죽은 자기 부인처럼. 그들에게는 답이 있어야 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본문 317쪽)

'저체온증'은 가족과 친구의 받아들이기 힘든 죽음에 일상의 온도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다. 인드리다손은 에를렌뒤르 형사를 통해 그들에게 답을, 그럼으로써 삶의 열기를 돌려주고자 한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인간의 비극에 대한 깊은 공감과 연민이 절제된 언어로 담겨 있다.

아르드날뒤르 인드리다손 지음 | 김이선 옮김 | 엘릭시르 | 424쪽 | 14,800원

박성신 작가의 장편소설 '제3의 남자'는 남북분단의 가슴아픈 현대사를 배경으로 사십여 년에 이르는 시간 동안 세상과 가족, 그리고 하나뿐인 아들과 단절된 삶을 살아야만 했던 한 사내의 이야기를 스릴러 장르로 풀어냈다. 사업 실패로 인해 빚더미에 오른 채 고시원을 전전하던 최대국은 어느날 한 남자의 방문을 받는다. 그는 최대국의 친부인 최희도가 총에 맞아 중태이며, 아버지 대신 수첩을 찾아주는 조건으로 거액의 보상금을 제시한다. 아버지와 의절한 상태였지만 보상금에 욕심이 났던 최대국은 덜컥 제의를 수락하면서, 거부할 수 없는 아버지의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소설은 아들 최대국의 시점과 젊은 시절의 아버지 최희도 시점을 번갈아 보여주며, 아들과 어긋날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의 비밀스러운 과거사를 한발한발 따라가는 한편, 이를 통해 간첩, 안기부, 요정정치, 납북사건 등 6~70년대 한국 사회의 굵직한 사건을 절묘하게 작품에 녹여냈다.

줄거리

최대국은 사업에 실패하고 빚쟁이에 쫓기며 자살을 꿈꾸는 남자다. 세 번째 자살에 실패한 날, 공원에 앉아 있던 그에게 한 사내가 접근한다. 사내는 최대국의 아버지와 함께 일하는 사이이며, 아버지가 조금 전에 총상을 입고 혼수상태로 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전한다. 보험이나 유산이라도 챙길 요량으로 사내를 따라 병원으로 향했으나, 총상을 입은 환자를 허름한 개인병원에 둔 것이나 총격 사건처럼 큰 사건에 고작 한 명의 형사가 어설프게 조사하는 게 온통 의심스럽기만 하다. 그러나 사내가 아버지의 수첩을 찾아주면 3억을 주겠다는 말에, 의심을 접고 단숨에 제안을 받아들인다. 무작정 아버지가 운영하던 고서점을 샅샅이 뒤지고 오랫동안 연을 끊었던 여동생 집까지 찾아가지만 수첩 대신 나오는 것은 미심쩍은 아버지의 과거에 얽힌 것들뿐. 그 와중에 아버지의 오랜 이웃이 사망한 채 발견되며 최대국은 알수없는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하는데….

박성신 지음 | 황금가지 | 348쪽 | 13,000원

스티븐 킹이 작가 데뷔 이전부터 집필하여 2003년까지 무려 3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일생의 역작으로 집필한 '다크 타워'(7부작)의 제5부 '칼라의 늑대들'이 출간되었다. '다크 타워 시리즈'는 '총잡이' 종족의 최후의 생존자 롤랜드가 암흑의 탑(다크 타워)을 찾기 위해 시공간을 넘나들며 모험을 펼치는 판타지 장편소설이다. 이번에 출간된 '칼라의 늑대들'은 마을 칼라에 일정 기간을 주기로 아이들을 붙잡아가는 늑대들과 총잡이 일행의 싸움을 보여준다.

총잡이 롤랜드 일행은 빔의 길을 가던 중, 한 무리의 마을 사람과 만난다. 그들은 수십 년마다 주기적으로 마을의 아이들을 납치해 가는 '늑대들'을 물리쳐 달라고 부탁한다. 이들의 제의를 승낙하고 마을 사람들을 훈련시킨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늑대들의 습격, 그러나 그들 앞에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늑대들의 정체는……

스티븐 킹 지음 |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588쪽 | 16,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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