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액 빚 탕감' 100만명 혜택…'도덕적 해이' 비판은 걸림돌

대통령 공약, 경제부처 인선 끝나야 구체적 대상 및 실행방안 마련될 듯

문재인 대통령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사실상의 회수불능 채권을 채무조정을 통해서 정리하겠다. 회수가능성은 없는데 채권은 살아있으니 채무자는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못하고 금융회사는 채권관리비용만 늘어나는 실정이다."

지난 3월 16일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통령후보가 가계부채 대책을 발표하면서 공약한 내용이다.

당시 문 후보는 이 조치의 대상이 "약 203만 명, 22조 6천억 규모"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후 더불어민주당의 공약집에는 "소액·장기연체 채무에 대한 과감한 정리 : 행복기금 보유 1000만 원 이하 10년 이상 연체 채권 소각으로 사실상 상환이 불가능한 취약계층의 생활권 확보"라는 항목으로 이 내용이 포함되면서 대상이 100만 명으로 조정됐다.

국민행복기금이 금융회사들로부터 사들여 보유하고 있는 소액·장기연체 채권은 지난 3월말 현재 1조 9천억 원어치로 이를 소각하면 43만 7천 명 정도가 혜택을 볼 것으로 추정된다.

국민행복기금은 박근혜 정부 때 설립돼 서민들의 빚을 감면해 주는 역할을 해오고 있다. 서민들의 연체된 채무를 탕감해주지는 않고 조정을 통해 줄여준 뒤 최장 10년 동안 분할 상환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새 정부에선 어차피 10년 이상 연체된 빚은 못 갚는 것으로 보고 아예 탕감해주기로 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금융위원회는 공약이행 방안을 현재 검토하고 있으나 구체적 대상이나 실행방안을 거론할 단계는 아니라고 밝혔다.

행복기금의 보유 채권을 소각하는 방안을 실제 활용할지, 다른 소각 대상 소액·장기연체 채무를 어디까지 잡을지 등에 대한 지침이 없어 현재로선 여러 방안과 가능성을 열어두고 검토하고 있다는 게 금융위 입장이다.

1,2금융권이나 대부업체 등 금융회사들이 가진 소액 장기연체 채권에 대한 전반적인 실태 조사도 필요해 보이지만 금융감독원은 아직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새 정부 출범 이후 내각 인선에 시간이 걸리면서 경제부처들의 수장이 결정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서민부채 탕감 공약의 실행방안 마련도 속도가 붙지 못하는 모습이다.

또 서민들의 빚을 탕감해 주는 방안이 '도덕적 해이'를 부를 수 있어 적절한 방안이 아니라는 비판론도 걸림돌이다.

빚을 지고도 버티면 갚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을 갖도록 해선 안된다는 주장들이지만 이에 대해선 빚 갚을 능력이 전혀 없는 사람에게 일해서 빚을 갚으라고 말하는 것은 효과가 없다는 반론도 있다.

윤석헌 서울대 객원교수는 "우리나라에선 정부가 부채를 탕감해 준 경험은 없었다. 그러나 해외에선 세계 금융 위기 이후 미국이나 영국, 아이슬란드 등에서 이런 경험이 있다"면서 "서민들이 빚을 떠안고 갚지 못하게 된 데는 금융회사의 책임도 있고 그런 점에서 정부와 국가의 책임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 교수는 따라서 국가가 먼저 탕감 조치를 해주는 방안은 긍정적이며 내수 활성화나 근로 의욕 고취 측면에서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빚을 탕감 받는 대상이 실제로 빚을 갚을 능력이 없는 것인지는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고 윤 교수는 덧붙였다.

문재인 대통령도 "채무 감면은 채무자의 연령, 소득, 재산, 지출 정보를 면밀히 심사해 실시하고, 채무 감면 후 미신고 재산이나 소득이 발견되면 채무 감면을 무효화하고 즉시 회수하도록 할 것"이라고 공약 발표 당시 밝혔다.

이 때문에 내각 인선이 완료되고 공약 실행 방안 마련에 탄력이 붙게 되면 실제 채무 탕감의 대상은 심사 과정에서 100만 명 이하로 줄어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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