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 소리 내서 몰래 불러냈지. 1번은 어디, 2번은 어디, 이렇게. 비밀장소 정해서."
"거기서 만나면 뭐하셨어요?"
"이거… 뭐 했다 캐야 하는가. 뽀뽀도 하고 그랬겠지 뭐. 하하."
그 시대 이런 연애 결혼은 드문 경우였다. 대다수는 중매로 결혼했다. 옆 마을 장순이도 마찬가지였다. 빼어난 미모로 이름 날리던 장순이는 스물두 살 어느 봄날, 생전 처음 보는 남자와 결혼식을 치렀다. 하지만 장순이는 남편을 보자마자 결혼을 엎고 싶었다. 콧대 높은 장순이에게는 남편의 외모가 영 성에 안 찼기 때문이다. 하지만 50년이 지난 지금, 할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할아버지 없으면 못 살지 싶어요. 무섭고. 지금도 없으면 무서워서 혼자 잠을 못 잔다카이."
자그마치 50년의 시간을 함께 지내 온 남편에 대해 할머니들은 고마우면서도 밉고, 애틋하면서도 지긋지긋한 감정을 여러 편의 시로 풀어냈다.
'젊은 때는 집에 있는 것보다 주막에 있는 시간이 드 만낫다/ 호호백발 할배 대니 갈 곳이 없어 집박계 모르네 이재사 할마이가 제일 좋다 하네" - 칠곡시인 조덕자 '영감'
21일(일) 방송되는 'SBS스페셜'에서는 이렇게 한글을 배워 시를 쓰는 할머니들의 삶을 다룬다.
한글 공부 3년 차, 아직은 글씨도 삐뚤빼뚤하고 맞춤법도 엉망이다. 그런데 마을 할머니 아무나 붙잡고 시를 써달라고 하면 별것 아니라는 듯 대답한다.
"시? 오야. 지금 읊어주면 되나?"
그들이 사투리 그대로 툭툭 써낸 시에서는 인생 내공이 투박하게 묻어나온다.
'논에 들에 할 일도 많은데/ 공부시간이라고 일도 놓고 헛둥지둥 나왔는데 시를 쓰라하네/ 시가 뭐고?/ 나는 시금치씨 배추씨만 아는데' - 칠곡시인 소화자 '시가 뭐고'
따뜻한 봄날. 이곳 마을에 시 쓰는 방이 세워졌다. 흙 때 잔뜩 낀 손으로 꾹꾹 눌러쓴 시에는 남편도 있고, 자식도 있고, 또 젊을 땐 챙기지 못했던 '나'도 녹아 있다. 그들은 그렇게 눈물 날 일도, 웃음 날 일도 많았던 인생을 투박하고 순수한 시로 길어 올린다.
'자야자야 네 나이가 몇 살이냐 올해도 여전히 연분홍 작약이 아름답게 피였네/ 나는 나는 시집온 지 육십 오년 되었구나/ 그래서 내 나이는 팔십육세란다 꼬부랑 할머니가 되옃다네' 칠곡시인 이쇠건 '작약꽃'
'조금만 절머쓰면 영어도 컴프테도 배우고 싶어요' - 칠곡시인 소귀덕 '공부하는 날' 중에서
시를 통해 오롯이 드러나는 할머니들의 삶이 이번주 SBS스페셜 '할매 詩트콤: 시가 뭐고?' 편에서 공개된다.